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희호 (문단 편집) == 신앙 == 맨 위의 프로필에서 봤듯이 종교는 [[개신교]]이며, 교파는 [[감리회]]이다. 애초에 집안 자체가 개신교 집안에 이희호 본인도 [[모태신앙]]으로써 어린 시절부터 신앙심을 키워왔고, 한 때는 [[주일예배]]와 [[수요예배]]는 물론 평일예배 전체에 참석한 적도 있을 만큼 매우 독실했다고 한다. [[세례]]는 1937년 [[이화여자고등학교|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와 이웃해 있는 [[정동제일감리교회]]에서 받았다. 애초에 미국 유학을 갈 수 있었던 것도 미국 북감리회의 추천과 지원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화여자대학교|이화여자전문학교]]에 입학하고 여성 운동가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는 활동이 바빠져 그 정도까지 열성적으로 교회에 나가지는 못했으나, 여전히 교회 사업, 주일학교, 여름성경학교 등에 관심을 가지는 등 꾸준히 교회 관련 일을 해왔다. 이후 1962년에 김대중과 결혼하여 동교동으로 자리를 잡아 온 이후부터는 창천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고 사망 직전까지도 창천교회의 [[장로]]였다. 다만, 고령의 나이 때문에 시무장로에서는 은퇴한 상태였다. 창천교회는 이희호와 꽤 인연이 깊어서, 1998년 서명회와 2008년 <동행> 자서전 출판 당시 책 사인회도 창천교회에서 진행했을 정도다. 창천교회는 이희호와의 인연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4주기까지는 추모 예배를 드렸다.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김대중은 [[가톨릭]] 신자였고, 이희호가 낳은 김홍걸만은 어머니와 같이 창천교회에 출석하는 개신교 신자이다. 이복형들은 아버지처럼 가톨릭 신자들이다. [[혼인성사]] 당시 관면을 본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은 이희호와 막내아들에게 각자의 신앙 생활에 충실할 것을 당부하였고, 이는 가정 내 [[그리스도교]] 일치와 이해의 좋은 예로 평가받는다. 이희호가 [[일본]]에서 연설했을 때는 [[기독교]]적인 표현이 60차례나 넘게 등장해 화제가 된 바 있으며, 장례식 역시 개신교식으로 엄수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