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인회황후 (문단 편집) == 상세 == 주황후는 개봉부 상부 출신이었으며, 무강군 절도사를 지낸 주백재의 딸로 태어났다. 휘종 정화 6년(1116년)에 황태자였던 조환이 황태자비로 들였다. 주씨가 황태자비로 있을 당시, 1125년에 북송과 [[금나라]]가 [[요나라]]를 멸망시킨 이후, 북송은 금나라와의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금나라는 북송에 대한 침략을 감행한다. 사태의 제1 원인 제공자였던 [[휘종(송)|휘종]]은 잽싸게 장남인 조환에게 덜컥 양위하고 조환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주씨도 황후가 되었다. 원인 제공자인 휘종의 책임회피에 흠종이 금나라와의 강화조약을 파토내면서, 송나라에게 제대로 열받은 금나라가 결국 개봉을 함락시켜 흠종과 휘종을 포로로 붙잡았다. [[정강의 변]] 항목 참조. 황후였던 주씨도 이때 금나라로 끌려가면서 모욕을 받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한편, 임안으로 천도했던 송나라 조정에서는 주황후의 생사여부가 오랫동안 전해지지 않았으며, [[영종(송, 13대)|영종]] 경원 3년(1197년)에 와서야 비로소 인회(仁懷)의 시호를 받을 수 있었다. 흠종과 인회황후 사이에서 태자 [[조심(송)|조심]]과 딸 유가공주도 있었는데 [[정강의 변]] 때 황후와 함께 금나라로 끌려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