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인민전선 (문단 편집) === 프랑스 === [include(틀:프랑스 좌파 관련 문서)] Front Populaire > "노동과 자유 그리고 평화의 인민전선이라는 구상을 선전하고 급진주의자, 공화주의자 그리고 민주주의자들과 함께 공동행동을 펼칠 계획을 말하게 되어 기쁩니다. ...(중략)... 공산주의자들이 원하는 강하고 자유로우며 행복한 프랑스를 만들기 위해 투표하십시오." >---- > 모리스 토레즈 [[프랑스 공산당]] 서기장, 1936년 4월 17일 1936년 [[프랑스 제3공화국]]에서 사회주의 정당인 [[SFIO]]([[노동자 인터내셔널 프랑스 지부]])[* 현 [[사회당(프랑스)|사회당]]의 전신]와 좌파 자유주의[* 당시에는 사회자유주의라는 용어 대신 [[급진주의]]라는 말이 쓰였다.] 정당인 [[급진당(프랑스)|급진당]](Parti Radical)[* 정식 명칭은 공화주의 급진주의 급진사회주의당 PRRRS. 3공화정 후반의 지배적인 정당이었다.], [[프랑스 공산당]](PCF)이 연합하여 수립되었다. 그해 열린 총선에서 승리하여 집권에 성공했으며, SFIO의 당수인 [[레옹 블룸]]을 총리로 하는 연립 내각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의 차이, 급진당과 공산당의 다툼으로 1938년 인민전선은 사실상 붕괴했다.[* 특히 스페인 내전 개입에서 급진당이 반대한 것이 치명타였다.] 내흥을 겪는 와중에 나머지 좌파들은 우파에게 정권이 넘어가지 않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달라디에 총리와 급진당[* 자유민주주의 정당이었으나 프랑스의 주요 부르주아 정당이기도 했고 19세기 말 프랑스 식민제국 확장에도 관여한 바 있다.]의 정권 독점을 용납했다. 결정적으로 소련이 히틀러와 [[독소불가침조약]]을 체결하면서 다른 진보-좌파 세력의 통수를 후려갈겼다. 프랑스 공산당 역시 조약체결 이후 반독 반파쇼 투쟁에 모호한 입장을 내비치다가 매국노 집단으로 몰려 인민전선에서 손절 당하고 정당지위도 박탈당하는 수난을 겪었다.(...) 그리고 1940년 [[나치 독일]]에게 [[파리(프랑스)|파리]]가 함락되고 [[비시 프랑스]]가 들어서며 프랑스의 인민전선은 제3공화국과 함께 짧은 역사를 끝마치고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길지 않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인민전선의 성립과 경험은 인민전선의 붕괴 이후로도 프랑스 국내 정치지형에서 좌파-사회주의적 공화주의와 우파-자유주의적 공화주의를 나누는 기본틀로 작용했다. 직접적으로는 나치 독일의 점령기 중에 비시 정부 수립과 레지스탕스 간의 새로운 분열구도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 더 나아가 인민전선은 대전 이후에도 프랑스의 새로운 정치지형뿐만 아니라 냉전시기 프랑스의 사회운동 및 노동자 문화의 이념적 기준으로 제시되었고 그 방향을 결정할 만큼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