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부다처제 (문단 편집) ==== 재산/유산의 평등한 분배 ==== 일부다처제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 모습이 다를 수 밖에 없겠지만 대체로 아내들 간의 충돌을 막기 위해 아무리 사정이 안 좋아도 집은 무조건 따로 마련해 주는 게 보편적이다. 일부다처제를 허용하는 국가에서도 아내를 여럿 맞이 한다는 건, 한 마디로 부의 상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꾸란]]에서도 '정 할거면 이런 특수한 상황이라면 이까지 해도 되겠지만, 대신 모든 아내에게 같은 대우를 해 줘야 하고 누구도 차별해서는 안 된다. '''떫으면 그냥 하지 마라.''' '라고 적혀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너희들은 결코 많은 아내들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것이다." 이다. 이므란(가족)장을 읽어보자. 한마디로 일부다처제 하지 말라는 소리다.] 즉, 중동식의 일부다처제는 이슬람 율법이 권장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중동 풍습 때문에 대놓고 금지는 못하지만, 지양할 풍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또한 기존 아내의 허락[* 아내의 친정이 명문가거나 부유층이라면 더더욱 어려워진다.]을 받아야 하고 신 앞에서 차별하지 않겠다는 확언을 해야 한다. 물론 근대화가 잘 이뤄지지 않은 국가일 경우에는 앞서 서술한 것처럼 형해화된 계율로 다루는 경우가 많으며, 이 경우 여성의 인권은 시궁창에 처박힌다. 하지만 이런 나라들도 부자거나 권력자 아니라면 일부다처제는 이 항목 여러 예시에서 보듯이 어림도 없다. 다른 이야기지만, 한국에서 외국인, 외국인 노동자를 주로 돕던 한국인 목사가 쓴 책에 이런 예시도 나왔었다. [[방글라데시]]인 노동자에 대해 쓴 글인데 그 외노자는 종교야 [[이슬람]]이지만 한국 교회에 나와 종교적 토론도 하고 목사와 이야기도 자주 하며 목사나 교인들이랑 사이도 좋았다. 한국말도 잘하고 적응 잘하던 사람이지만 공장일을 하다가 크게 다쳐 그야말로 죽을뻔했다. 병원비는 자신이 좀 벌어둔 돈을 통해 썼지만 이젠 일도 못하고 조국으도 돌아가자면 나나 아내와 다섯 아이들이 다 굶어죽는다고 그가 슬퍼하자 목사와 교인들이 열심히 나서서 돈도 모아주고 해서 수천만원이나 되는 돈을 모아 다 줬다고 한다. 무척 기뻐하면서 그 노동자는 이 돈이면 조국에서 그 10배가 넘는 값어치이니 가게를 해서라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다고 했다. 헌데....감동적인 이야기에 초를 치던 게 ...그 노동자는 '''"그래, 먹고 살 걱정도 없어지고 여유롭게 되었으니 조국에 가서 2번째 아내도 맞이해야겠어요"'''라고 말하는 통에 다들 무안해졌다고. 물론, 모아둔 돈이 현지에서 꽤 큰 돈이라 둘째 아내를 맞이할 경제력이 된 셈이지만, 졸지에 현대의 한국 문화와는 맞지 않는 일부다처제를 후원해준 셈이기도 하니 목사나 교인들 기분은 꺼림칙했을 듯 하다. 간혹 2번째로 맞은 부인이 남편의 가정에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는 케이스도 있다.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과거에는 밥집을 운영하는 여자가 손님으로 온 남성과 눈이 맞는 경우가 있었는데, 밥집을 운영해서 번 돈으로 본처 자식들까지 부양한 사례도 간혹 있었다고. 내전으로 성비가 파괴된 [[에리트리아]]에서는 젊은 남성에게 강제로 일부이처를 강요하려다가 '''남성들의 반발로 취소'''된 적이 있다. "한 여자와 그에 딸린 애들 먹여 살리기도 벅찬 상황에서 우리보고 죽으라는 말이냐, 이건 '''총맞아 죽냐 처자 먹여살리다 등골휘어 죽냐''' 선택하라는 말이냐"는 항의에서였다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