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스포츠 (문단 편집) ==== [[바둑]] ==== [include(틀:일본의 바둑 기전)] 바둑이 전래된 이래 꾸준하게 상류 계층의 취미 가운데 하나였으며, 높으신 분들이 바둑 스승을 모시고 바둑 스승들에게 일종의 타이틀을 부여하는 문화가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특히 현대 바둑사에서 일본의 위치는 중요한데, [[1924년]] [[일본기원]]의 설립 이후 반 세기 가량 일본 [[바둑]]의 위상은 세계의 정점이었다. 바둑 역사상 최강자를 논할때 빠지지 않는 [[우칭위안]](呉清源)이 [[기타니 미노루]]와 신포석 연구를 [[일본기원]]에서 했다고 한다. 바둑 기사를 예술가이자 승부사로 인정하는 풍조와 함께, 바둑 기사를 꿈꾸는 많은 청소년들이 도장의 문하에서 경합을 벌이며 실력을 양성하는 원생 체계가 이 시기부터 시작되었다. 이러한 기류를 타고 [[1970년대]] ~ [[1980년대]]의 일본 바둑은 황금기를 맞이한다. [[가토 마사오]], [[이시다 요시오]], [[후지사와 슈코]], [[조치훈]], [[린하이펑]], [[고바야시 고이치]], [[다케미야 마사키]] 등 현대 바둑의 시초와 응용을 논할때 빠지지 않는 대부분의 기사들이 전부 일본 기원에서 등장했다. 훗날 응씨배 첫 제패의 영광을 거머쥔 한국의 국수 [[조훈현]] 또한 어릴 적에는 세고에 겐사쿠의 문하에 있으면서 기타니 도장의 문하생들과 대국을 두며 실력을 키웠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일본 바둑은 현대 바둑의 주류에서 밀려나고 만다. 한국에서 [[조훈현]], [[서봉수]], 그리고 [[이창호]]라는 절대강자의 탄생을 계기로 국제전에서 기세를 타면서 고수들이 속출하기 시작했고, 문화대혁명으로 맥이 끊기긴 했지만 바둑의 발상지이자 그 인기가 뜨거운 중국에서도 고수들이 등장했다. 한국과 중국은 서로와의 대결을 마다하지 않으며 치열하게 실력을 길러 나갔지만, 일본 바둑기사들은 일본 내 기전에만 몰두함으로써 국제 경쟁력을 상실했다. 예, 도와 기묘하게 얽혀 있는 일본 바둑의 풍조는 바둑의 현대화를 성립시키는 계기이기도 했지만, 바둑이 스피디한 두뇌싸움으로 흘러가는 과정에서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게 하는 부작용도 있었다. 치열하게 싸우는 힘바둑이 주류인 세계 기전의 기풍과는 달리 일본 기사들은 [[고바야시 고이치]]의 지하철 바둑을 비롯해 수비적인 태세 위주의 운영 바둑만 둔 것이 그 이유다. 이창호가 보여준 것처럼 수비적으로 내줄 것은 내주고 반 보만 앞서 가는 바둑 패러다임에는 막강한 잠재력이 있지만, 이창호는 당대에 독보적인 수읽기 능력으로 이 시스템의 잠재력을 100% 살려낸 것이지 수비바둑 자체가 현대의 국제기전에서 정답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더군다나 이창호의 독주로 이창호의 바둑을 분석하고 대응하는 흐름이 강해지면서, '''초중반에서 흔들어 놓는다'''는 공격적인 메타가 등장하게 되었다. 즉 이창호를 계기로 세계 기전은 치열한 수싸움이 번뜩이는 격전의 현장으로 이행하게 되었지만, 일본 바둑은 여전히 모양새와 운영에 집착하는 바둑에 치중한 것이 몰락의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고 지적할 수 있다. [[2010년대]]에는 [[이야마 유타]] 九단([[남자]])과 [[셰이민]] 六단[* [[여자]]며 [[대만]] 출신이다.]이 일본 남녀 바둑계를 평정하고 독주하고 있으나, [[일본기원]]은 일본 최강의 자리에 오른 이야마 九단과 셰 六단에 대한 국제대회 및 외국대회 출전을 상당히 제약하는 불합리한 행보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 국내 기전 상금이 어지간한 국제 대회를 능가하기 때문에 기사들의 해외 진출 동기 부여가 약한 것도 있지만, 일본기원 입장에서 볼 때 스타들이 국내 기전 대신 해외 기전을 택하면 국내 기전의 스폰서가 줄어들어 바둑계의 앞날 자체가 어두워진다는 우려를 버릴 수 없는 것이다. [[2017년]] 하반기 들어서 [[일본기원]]은 [[바둑]] [[바둑/인공지능|인공지능]] [[프로그램]]들하고 인터넷 [[바둑]]([[한큐바둑]], [[타이젬바둑]], [[사이버오로]] 등)에서 붙는 것도 자국의 [[딥젠고]]하고만 붙으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야마 유타]] 九단은 이 주장을 무시하고 [[절예]], [[릴라(바둑 프로그램)|릴라]]하고도 둔다. [[위정치]] 七단도 절예하고도 접바둑을 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