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인생(영화) (문단 편집) === 1960년대 [[문화대혁명]] === 세월이 흘러 1960년대 중국에서는 마오쩌둥이 주도한 문화대혁명이 뒤흔든다. 푸구이는 예전에 룽얼이 처형당하는 것을 보고 부귀영화에 대한 미련을 다 버렸고, 요우칭을 치어 숨지게 한 춘성이 미안한 감정에 푸구이를 좋은 자리에 앉히려고 하지만 이것도 다 거절하고 아내와 함께 물장사에만 머물렀기 때문에 오히려 이 시기를 무사히 보낸다. 이 시기에 뉴촌장의 중매로 딸 펑샤는 공장 홍위병 지도자 완얼시(万二喜)와 결혼하게 된다. 완얼시는 원래 선천적 장애가 아니라 공장에서 일하다 불의의 사고로 크게 다친후 발을 절게 되었다. 마오쩌둥과 당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한데다가, 산업재해 피해자로 혜택을 받아서 근로 감독관이 되었다. 단지 장애 때문에 결혼을 하지 못하여 같은 장애인인 펑샤와 혼담이 오가게 되었다는 내용이 있다. 완얼시는 공장의 홍위병 지도자이지만,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서 장인에게는 매우 예의바르게 행동한다. 완얼시의 경우는 지역내 작업장 즉 공장의 '''근로 감독관'''이므로 현재의 직위로 따지면 부장~상무 사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공산당의 공무직은 등급제에 따라 23~1등급까지 나뉘어서 급여 및 배급도 차등을 두었다.[* 장융의 대륙의 딸에선 쓰촨(사천)시를 관할하는 시장이자 국장인 실제 아버지가 10등급, 실제 어머니인 샤오홍은 열렬한 공산당원이자 청렴했던 아버지의 의지에 따라 17등급에서 훗날 15등급까지 승진되었는데 어머니의 직함은 쓰촨시 여성 노동국 부국장이었다. 완얼시의 경우엔 적어도 21~20등급 정도로 추정된다. 10등급인 아버지에게 주어진 배급 혜택은 전용 관리인 1명과 2~3명의 무장한 보초병이 지키는 현대식 아파트에 전화가 개통되어있고 2일에 한 번씩 뜨거운 온수샤워가 가능했으며 아버지 봉급 외에 한 달에 한 번씩 나오는 노랑 쿠폰을 바꿔 달걀 10개, 식용유 800g, 설탕 600g, 고기 및 육류 1.2Kg, 사과 같은 과일류는 작황 사정만큼, 포풀러 광목 등을 포함한 옷감 3필인데 비해 어머니의 초록 쿠폰은 그의 1/4 수준이었다. 그리고 공산주의 사상에서 금지된 서구의 문화, 즉 마돈나나 비틀스 같은 것도 극장에서 수시로 봤었다고 회고한다. 소설 중 장융은 어린 시절 외할머니와 함께 배급소에 가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쿠폰을 바꿔서 장을 봤다고 회고하고 있다.] 이 시기는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지배하던 시기라서 결혼예물은 [[마오쩌둥 어록]]과 마오쩌둥 뱃지, 결혼예복은 턱시도와 웨딩드레스가 아닌 [[인민복]]이고, 축시는 마오주시, 축가도 마오찬양가가 나온다. 이때 요우칭을 본의 아니게 죽인 이후로 아직도 이 가족에게 용서를 받지 못한 춘셩은 나중에 푸궤이에게 선물을 전달하지만 지아전은 그 선물을 돌려보내라고 한다. 그 뒤에 푸궤이의 말이 걸작인데, 바로 마오쩌둥의 초상화를 들면서 '뭐? 이거 마오주석님인데?'(…) 이후 푸구이는 사위 얼시로부터 춘셩이 주자파로 찍혀 비투회에 출두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듣는다. 비투회는 홍위병의 사설 인민재판으로 이 영화에 나오는 왕교수처럼 조리돌림으로 끝났지만, 심한경우는 홍위병의 [[린치]]로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다. 춘성은 주자파로 찍혀 모진 고생을 당하고, 아내까지 자살하는 비극이 닥치게 된다. 견딜 수 없게 된 춘셩은 자신의 모든 돈을 푸궤이에게 건내주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나 푸궤이는 통장을 다시 돌려주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견뎌내야 한다. 