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제강점기 (문단 편집) == 명칭 == 1910년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의 주권이 강탈당하고, 일본 제국은 같은 해(메이지 43년) 칙령 제318호 [[https://ja.wikisource.org/wiki/%E9%9F%93%E5%9C%8B%E3%83%8E%E5%9C%8B%E8%99%9F%E3%83%B2%E6%94%B9%E3%83%A1%E6%9C%9D%E9%AE%AE%E3%83%88%E7%A8%B1%E3%82%B9%E3%83%AB%E3%83%8E%E4%BB%B6|「한국의 국호를 고쳐 조선이라 칭할 것(韓國ノ國號ヲ改メ朝鮮ト稱スルノ件)」]]를 공포하여 자국 내로 편입한 한반도와 부속도서에 대한 공식 명칭을 '조선(朝鮮)'으로 환원하였다. 또한 「[[https://ko.wikisource.org/wiki/%EB%A9%94%EC%9D%B4%EC%A7%80_43%EB%85%84_%EC%A0%9C%EB%A0%B9_%EC%A0%9C5%ED%98%B8|메이지 제령 5호]]」를 통해 '통감'을 '조선총독'으로, '한국'을 '조선'으로, '한국법규'를 '구한국법규'로, '한국형법대전'을 '형법대전'으로 고침으로써 기존의 국체를 나타내던 명칭을 제거하였다.[* 일부 의견에서 말하는 일제강점기에 피해를 본 건 조선이지 한국이 아니라는건 해당 명칭의 변천과정조차 반영하지 않은 오류이다.] 이후 [[보호국|외교적 보호국]]에 준하여 시행되던 통감 제도는 해외 속령 등에 시행되는 총독 제도로 개편되었다. 이 시기 동안 [[독립운동가]] 가운데 일부는 당대 '조선'이라는 명칭이 일본의 식민지 '조센(Chosen)'으로서 알려진 이름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유로, 이를 버리고 대한제국의 '제국'을 공화국의 옛말인 '민국'으로 바꾼 '대한민국', 또는 '한국'이라는 이름으로 해외에 널리 알리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중 한 사례인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독립운동의 전부를 대표하지 못했고, 대부분의 독립운동가들과 일반인들은 여전히 조선이라는 국호를 사용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해방 직후 국내에서 성립한 치안 유지와 건국 준비에 주력한 지방자치위원회의 이름도 [[조선건국준비위원회]]였고, 이것이 선포한 국명도 [[조선인민공화국]]이었으며[* 물론 후자는 건준이 좌경화된 뒤에 여운형의 의도와 별개로 일어난 일이기는 하다.] 미군과 소련군의 포고문들을 번역한 [[전단지]]들의 표현도 둘 다 조선이었고 군정 직후 정부 수립 전까지 존재한 현지 임시정부 또한 [[북조선인민위원회]], [[남조선과도정부]]라고 칭해졌다. 최종적으로는 남한과 북한에 각각 '한국'과 '조선'이라는 이름을 쓴 [[대한민국]]과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두 명칭 모두가 국호로 병존하게 되었다. 한편 오늘날 한국 국내에서 일제강점기의 시기를 지칭하는 학술적·회화적 명칭들은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 '''일제강점기'''(日帝強占期)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명칭으로, 오늘날 민, 관을 가리지 않고 가장 널리 쓰이고 있는 표기이다. 다만 이 표현이 공식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역사는 길지 않은데, [[2003년]] 부터 [[검정교과서]]에 쓰이는 등 용례가 증가하였다. 이를 두고 "일제강점기라는 용어는 대한민국을 '미제강점기'로 바라보는 북한의 사관의 영향이 작용했다"는 견해가 있으며[[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0/30/2015103000163.html|#]], 반공을 앞세우던 박정희 정권 당시에도 존재했기에 비공식적으로도 역사가 용어[* 박정희는 [[남로당]] 출신이기에 공산주의 행적을 지녔다고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최소한 '''자신의''' 집권기에는 대외적으로 반북, 반공을 강조했다. 이 시기에 해당 단어가 쓰였다는 기록이 일제강점기라는 용어가 반공주의가 팽배해 있던 시절에도 사용되었다. 당장 이승만이나 장준하와 같은 반공주의자들도 일본 제국주의에는 극도로 부정적이었다.]임을 근거로 특정 사관이나 정치적 견해와는 관계가 없다는 견해도 있다.[[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2082900209205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2-08-29&officeId=00020&pageNo=5&printNo=15663&publishType=00020|#]] 실제로 '일제의 강점'이라는 표현까지 포함하면 1950년대 기사에서도 이 표현이 발견되기 때문이다.[[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50030100239101007&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0-03-01&officeId=00023&pageNo=1&printNo=8266&publishType=00010|#]] 따라서 사용한 인물을 토대로 따진다면 '일제강점기'가 편향된 표현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며, 오히려 '반공적인 표현'이라는 역설도 가능해진다.