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국유철도 (문단 편집) == 개요 == [[일본]]의 [[국유철도]]를 운영하던 운수성[* 현재는 운수성이 건설성, 국토청, 홋카이도개발청과 합쳐져서 [[국토교통성]]으로 재편되었다.] 산하 공기업으로[* 한국으로 치면 당시엔 교통부(현 [[국토교통부]]) 직급이다.], 현재 [[JR그룹]]의 전신이다. [[한국]]으로 치면 [[한국철도공사]]와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지금의 JR은 한국철도공사가 [[민영화]]된 형태라고 비유할 수 있다. 본사는 [[도쿄도]] [[치요다구]] [[마루노우치]]에 위치했으며[* [[도쿄역]]과 [[오테마치역(도쿄)|오테마치역]] 마루노우치선 출입구 사이에 있다.], [[제2차 세계 대전|2차대전]] 이전 철도성(鐵道省) 시절부터 사용된 유서깊은 빌딩이었다. JR그룹이 발족할때 [[JR 동일본]]이 한동안 이곳에 본사를 두기도 했다. 해당 빌딩은 1997년 JR 동일본이 요요기로 이전하면서 철거되었으며 현재는 마루노우치 오아조 빌딩이 들어서 있다. 국철 보유 선로의 연장은 JR 설립 직전 기준으로 신칸센과 재래선을 모두 합쳐 19,639km에 달했으며, 그와 동시에 총 연장 132km의 선박 노선[* 민영화 당시의 운영 항로는 [[우노역]]과 [[타카마츠역(카가와)|타카마츠역]]사이의 우코 연락선 18km, [[아오모리역]]과 [[하코다테역]]사이의 [[세이칸 연락선]] 113km, [[미야지마구치잔교]]와 [[미야지마잔교]] 사이의 [[미야지마 연락선]] 1km, 총 세 노선이었다. [[1982년]] 6월까지는 [[니가타역(히로시마)|니가타역]]과 [[요산선]] [[호리에역]] 사이에 니호리 연락선 70km도 운영했다. 참고로 전부 운임 계산을 위한 영업거리이고, 실제 거리와는 차이가 크다.]과 총 연장 11,739km에 달하는 버스 사업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지금도 각지에 국철이 운영하던 철도병원이 남아 있으며, [[대한민국 철도청]]이 [[한국교통대학교/의왕캠퍼스|한국철도대학]]을 가지고 있던 것과 비슷하게, 국철도 [[https://ja.wikipedia.org/wiki/中央鉄道学園|중앙철도학원]]이라는 자체 교육기관을 가지고 있었다. 중앙철도학원은 민영화와 함께 폐지하고 부채 상환을 위해 부지를 재개발했다. [[한국의 철도 환경]] 자체가 일본국유철도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아온 만큼 한국 철도의 역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다. [[대한항공]]-[[일본항공]]의 관계와 매우 닮았다. 사소한 것 같지만 지금도 [[무궁화호]]에서 볼 수 있는 호차 표시 플라스틱 판자같은 것도 일본국유철도의 영향이다. 차량 측면에서도 [[관광호]], [[초저항]]은 말할 것도 없고[* 관광호는 [[신칸센 0계 전동차]], 초저항은 [[101계 전동차|101계]]&[[103계 전동차]]의 영향 ] 1990년대 이전의 무궁화호 차량이나 [[CDC 디젤동차]]의 내장에서 일본 동차의 영향을 강하게 볼 수 있다. 다만 [[암트랙]] 객차와 닮게 만들어진 [[새마을호]] 차량이나[* TGV의 영향도 있는데 바로 DHC 동차의 디자인이다.] 프랑스 [[SNCF]]의 영향이 강한 [[KTX(차량)|KTX]][* 특실 적색계열 출입문 도장, 젖혀서 여는 방식인 자동문 등. 애시당초 첫 KTX 차량은 [[TGV 레조]]의 방계 모델로, 레조 기반에 [[TGV 듀플렉스]]의 운전실과 전장품을 부분적으로 적용한 과도기의 모델이다. ]과 같이 일부 차량이 그 예외가 된다. 직원수는 1980년대 초반까지 40만명에 달했으나 사업 합리화 정책으로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청산직전에는 27만 7천명까지 줄어들었고 이중 20만 1천명이 [[JR그룹]]으로 승계됐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