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희근 (문단 편집) == 선수 경력 == 중앙고 시절 주장 김재호와 함께 2002년-2003년 2년 연속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준우승을 경험하였고 [[성균관대학교 야구부]]로 진학했다. 성균관대에서도 팀이 상위권을 지키는데 기여했다. 주전포수인 [[신경현]]에 밀려 선발 출장은 적지만 그래도 붙박이 1군인 백업 포수다. 데뷔 첫 해인 2008년 시즌 중반, 팀의 백업포수 [[심광호]]가 [[이여상]]과 트레이드되면서 출장 기회도 잡을 수 있었고, 어느정도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단 장점덕분에 2009년에는 용병 마무리 투수인 [[브래드 토마스]]의 전담 포수를 맡기도 했다. 다른 용병투수들도 보통은 그가 맡는다. 경험이 많이 필요한 포수라는 포지션상 신인인 그가 출장할 기회는 적을 듯 하지만 주전 포수가 [[한상훈|한]][[고동진(야구선수)|고]][[신경현|신]][[유원상|유]]의 한 명인 관계로 데뷔 이래 꾸준히 출장하고 있다. [[신경현]]을 제외한 포수 중에 가장 나은 게 이희근이기도 하고. 그러나, '''[[신경현]]에 비하면 수비능력이 좋다고 말하기 힘들다.''' 블로킹은 좀 하지만 도루저지율은 그야말로 악몽. 2011시즌에는 [[신경현]]과 함께 최악의 도루저지를 보여주어 한화 상대팀들은 너도나도 도루하고 있다. 그렇다고 타격이라도 되냐면…. 그냥 한숨이 절로 나온다. 데뷔 첫 해인 2008년에는 그래도 2할은 쳤지만 2009~2010 시즌에는 1할대 타율을 보여 주었다. 3시즌 동안 안타도 56개에 불과하고 그 중 홈런은 1개…. 그래도 2011 시즌, [[신경현]]이 투수리드나 수비, 도루저지, 타격 모든 부분에서 난조를 보이고 있어 출장횟수가 늘어나고 있다. [[류현진]]의 2011 시즌 첫 승리도 이희근이 배터리를 맞추었고…. 본인이 잘해서 자주 기용되는게 아니고, 주전포수의 부진으로 기용되고 있다. 그리고 잉여'''였다'''. 그런데 5월이 되자 '''한화 상승세와 함께 달라졌다!''' 4월까지만 해도 3년 연속 1할(…)타율이라는 대기록을 보여줄 것만 같던 그가 조금씩 타율을 올리더니 무려 2할 7푼(!)까지 올라간 것이다. 잠깐의 반짝이라도 5월까지 70여 타석에서 타격이 상승세를 보여주면서 한화 포수의 세대교체의 신호탄을 올렸다. 그러나 이러한 희망적인 모습에도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데 주전 포수의 백업으로 키워지고 있는 이희근이 '''대졸선수에 미필'''이라는 것이다. 고졸 신인이면 아직 군대가 좀 멀었지만 2011시즌 기준으로 4년차인 대졸 선수는 곧 병역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주전포수인 신경현도 나이로 보아 몇 년 뒤면 은퇴할 거고, 그때즘이면 이희근은 군대에 가야하는데 그럼 한화의 포수는 누가? 답이 없다. [[김인식]]-[[한대화]] 비판론으로 자주 사용되는 근거 중 하나다.[* 그런데 2004년부터 시작된 [[박노민]]-[[정범모]]-최연오-이희근-[[나성용]]으로 이어지는 집중적인 포수 상위픽에서 이희근이 그나마 1군 백업으로 뛰고 있는걸 보면 스카우트와 코치도 책임을 면하기 힘들 듯…. 특히 10년동안 포수 하나 못키운 [[조경택]] 배터리 코치.] 본받고 싶은 선수는 [[주니치 드래곤즈|주니치]]의 안방마님 [[타니시게 모토노부]]. [[정재원(1984)|정재원]]의 요청으로 등번호 39번을 내준 후 새로 선택한 27번이 바로 다니시게의 번호이다. 그러나 [[한대화]] 감독은 '다니시게가 이렇게 못치던가?'라며 갈궜다.(…) 그리고 갈굼의 효과인지 5월 들어서 정말 다니시게 안부러운 활약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방망이가 아주 잘 맞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주자가 없을때만 친다는 점. 2011 시즌 종료 후 [[상무 피닉스 야구단|상무]]에 입대, 2014 시즌에 팀에 복귀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