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회의 (문단 편집) ===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 === 일본회의의 근간이 된 전식 격 조직 중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는 1981년 10월, 당시 성공리에 목표를 달성한 원호(연호)법제화 운동을 추진한 조직들과 인원을 기반으로 탄생하였다. 헤이세이나 쇼와 등 일본 특유의 [[연호]] 관련 법령은 황실전범에 규정되었는데, 패전 이후 GHQ가 관련 규정을 황실전범에서 삭제하였으므로 더 이상 법률적 근거를 상실해버렸다. 물론 관용적으로 계속 쇼와 연호를 사용하긴 했지만 언제 사용을 중지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따라서 우익계 인사들은 연호제를 지지할 법률을 다시 제정하여 법적 근거를 갖추고자 하였다. 이것이 '원호(연호) 법제화 운동'이다. 이 운동은 당시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던 일본 우파계 조직이 한데 모여서 활동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일본 우파가 전개하는 '국민운동'의 큰 기반이 되었다. 쇼와 천황 재위 50년째인 1975년부터 운동을 시작했는데 1979년 일본 국회에서 원호법이 제정됨으로써 겨우 4년 만에 목표를 달성했다. 함께 운동에 참여했던 우파조직들이 이대로 해산하기에는 아깝다는 공감대를 이루어 재계, 정계, 학계, 종교계에 흩어진 우파인사 대표들이 한 데 모여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를 결성했다. 발족 당시 의장으로는 2차대전 연간에 일제의 충실한 외교관중 한명이었으며 전후에도[* 미주리 항복 조인식때 [[시게미츠 마모루]]와 함께한 일본측 외교사절단의 일원이기도 하였다.] 멀쩡히 공무 근속에 일본국 유엔 대사 등을 지닌 가세 도시카즈가 참여하였고, 사무총장으로는 메이지 신궁의 권궁사(権宮司)[* 일본의 각 [[신사(신토)|신사]]의 책임자가 궁사(宮司)이다. 그리고 권궁사(権宮司)는 일부 큰 신사/신궁에만 있는 직책으로, 궁사의 뒤를 잇는 2인자이다. 여기서 권(権)이란 단어는 '권한대행'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한문식 접두사.] 소에지마 히로유키(副島廣之)가 그 역할을 맡는 등 당시 일본의 많은 고위층들이 이 국민회의라는 조직에 참여하였다. 특히 국민회의는 고등학교 일본사 교과서인 신편 일본사를 편찬하여, 오늘날 일본 교과서왜곡의 핵심이 되는 복고조의 역사관을 주창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쳤다.[* 본격적으로 교과서 역사왜곡이 표면화된 것은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부터지만, 일본 우파단체들은 80년대 중후반부터 이미 교과서 역사왜곡 물밑 작업 중이었다. 이런 행각을 일본 내 주요좌파조직인 일본교원노조가 어떻게든 막았지만, 90년대 이후 교원노조의 힘이 약화되자 역사교과서왜곡이 가속화되었다.] 이 조직에 가입한 인원 중 상당수가 전후 탄생한 우파단체의 소속원이었고, 일부는 현재까지도 극우 및 신우익단체에서 활발하게 활동한다. '국민회의' 계통의 현대 일본의 역사적 우파 조직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 일본 일수회 (잇스이카이) - [[스즈키 구니오]]가 대표라고 유명하다. * 일본학생동맹 * 방패회 ([[다테노카이]]) - [[미시마 유키오]] 문서도 함께 볼 것. * 미시마 유키오 연구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