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인술라 (문단 편집) ==== 분뇨 ==== 요강(lasana)이나 좌변통(sellae pertusae) 등 항아리에 볼일을 본 다음, 도랑 혹은 계단 밑이나 앞에 있는 공동 분뇨 수거통(dolium)에 버리거나, 공중 화장실을 이용하였다. 때로는 무두장이 등이 작업에 사용하고자 오줌을 수거해가기도 했다. 하지만 곱게 도랑에 따라내는 사람은 "교양 있는"사람이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술라의 계단을 오르내리기 귀찮아했기 때문에[* 인술라는 카이사르가 만든 [[법률]]에 의해 '''8층'''까지만 층을 쌓을 수 있도록 제한되어 있었는데, [[로마 제국]] 당시에는 [[엘리베이터]]는 당연히 없었고, 층을 8층까지만 쌓을 수 있다는 법이 있었다는 말은...] 오수나 수챗물 등을 창문에서 바깥의 도랑을 향해 대충 뿌리는 일이 많았는데, 이 때 행인에게 오물이 튀는 경우가 많았다. 시인 유베날리스는 인술라 근처를 지나면 누군가 던진 물건에 맞아 다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시를 짓기도 했으며, 하도 이런 불상사가 많았는지 이를 규제하는 법률이 생길 정도였다. 단, 창문 밖으로 오물을 뿌리는 행위는 낮 시간 동안만 제한되었으며, 밤에는 얼마나 뿌려대건 상관이 없었다. [[http://odukhu.egloos.com/2268736|#]] 또, 공동의 분뇨를 모으는 항아리는 당연히 냄새가 아주 잘 풍겼기 때문에, [[카이사르]] 시대에 특히 열악한 동네나 좁은 길목들은 계단 앞에 놔둔 분뇨통 때문에 악취가 진동했다고 하며, 집주인의 성향에 따라 집주인이 자신의 인술라에 이를 비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러한 경우 이웃에 접한 인술라의 것을 사용하기도 했다. 공중 화장실은 지금의 유럽도 그렇듯이 이용료를 지불해야 했기 때문에 많이 사용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하수도 시설이 아우구스투스 때 들어서 확충되기 시작했지만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분뇨투척은 그 뒤로도 지속되었다.[[https://raviandjune.tistory.com/6|#]]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