[[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52122200239101002&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2-12-22&officeId=00023&pageNo=1&printNo=9181&publishType=00010|#]] * '''대일항쟁기'''(對日抗爭期)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일선전성명서|대일선전성명서]]>에서 '한국이 연합국의 반침략 전선에 참가하여 추축국 세력과 이미 전쟁 중에 있음'을 포고한 바 있으며, [[안중근]]의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하얼빈 의거]]에서 [[한국 독립운동]] 중의 [[틀:한국 독립운동의 전투목록|전투]]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역사를 평가하여, 이를 임시정부의 일본 제국에 대한 대등한 격(格)에서의 투쟁기로 보는 관점이 반영되어 있다. 이 표기 역시 학술적으로 일부 사용되다가, [[2007년]] 국회에서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의 표제로 사용[* 다만 해당 법률 자체는 강제동원에 관한 것이므로 1938년 4월 1일부터 1945년 8월 15일 사이의 시기만을 대상으로 한다.]되면서 공식석상에 등장하였고, 이후 용례가 증가하였다.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복기대 교수는 "현재 사용하는 일제강점기라는 표현조차 부적절하다"라는 견해를 펼치며 공식 명칭을 '대일항쟁기'로 바꿀 것을 주장한 적 있으나, 이에 대해서 '지나치게 목적지향적인 용어 보급 주장'이라는 도진순 창원대 교수의 반론이 있었다.[[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091230/25113317/2|#]] * '''일제시대'''(日帝時代) 시대구분을 나타내는 줄임말로서 회화적으로 널리 사용된다. '일제강점기'라는 표현이 보급되기 전 과거에는 가장 널리 쓰인 명칭이었으며, 특히 노년층에서는 여전히 이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1980년대까지도 동네에서는 일본어를 잘 하는 노인을 찾아보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이들이 소, 청년일 때 일본어를 학교에서 배워 사용했기 때문으로,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도 '신구와 노인 배우가 일제시대 사람이라서 일본어를 배웠다'는 내용이 나오며 일본어로 연기를 코믹하게 한다.[[https://www.youtube.com/watch?v=g3VEw2ReIOY|#]] 원로배우 이순재도 방송에서 일제시대라는 표현을 사용한다.[[https://vop.co.kr/A00001396876.html|#]] 실제로 여러민족이 사는 나라의 경우 다양한 나라의 말들이 사용된다.] 최근에는 일제의 식민 지배의 강제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일제시대' 보다는 '일제강점기'라는 표현이 권장되는 분위기다. * '''일본제국주의강제점령기'''(日本帝國主義強制占領期) 일제강점기를 풀어 쓴 표현으로, 강점행위의 주체로서 [[제국주의|일본 제국주의]](日本帝國主義, Japanese imperialism)의 사상적 측면을 강조하는 명칭이다. [[천황제 파시즘|천황제]]를 중심으로 한 제국주의 정부를 문제의 책임자로 지목하고, 당대 일본 내부에서서도 자발적으로 일어났던 반제 및 민권, 노동 운동을 평가하는 시점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대표적인 단체로 '일본반제동맹',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수평사' 등이 있다.] 일부 학술 문헌에서 용례가 발견되나, 대중적으로는 널리 쓰이지 않는다. * '''국권피탈기'''(國權被奪期) 국가 주권의 피탈이라는 정치학적 요소를 중점에 둔 표현으로, 학술적 명칭으로 사용된다. * '''왜정'''(倭政) 일본에 대한 멸칭인 '[[왜]](倭)'를 사용한 명칭. 파생 표현으로는 '왜정시대(倭政時代)', '왜정치하(倭政治下)', '왜정시기(倭政時期)' 등이 있다. 과거에는 공적인 자리에서도 이렇게 부르는 경우가 있었다. 예를 들어 [[국회 오물 투척사건]] 당시의 속기록을 보면 [[김두한]]이 '왜정 말엽'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러나 현재에는 옛 방식이 익숙한 노인들의 표현이나 일부 비공식적 매체에서만 사용된다. 대한민국과 다르게 북한의 경우 '일본' 또는 '일본 제국(일제)'라는 표현보다도 '왜국', '왜정'이라는 표기가 더 많이 사용되며, <조선력사> 등에서 여전히 공식적으로 '왜정시대'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 '''기타 명칭''' 출처에 따라 '일본식민지시대(日本植民地時代)', '일제암흑기(日帝暗黑期)', '일정시대(日政時代)', '일제침략기(日帝侵略期)', '왜치시대(倭治時代)' 등이 사용되기도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