지옥 같은 전장에서도 살아 돌아왔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끝내려고 하나?'라고 하면서 춘셩을 다독인다. 지아전 또한 돌아가는 춘셩에게 '당신은 우리에게 목숨 하나를 빚졌으니 열심히 살아나가야 한다.'고 격려해준다. 지아전이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춘셩을 용서해준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장면. 한편 매번 소식을 전해주던 뉴촌장도 푸궤이를 찾아와, 그림자극 도구도 반동으로 몰리니 태울 것을 강요한다. 결국 다 태우는 것을 지켜본 후 쓸쓸히 사라진다. 얼마안가 푸궤이는 뉴촌장에게 중매해줘 고맙다고 예물(달걀)을 들고 찾아오는데 뉴촌장은 씁쓸하게, 자신이 반동으로 몰려 홍위병이 주최하는 비투회에 출두하게 되었다고 이야기 한다. 푸궤이도 여기에 대해서는 '왜 죄다 주자파 반동으로 몰리는거지?'라고 불만을 표한다. 펑샤는 만삭이 되어 산통으로 병원에 입원하는데, 당시는 문화대혁명 시기라 병원에 있던 의사란 의사들은 죄다 [[반동#s-2]]으로 분류되어 [[홍위병]]들이 죄 잡아가 버려, 남아있는 사람이 없었다. 병원을 지키고 있었던 건 생초짜나 마찬가지인 학생들 뿐이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병원에 베테랑 의사-간호사는 모두 반동으로 비투회에 끌려가고, 졸업도 안한 의대생과 간호대생들이 의사, 간호사랍시고 병원에 진을 치고 있었던 거다. 병원에 온 푸궤이 가족은 베테랑 스탭이 하나도 없는 상황을 걱정하고, 완얼시는 공장 홍위병 지도자라는 신분을 이용해, 비투회에 끌려가 있던 대학 교수급 전문의 왕교수를 빼와 진료를 보게 하려 한다. 홍위병들이 이를 거부하려 들자 "왕교수는 이전에 가난한 노동자들은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없다 한 적 있소. 우리가 그의 눈 앞에서 건강한 아이를 낳아 그가 틀렸음을 보여 줍시다!"라고 즉석에서 말을 지어냈고, 홍위병들이 그 말을 듣고 태도를 바꿔 바로 그를 데려온다. 석방된 왕교수는 홍위병의 등쌀에 며칠간 굶어서 힘이 하나도 없어, 이를 안타깝게 본 푸궤이는 밖에 나가 [[만터우]]를 사와 왕교수에게 준다. 그 와중에 완얼시와 펑샤의 아들은 무사히 태어났다. 왕교수는 허기에 허겁지겁 먹다가 체했고, 이를 본 푸궤이는 물을 가져다주지만, 위속에서 만터우가 물을 만나 불어서 혼절한다. 문혁때는 미식도 부르주아의 행동이라는 이유로 음식점들이 죄다 문닫거나, 만터우나 죽같은 음식만 팔았다. 그리고 지금도 중국 서민들이 만터우를 먹는 이유가, 차와 같이 마시면 배를 값싸게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갑자기 펑샤가 산후 출혈을 하게 되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인 홍위병 의대생들이 어버버 하고 있는 가운데서 왕교수는 혼절해 있어서 도움을 주지 못해, 과다출혈로 사망한다.[* 이후 푸궤이와 지아전은 딸의 무덤 앞에서 당시의 사실을 담담하게 읊조리는데, 그때 그 교수가 앉은 자리에서 만터우를 무려 7개를 먹었다. 만터우 1개가 물을 만나면 거의 7배로 불어나는데 결국 그는 만터우를 49개(...) 먹은 셈이었다고.] 여기서 재밌는것은 펑샤의 아들은 이름을 만터우로 짓게 되었는데, 그 이유가 뭔고 하니 '옛 사람들이 말하길, 음식 이름으로 사람 이름을 지으면 염라대왕이 음식으로 착각하고 수명을 일찍 정하지 않아서, 그만큼 더 오래 산다'는 것이었다. 만약에 홍위병들이 들었다면 봉건사회의 잔재+미신을 믿는 반동이라면서 펄쩍 뛰었을 것이다. 이후 후일담에서 혼절했던 왕교수는 트라우마로 인해, 만터우 뿐만 아니라 밀가루 음식은 입에도 대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푸궤이 왈 "그럼 쌀만 먹을 텐데, 쌀값은 꽤 비싼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