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삼대악귀 (문단 편집) === [[스토쿠 덴노|타이죠코 스토쿠 텐구]](太上皇崇徳天狗, 태상황 스토쿠 텐구)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98px-Sotoku_invoking_a_thunder_storm.jpg|width=540]] 히라가나로는 たいじょうこうすとくてんぐ. 우타카와 쿠니요시(歌川国芳 1798.01.01~1861.04.14)가 그린 스토쿠 텐구. 일본 최고의 대텐구로 통칭 상황, 상황천구(죠코 텐구), 일본대마왕. 그 유래는 일본 75대 [[천황]]인 [[스토쿠 덴노]]가 변하여 [[텐구]]가 된 형태이다.[* 텐구이기는 하지만 초상화의 모습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얼굴이 붉고 코가 길며 새의 날개가 달린 반인반조 괴물이 아니라 사람에 가까운 모습이다.] 당시 일본은 천황의 아버지가 조코([[태상황]])로 즉위하여 [[인세이]]를 펼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실질적으로 천황은 [[황태자]] 정도의 지위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스토쿠 덴노의 아버지인 도바 상황은 [[후지와라노 도쿠시|후지와라노 도쿠시/나리코]]를 총애하여 그 자식인 코노에 천황을 즉위시키고 스토쿠 덴노를 상황으로 밀어올린다. 하지만 스토쿠 덴노는 명목상의 상황일 뿐, 자신의 자식이 천황이 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실권은 전혀 없었다. 대신에 스토쿠 덴노는 자신의 아들인 시게히토 친왕(重仁親王)을 도쿠시의 양자로 들여보내서 차기 황태자, 천황으로 만들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코노에 덴노가 급사했을 때, 궁중에서는 스토쿠 덴노가 시게히토 친왕을 천황으로 만들고 싶어서 당시 조정의 집권자이던 후지와라노 요리나가(藤原頼長)와 결탁해 코노에 덴노를 저주해서 죽였다는 소문이 퍼졌다. 여기에 분노한 도바 법황은 시게히토 친왕 대신에 자신의 넷째 아들[* 둘째, 셋째 아들은 일찍 죽었다.]인 마사히토 친왕(雅仁親王)을 천황으로 책봉한다. 바로 [[고시라카와 덴노]]이다. 원래 고시라카와 덴노는 즉위하기 전까지 황태자로 책봉받지도 못했으며, 노래 연습에나 몰두하는 한량이었다. 고시라카와 덴노도 사실은 그다음 천황으로 예정된, 자신의 아들이자 계모 토쿠시의 양자인 니죠 천황이 황위에 오를 때까지의 중계 역할로 즉위한 것이었지만, 아무튼 이것은 스토쿠 덴노에게는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었으며 권력에서 더욱 멀어지는 사건이었다. 게다가 스토쿠 덴노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그가 '''사실은 도바 상황의 아들이 아니라 [[시라카와 덴노]]가 늘그막에 본 [[사생아]] 출신'''이었다는 소문이었다. 시라카와 덴노는 희대의 난봉꾼이라서 젊어서부터 굉장히 주색을 밝혔는데, 시라카와 덴노의 장남인 [[호리카와 덴노]]가 불쌍한 자신의 막내 동생을 늘 안타깝게 여겨 자신의 장남인 도바 법황에게 스토쿠를 양아들로 삼으라고 명하였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도바 법황은 스토쿠가 자신의 친아들을 황태자로 내세운 데 반발하여 자신의 넷째 아들인 고시라카와를 차기 천황으로 지지했다. 즉 스토쿠는 고시라카와에게는 형님이지만, 사실은 '''막내 할아버지'''라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 됐던 것이다. 도바 법황이 사망하자 스토쿠 덴노는 무력으로 정권을 탈취하기 위해서 후지와라노 요리나가와 결탁하여 움직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에 패배하고 말았다. 결국 스토쿠는 고시라카와와의 싸움에서 패하고, 후에 일으킨 [[쿠데타]]도 실패하여 정권을 완전히 탈취당해 버린다. 이후 절에 유폐된 후에는 [[불교]]에 귀의해 마음의 평안을 찾으려 했다. 그리고 절에서 전념하여 사경한 경전을 조정에 바쳤지만 '반역자'가 올린 경전은 불경하다는 사유로 거절당했다. 이때에 분노와 자기비애의 정점을 찍게된 스토쿠는 완전히 돌아서고 만다. 자신의 혀를 씹어 잘라 흘러내린 피로 사경했던 경전 위에 저주를 쓰게 된다. >[ruby(日, ruby=にっ)][ruby(本, ruby=ぽん)][ruby(国, ruby=こく)]の[ruby(大, ruby=だい)][ruby(魔, ruby=ま)][ruby(縁, ruby=えん)]となり、[ruby(皇, ruby=おう)][* すめらぎ라고 읽는 경우도 있다.]