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기토 (문단 편집) === 용맹한 1인의 위력 === [[냉병기]] 전쟁 시절에는 용맹한 1인의 무력으로 수많은 일반인들을 상대할 수 있었다. 이 시절의 전쟁에서 1인이 어느 정도의 무력을 보일 수 있는지를 보자. >로버트 경은 말에서 손을 떼고 멋진 보르도 검을 뽑아 휘두르기 시작했다. 잠깐 사이에 훌륭한 솜씨로 폭도들을 주변에서 물리쳤다. 그에게 달려든 자들이 많았지만 칼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목이나 팔, 발, 다리가 떨어져 나갔기 때문에 아무리 용감한 자도 그에게 가까이 오기를 두려워했다. '''4만'''이나 되는 폭도에 둘러싸인 기사는 '''열두 명을 죽이고 많은 자들에게 부상을 입혔'''지만 결국은 폭도들의 돌팔매질에 쓰러지고 말았다. >---- >'''존 프루아사르 경(Sir John Froissart),, 존 캐리, <역사의 원전> 위 원전은 [[1381년]]에 [[영국]]에서 발생한 대규모 농민 반란인 '[[와트 타일러의 난]]'에 대한 기록이다. 반란군이 수비대장인 로버트 샐 경을 협상하자고 단신으로 불러놓고는 일방적으로 애워싸고 전향하라고 협박하다가 일이 틀어진 것. 해당 문서는 사건을 그대로 서술하는 기사이고, 로버트 섈 경은 역사상의 중요 인물도 아니다. 4만 명에게 둘러싸였다는게 말 그대로는 아니겠지만, 완전히 에워싸인 상태에서 무기를 든 성인남성들을 상대로 십여명을 죽인 것이다. 즉 일기토의 사례는 아니지만,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 농민병과 기사의 격차를 알 수 있는 기록이다. [[항우]], [[리처드 1세]], [[관우]], [[사묘아리]], [[한세충]], [[척준경]] 등 같이 아예 단기, 혹은 소수의 병력으로만 적진으로 돌파해 무쌍난무를 찍는 괴수들도 있고 장수들끼리 단독으로 투장을 청하거나 도주하는 상대 지휘관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투장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고대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지휘관이 직접 무기를 들고 전쟁터로 나간 경우가 드물지 않았으며 이들 중 몇몇은 기본적으로 무력이 뛰어난 무장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군계일학이었던 장수들이 역사에 길이 남을 이름을 남겼고 [[관우|관장]][[장비|지용]], [[항우|역발산기개세]], [[리처드 1세|사자심왕]], [[한세충|진 만인적]], [[방덕|백마장군]]같은 이명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한 데에는 아래와 같은 이유가 있다. * '''우월한 장비와 실력''' 냉병기 시대에는 창검이나 활 석궁으로 중갑의 병사를 죽이는 것이 매우 어려웠고, 이런 질 좋은 갑옷들은 보급하기 어려워 소수의 실력자들과 중요 인물들 위주로 배급되었다. 그래서 '프로'들이 전쟁터를 휩쓰는 것이 가능했다. 실력과 장비도 중요하지만, 적을 죽여야한다는 것에 전혀 의문을 품지않는 마음가짐이 특히 중요했다. 냉병기의 시대에선 중무장한 사람을 죽이려면 고도의 기술과 용맹함이 요구되었다. 오늘날 사극에서 주연들이 적을 몇 명씩 베고 다니는 것에 대한 반감으로 '에이, 드라마니까 그렇지 실제론 제대로 싸우겠어?' 라는 인식을 가진 경우가 많은데, 고대전은 분명 후술될 괴수 수준의 무장들까진 아니라고 해도 기술이나 장비면에서 우월했던 베테랑들이 신병에 비해 큰 힘을 발휘했다. * '''근접전의 공간 제약''' 원거리 중화기 위주가 된 현재와 달리 과거엔 냉병기 특성상 병력 수가 바로 전투력으로 직결되지 않았다. 