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임경업 (문단 편집) === 죽음 직후 반응 === 임경업이 죽었다는 보고를 듣고 인조는 이런 반응을 보였다. >그가 역적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 내가 그에게 알려주려 하였는데 틀렸구나. 그가 제법 장대하고 실하게 보이더니, 어찌 이렇게도 빨리 죽었단 말인가. 그리고 그는 담력이 커 국가가 믿고 의지할 만하였다. 그런데 도리어 흉악한 무리의 꾀임에 빠져 헛되이 죽고 말았으니, 애석할 뿐이다. 임경업이 죽은 이유에 대해, "김자점은 자신도 역모에 연루될까 두려워서, 고문을 가혹하게 하여 임경업을 죽여 그 입을 막았다."는 소문이 퍼졌다. 단순한 풍문으로 치부하기 힘든 것이, 임경업은 본래 김자점의 막하에 있었던 장수였기 때문이다. 국문 당시 "네가 심기원과 작당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심기원 일당이 네가 배를 타고 가는 날짜를 알았느냐?"는 물음에, 임경업은 "무금(無金)의 처(妻)에게 '사또에게 바로 아뢰기는 어려울지라도 선달(先達)에게 내가 들어간다는 뜻을 말하면 사또가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라고 증언했다. 선달은 김자점의 아들 김식, 사또는 김자점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또한 무금은 효원이라는 인물인데, 효원의 누나 매환은 김자점의 계집종이자 임경업의 첩이었다. 임경업의 말인즉, "김식이 효원의 처를 통해 승선 날짜를 알았으니, 자연히 김자점에게 전해줬을 것이고, 그러므로 심기원도 승선 날짜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이므로, "김자점 또한 심기원과 내통하고 있었다."는 추론이 가능했다.[[http://sillok.history.go.kr/id/kpa_12406017_001|#]] 하지만 인조는 임경업의 발언을 묵살했고, 입에 올린 인물들 역시 어떤 조사도 받지 않았다. 김자점은 시종일관 임경업이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의 발언으로 인해 발생한 본인의 혐의에 대해서는, "무금의 처를 잡아와 신문하자."는 상당히 구차한 반응을 보였다. 후일 자점의 역옥 때, 이시백, 안방준 등이 직접 대죄하여 자신의 결백에 대해 정면돌파로 대응한 것과는 대조적이다.[[http://sillok.history.go.kr/id/kqa_10212017_002|#]], [[http://sillok.history.go.kr/id/kqa_10302011_009|#]] 그래서 그의 사망에 김자점이 관련되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이다. 물론 김자점이 심기원의 변에 가담했을 리는 없다. 다른 인물들의 공초 내용에서는 김자점의 혐의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정황을 종합해볼 때, 김자점은 임경업과의 인연을 이용해 명나라와 인맥을 만들기 위해, 심기원과 함께 그의 망명을 도운 것으로 보인다. 이때의 일이 김자점이 심기원과 접점이 있었던 마지막이며, 인조 또한 그 사실을 짐작했기 때문에 임경업의 발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이다. 아무튼 이 당시 김자점이 한 말을 보면 조정의 분위기가 얼마나 바뀌었는지 알 수 있다. >사대(事大)는 반드시 성의껏 해야 합니다. 이번에 청나라가 경업을 보내주고 또 선량(船糧)을 감해 주었습니다. 따라서 신의 생각으로는, 국가에 일이 많지만 만일 절사(節使)를 통해 그 은혜에 사례한다면 소홀하게 될 듯하니 별도로 사신을 보내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사망 이후에도 심기원의 반란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여죄를 추궁하려는 시도도 있었으나, 이미 사망하였으므로 인조의 뜻에 따라서 심기원과의 연루는 불문으로 돌리고 망명한 죄만을 적용하여 처리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