を[ruby(取, ruby=と)]って[ruby(民, ruby=たみ)]とし[ruby(民, ruby=たみ)]を[ruby(皇, ruby=おう)]となさん! >この[ruby(経, ruby=きょう)]を[ruby(魔, ruby=ま)][ruby(道, ruby=どう)]に[ruby(回, ruby=え)][ruby(向, ruby=こう)]す! >일본의 대마연이 되어, 황제를 잡아서 백성으로 하고 백성을 황제로 만들리라! >이 경을 마귀의 세계에 회향[* 불공을 드려 죽은 이의 명복을 빌음.]하노라! 이후 스스로를 '일본대마왕(日本大魔王)'이라고 칭하였고 손톱과 머리카락이 계속 뻗어가더니 [[야차]]와 같은 모습이 되어 그 상태로 죽은 후 바로 [[귀신]]이 되었다고 여겨진다. 대마왕이 된 상황은 대텐구가 되어 일본 전국의 텐구를 다스리며 여러 시대에 걸쳐 전란과 불안을 일으킨다. 전설에 의하면 텐구들은 보통 수많은 악귀와 요괴들의 장(長)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스토쿠가 일본의 모든 요괴와 귀신을 다스리는 것이 되므로 정말 '일본대마왕'으로서 군림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헤이안쿄]]의 대화재, 요사스러운 별의 출현, [[미나모토|겐지(源氏)]]와 [[타이라 가문|헤이지(平治)]]의 대결전, [[타이라노 키요모리]]의 괴이한 사망,[* 심각한 고열에 시달리다가 죽었다고 한다. 말라리아로 추정하는 의견도 있는 모양] 14세기 [[아시카가 사건]]도 그가 배후에서 모든 일을 공작한 것이라고도 한다. [[메이지 유신]] 후에도 조정은 상황의 원령이 [[막부]]군에 힘을 실어줄까 두려워 스토쿠 덴노의 신령을 쿄토로 맞이하는 의식을 거행하며 시라미네 신궁(白峯神宮)을 창건했다. 그 후로도 천좌 때의 호우, 1964년의 사후 800주년 기념 제사에서의 대화재, 대화재 직후의 뇌우 등을 보며 사람들은 아직도 스토쿠 대텐구의 분노는 풀리지 않았다고 여기고 있다... 1963년 [[쇼와 덴노]]는 [[1964 도쿄 올림픽]] 개최에 임하여 가가와현 사카이데 시에 있던 스토쿠인의 능에 칙사를 보내 스토쿠 덴노 식년제(崇徳天皇式年祭)를 거행했다. 이는 올림픽을 하는 동안 진정하라는 의미로 한 일이었다고 하며, 현대에서도 [[일본 황실]]에서 그에 대한 공포가 내려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20세기 사람인 [[쇼와 덴노]]가 이런 미신 같은 걸 따른 이유는 히로히토도 이래저래 겪은 일이 많은 사람이었을뿐더러[*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고 폐위(최악의 경우 사형)를 각오해야 했었다. 결국 미국이 그를 놔두는 게 더 이익이라 판단해서 자리는 보전 했지만 대신 많은 [[일본 황실]] 일원들을 평민으로 강등시켜서 후사부족 문제를 겪게 된다.] 위에 말한 것처럼 스토쿠 덴노 사후 800주년을 기념하는 제에서 큰불이 나고 천둥번개가 내리쳤으며 비가 쏟아지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다. 세간에 유포되는 원령담[* 이것 자체가 고토바 상황 원령담에서 파생된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과 위와 같은 무시무시한 일면과는 달리, 의외로 스토쿠 덴노는 '''자신을 위로하거나 자신에게 기원을 한 사람들을 잘 챙겨주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스토쿠 외에도 신으로 모셔지는 원령이 다수 있는데, 신토 신앙 자체가 생전에 강한 원념이나 집착을 풀지 못하고 죽어서 성불하지 못한 악령은 현세에 대한 집념이 강한 만큼 현세에 미칠 수 있는 영향도 강하기 때문에 자기 원한과 상관이 없는 소원을 비는 자에게는 강한 영험을 보인다고 믿는다. 스토쿠 덴노와 함께 삼대원령으로 일컬어지는 [[스가와라노 미치자네]]가 나중에 텐만구의 천신님이라는 강대한 신으로 모셔지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 [[시코쿠]] 전체의 수호신이 되었다고 하며, 고시라카와 덴노 즉 자기 정적의 증손자인 츠치미카도 상황이 쇼큐의 난(承久の乱)에서 패배한 후 토사로 유배를 갔을 때 스토쿠 천황의 묘에서 혼령을 위로하는 비파연주를 한 날 밤의 꿈에 스토쿠 천황이 나타나 수도에 남은 가족들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하고, 상황의 유아는 나중에 가마쿠라 막부의 추천으로 고사가 덴노가 되었다. 또한 [[무로마치 막부]]의 관령(管領)인 호소카와 요리유키가 시코쿠의 슈고(守護)가 되었을 때 스토쿠 덴노에게 기원한 후 시코쿠 평정에 성공한 이래로 호소카와 가의 수호신으로 받들여졌다고 한다. 시라미네 신궁은 축국의 종가 터에 자리잡은 연고로 인해 구기종목 전반의 수호신사로 떠받들어지는데다가, 1950년에 스토쿠의 혼령을 위로하는 제사에서 불꽃 속에서 출현한 용신을 모시는 부속 신사의 우물물은 악연 절단과 질병 치유에 효과가 높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