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인조/대중매체 (문단 편집) ====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도 '''가장 비판받는''' [[군주]]. 광해군과는 완전히 다른 길로 가기로 결심한 대로 패륜적인 임금이 되지않도록 보여주려고 노력한 초기 모습은 높이 평가했지만, 결론은 자기가 만들어낸 참상을 보고 눈물을 흘리지만 그뿐. 책 초반에 인조의 초기 균형 감각과 자비는 꽤 괜찮다고 평가하고 있다. 즉위 직후 이귀가 왕족 인성군이 종친들을 거느리고 인목 대비를 폐하자고 주청한 것으로 죽이자고 하자 반대했다. 인성군은 이후 두차례나 역모[* 박홍구와 아들들이 광해군을 태상왕 삼고 인성군에게 전위시킨다고 했었다.]에 이름이 거론되었으며, 이괄의 난에서도 인성군이 직접 자금 제공을 하는 등 참여했다는 진술에도 참고 그를 살려주었다. 결국 끝내 북인 유효립의 역모 사건 때문에 인성군을 죽이기는 했지만 성의성의 간언에 인성군의 가족에 대한 [[연좌제]]를 물리쳤으며, 이후 사후 10년만에 명예를 회복시켜주었다. 또한 광해군 같이 특정 당파만 등용하고 특정 개인에게 힘을 몰아주지 않는 것 또한 높은 평가를 내렸다. 이귀가 선조 시절에 동인이 [[이이(조선)|이이]]와 [[성혼]]을 비판할 때 선조가 "이이, 성혼이 당이라면 자신이 먼저 들어가고 싶다"라는 것을 회상시키는 장면이 있는데, 이렇게 이귀가 스승을 높이자 인조는 듣기 싫다며 "당이란 말은 비록 주자의 말이라도 듣고 싶지 않소 "라고 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인조편 마지막 파트의 제목은 대놓고 '''무엇을 하였는가'''이며, 선조와 비교해도 '''[[반어법|사실 선조를 훌쩍 뛰어넘는 왕이었다]]'''고 평했다. 박시백 화백도 인터뷰에서 "지도자로서는 빵점이며 가장 그리기 싫었던 편"이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작가가 고종 편에서는 인물 평가를 최대한 배제했기 때문에, 결국 이 작품 전편을 통틀어 인조를 가장 심하게 비판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건 작가 본인이 최고로 좋아하는 조선 왕 3명 중에 한 명으로 광해군을 뽑았을 정도로 광해군을 좋아하는 편이기에 그런 점을 감안할 필요도 있다.][* 물론 작중 광해군의 딱봐도 포스가 넘치는 디자인과 보기만해도 찌질해보이는 인조와 선조 디자인(...)을 보면 작가가 광해군빠라는 건 부정하기 힘들지만, 내용 면에선 광해군의 실정에 대해서도 가차없이 깠다. 특히 옥사 부분에는 상당한 분량을 할애해서 깠다.] 인조 편 마지막 페이지에 "패륜을 명분삼아 반정한 그였지만 '패륜'에 있어서도 밀려 보이지 않는다"라고 써 놓았는데 그 다음 장면에 광해군 그림이 나오면서 "밀리긴? 나보다 더하구먼. You Win "이라고 써 놓은 걸 보면 진짜 싫어하는 듯.[* 박시백 만화와 대중의 이미지를 인용하여 선조를 지나치게 폄하하는 여론이 인터넷에 많은 편인데, 적어도 선조는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나라를 지켰으며 매우 양호한 편에 속하는 왕이다(박시백의 만화에서도 선조의 정치력, 판단력, 인사 방식 등은 어느 정도 잘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인조의 인선은 권력유지를 제외하면 모두 무능했다. 거기다 선조는 도읍인 한양을 1번 떠났지만 인조는 무려 3번이나 떠났고, 선조는 폐세자를 희망'''만''' 했지만 인조는 실현하고 심지어 '''죽였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책에서도 선조가 엑스트라로 출연해 '''"2:0, 네가 이겼어."''' 라고 한다.] 박시백은 완결 인터뷰에서 작품 속 가장 짜증나는 인물 2명 중 하나였다고 '''대놓고 말했다.''' 나머지 1명은 인조의 할아버지 선조.[* 선조에 대해 상황 판단은 잘 하는데 책임을 지지 않고 잔머리를 너무 굴린다고 깠다. 선조 편 당시에도 슬그머니 한발 뺐다가 나중에 책임전가하는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