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제강점기 (문단 편집) === 남북한에 끼친 악영향 === 1945년, 일제의 항복으로 인해 한반도는 해방되었으나 한반도 북쪽은 김일성의 독재와 함께 공산화되었고, 남쪽 역시 친일파 청산을 하지 못하고 [[한국전쟁]]과 [[군사정권]]까지 거친 결과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해 남북한 모두에게 악영향을 끼쳤으며 일제의 잔재는 아직까지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 일단 남북한 모두 공통적으로 군사문화가 뿌리 깊게 박혔다. 남한의 경우, 미국식으로 나라를 다스리려 했던 [[이승만]]과는 달리, 일제강점기 당시 [[만주군]][* 당시 [[만주국]]은 일제의 [[괴뢰국]]이었으므로 사실상 [[일본군]]이라 봐도 무방하다.] 장교로 복무하던 [[박정희]]는 일본제국식으로 나라를 다스려 많은 병폐를 야기했다. 이는 [[1987년]] 민주화 이후로 들어서고도 근절되지 않고 있으며, 사회 전반적으로 [[똥군기]] 문화가 남아 있는 것과 군 내부에 아직까지 [[병영부조리]]가 있는 것[* 그나마 [[530GP 사건]]과 [[윤일병 사건]] 그리고 [[임병장 사건]]을 통해 병영부조리가 그나마 완화되고 일과 후 병사 휴대전화 사용까지 허용된 계기가 되었으나, 각 군에서 병영부조리와 관련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아 아직까지 갈 길이 멀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역시 일제강점기의 잔재가 그대로 지금까지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의 악영향이 남한보다 북한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여기는 김일성 독재와 주체사상으로 인해 오히려 일제의 잔재가 좋지 않은 쪽으로 더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김일성]]은 일제강점기 당시 사회 문제가 된 친일파나 지주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고, 누명까지 씌워 해방 정국에 숙청을 감행했으나, 정작 친일파 중에서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한 인물은 그대로 기용했다.[* 애시당초에 일본이 없었으면 김일성 일가는 일제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자신이 펼친 공적을 과장도 할 수가 없었다. 소련은 특히 일본의 식민지에 불과하던 조선의 사정을 깊게 알지 못하는 바람에 김일성이 '[[마적]]단 출신'이라는 소문이나 아예 북한 주민이 그를 가짜로 여기려는 행보와 같은 힌트에도 김일성이 가면 뒤에 어떤 인품을 지녔는지 몰랐고, 그가 실제로는 숙청의 구실로 추진하던 [[토지개혁]] 같은 정책의 함의를 깨닫지 못했다.] 거기에 김일성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인해 주민들이 외세의 침략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다는 점을 악용해 [[주체사상]]과 [[김씨 왕조|김씨 세습]]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했다.[* [[공산주의]]는 원래 세습을 배격하나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를 제대로 배우지 못해 이것이 잘못된 것인 줄 아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여기도 일제강점기 시절 교육열이 나쁘지 않아 [[이광수(소설가)|이광수]], [[백석(시인)|백석]] 등의 지식인이 유명하기도 했는데 말이다.] 그러고서 80년대 이후에는 김일성 가문의 초상화를 일본 제국에서 천황의 어진을 숭배하듯이 그대로 아끼도록 했다. 이로 인해 일제처럼 북한도 김부자 초상화를 구하다 숨진 사람들이 영웅으로 우대가 되는 폐해가 일어났다. 분단 그 자체부터 일본의 강점으로 일어났다는 시각도 있다.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였기에 그 처리과정에서 분할이 논의된 것으로, 그렇지 않았다면 연합국 사이에서 아예 분할 자체가 논의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일제는 패전 직전까지 시간을 끌어 소련을 참전하게 하였고 그 결과 옛 조선의 영토는 소련과 미국이 점령하게 되어 분리되었다는 것이다. 이 강대국들은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지도자를 좋아하여 통일 국가를 만드는 것을 어렵게 하였고, 통일된 민족국가를 만들 역량이 쇠약해져 [[오스트리아]] 같이 합의하 통일도 이끌어내지도 못하고 전쟁까지 나는 사건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끼치게 된다. 특히 한국인들의 국가 운영 참여 경험이 무려 반세기 가까이 차단되었으며, 그 중에서도 본격적인 근대 국가 운영 경험은 아예 제로였던 점이 엄청난 악영향을 미쳤다. 이로 인해 광복 당시 한반도의 정치인이란 사람들은 하나같이 '''운동가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것이지 제대로 된 정치적 경험과 경륜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고, 계파와 정파 간 협상과 논의를 통해 결론을 도출하는 제도권 정치에 매우 미숙했으며, 여기에서 해방공간의 온갖 비극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미국에서 정식으로 정치학을 공부하고 미국 민주주의를 직접 보고 왔다는 이승만 같은 이들부터가 온갖 테러를 일삼았으니 더 말이 필요한가? 정작 일본은 일본제국 패망 이후로 미국에 의해 민주주의가 도입되며 징병제 등 군사주의를 표면적으로나마 청산하고 [[6.25 전쟁]] 등을 통한 특수로 경제가 발전하고 생활수준이 높아졌으며, [[일본의 역사 왜곡|진정성 있는 역사교육의 부재]]로 일본 제국이 남북한에 어떤 악영향을 끼쳤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도리어 남북한의 분단과 군사주의로 인한 악습을 조선시대 유교의 영향, 당파성론 등 식민사관의 논리로 오해하며 민족성 자체가 미개하기에 생겨나는 문제로 여기고 싸잡아 비하하는 경우도 있다.[* 동양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지식이 부족한 서양인들도 비슷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일제의 군사주의 문화를 경험한 일본 노년층이나 중장년층 일부는 이해하거나 동감하는 경우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