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임나일본부설 (문단 편집) === 일본 학계 === 예전처럼 한반도 남부에 대한 [[식민지]] 경영과 같은 주장은 현재는 일본학계 주류에서도 거의 사라졌다. 대신 일본서기에 기록된 '왜곡된 임나일본부'의 존재를 좀 더 현실적으로 해석해서 기내(畿內)의 야마토 조정과는 무관한 규슈의 지방 호족에 의해 설치되었다고 보는 견해로부터, [[쓰시마섬|대마도]] 설치설, 일본의 '출장소' 또는 '출장기관'과 같은 출선기관설(出先機關說) 등을 계속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것의 신빙성이 의심받자 이제는 선사시대부터 가야지역과 일본열도의 활발한 교류를 들어, 가야지역에 일부의 왜인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했고, 이러한 왜인들을 통제하는 행정기관이 임나일본부였다는 '가야의 왜(倭)'설[* 이노우에 히데오가 주장하였다. 다만 고고학적 증거가 미비하다고 한다. 역사비평 편집위원회,'논쟁으로 읽는 한국사1', 역사비평사, 2009, p81-83]이나 왜의 식민지 지배기관이 아니라 가야에 파견된 왜의 사신들로 이해하는 외교사절설(外交使節說) 등 다양한 견해가 나왔다. 이런 견해들은 공통된 특징이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임나일본부의 영역과 성립시기는 작아지고, 군사적 침략의 가능성은 옅어진다.[* 역사비평 편집위원회,'논쟁으로 읽는 한국사1', 역사비평사, 2009, p84-85] [[http://v.media.daum.net/v/20170613214105687?f=m&rcmd=r|2017년 6월 경 심용환 역사작가가 국내와 일본학계의 동향을 설명하며 학설 중 하나로 외교사절설을 언급하며 인터뷰한 적이 있다.]] 일부에서는 백제의 치적을 일본이 가져다 썼다는 말도 있다. 정확하게는 원래는 백제가 주도한 것인데 나중에 기록을 정리하면서 왜왕이 명령해서 왜가 주도한 것처럼 주어를 바꿨다는 설로 앞에서 언급한 대로 천관우가 제기한 주장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