칼이나 창 같은 걸 휘두르려면 주변 공간이 확보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여유공간을 두고서 한 명을 치고자 하면 수는 많아도 실질적으로 동시에 덤비는건 아무리 잘 친다 해도 네댓 명 정도다. 거기에 이렇게 한명을 둘러싼 상황에서 아군을 맞출 가능성이 높은 활을 쓸 수도 없을테니 위의 로버트 경의 기록을 보면 4만vs1이 아니라 4~5vs1의 형국이 끝없이 유지되는 것이다. 게다가 실전에서는 보통 진형을 형성해서 측면과 후면을 보호한다는 것까지 고려하면 진형이 무너지기 전엔 많아봐야 2~3명, 대부분 1vs1 양상으로 흐르기에 격차을 메우기 더 힘들다. * '''일반인들의 낮은 [[사기(군사)|사기]]''' 전근대의 대규모 전투에 동원된 병사들은 제대로 훈련되지 않은 농민병, 신병, 강제로 끌려온 징집병의 비율이 높았고, 이런 오합지졸들은 무기 하나 쥐어준 것을 빼면 일반인과 다를바 없는 수준이었다. 지금도 잘 훈련된 [[종합격투기]] 선수들은 맨손으로 시비 거는 다수의 일반인들을 --순간의 빡침을 참지 못하고-- 맘만 작정하고 먹으면 순식간에 제압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사람을 살상하기 위해 훈련받는 게 아닌 격투기도 이런데 오로지 사람 죽이기만을 위해 만들어진 날카로운 냉병기들이 코앞에 놓여있는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근대 이전에 [[민족주의]] 성립 이전 병사들은 강제로 끌려왔을 뿐 [[국가]]에 대한 소속감이 그리 크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특히나 [[유럽]] 같은 데서는 일반 평민과 무관한 이유로 일어나는 전쟁도 많았다. 때문에 이런 전쟁에서 목숨까지 바쳐 싸우기는 쉽지 않다. [[탈영]]이나 안 하면 다행인 수준.[* 현대의 전략 게이머들이 흔히 아는 [[라인배틀]] 양상이 벌어진 이유 중에는 탈영을 막기 편한 형태인 것도 한 몫했다.] 그래서 과거의 장수들은 전선에 가까운 위치에서 직접 무기를 들고 싸우는 위치에 설 경우가 현대의 장군들보다 훨씬 많았다. 오늘날의 시점으로 보면 고위 지휘관인데 전선으로 직접 뛰어드는건 무모해보이지만 오히려 지휘관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나서 용맹을 떨침으로서 아군의 사기가 증강되는 경우도 분명 있었다. 이렇듯이 '용맹한 소수'에 맞서기 위해서는 상대편에도 용맹한 사람이 있어야지만 사기를 유지하고 전선을 지킬 수 있었다. 현대인들 눈에는 장수가 졌어도 나머지 병사가 달라들면 이겼을 수도 있는데 물러선다는 게 비현실적이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당시의 전장에서는 장수가 사망하면 나머지는 다 죽은 목숨이나 다름 없을 때가 많았다. 때문에 병사들로서도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서는 것이 합리적인 행동이었다. 즉, '용맹한 장수 둘이서 싸워서 졌다 = 맞붙어도 질 가능성이 높다'였던 셈이다. 비유하자면 용맹한 소수는 전근대 전장에서 [[비대칭 전력]]이나 다름 없었다. 사실 근현대 전투에도 비슷한 현상이 발생한다. [[전투기]]는 과거의 기병과 유사하게 기능한다. 전투기가 전장에 나타나면 모든 지상 병력은 숨을 곳부터 찾기 마련이고, 사전에 진형을 갖추고 있었을 경우에도 제한된 대공사격으로 적을 [[방공망]] 밖으로 내모는 정도의 소극적 저항만 하게 된다. 적 전투기와 직접 맞서 싸워 쓰러뜨릴 수 있는 것은 결국 아군의 전투기다. 때문에 [[항공전]]에도 초기에는 일기토에 가까운 결투가 일어나곤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