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훈재 (문단 편집) === 기아자동차 시절 === 이훈재가 입단하던 1989년의 기아자동차는 [[유재학]]-[[허재]]-강정수-[[정덕화]]-[[김유택]]-[[한기범]] 등 국가대표 라인업을 구성, 1988-89 농구대잔치부터 [[1992-93 농구대잔치]]까지 전무후무한 대회 5연패를 달성하던 그야말로 최강 멤버들이었고, 특히나 [[김유택]]-[[한기범]]의 국가대표 쌍돛대는 신예 이훈재나 이준호가 비벼볼 여지조차 주지 않았다. 출장 기회조차 잡기 힘들던 기아에서의 한 시즌을 보내고 [[상무 농구단|상무]]에 입대한 이훈재는 [[최병식]](193cm)과 함께 상무의 골밑을 지키며 [[1990-91 농구대잔치]]에서 상무를 4강까지 이끄는 돌풍을 이끌기도 했지만, 제대 후 복귀한 팀에서 이훈재의 자리는 다시 벤치였다. 하지만 최강 기아자동차의 5연패 기간 동안 이훈재는 부상으로 신음하던 [[한기범]]과 불미스러운 일로[* [[1989-90 농구대잔치]] 당시 간통 사건으로 출장정지를 받았다.] [[김유택]]이 각각 자리를 비울 때마다 주전으로 나서 골밑 수비 한 자리를 훌륭히 메웠고, 1992년에는 주전 멤버 강정수, [[정덕화]]가 나란히 은퇴하며 백코트에 공백이 생기자 3번자리로 포지션을 변경해 외곽수비까지 담당하는 등, 화려한 주전 라인업([[허재|허]]-[[강동희|동]]-[[김유택|택]] 트리오)로 대표되던 기아자동차에서 궂은일 담당으로 팬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1993-94 농구대잔치]]에선 주전들의 노쇄화 속에 팀의 농구대잔치 8강 탈락 및 6연패 좌절을 지켜봐야만 했으나, 이듬해 [[1994-95 농구대잔치]]에서는 아예 주전 스몰포워드 자리를 꿰차면서 상대팀 에이스들([[서울 삼성 썬더스|삼성전자]] [[문경은]], [[안양 KGC인삼공사|SBS]] [[정재근(농구)|정재근]], 고려대 [[양희승]], 연세대 [[우지원]] 등)을 꽁꽁 묶는 찰거머리 수비를 자랑했고, 가끔씩 저돌적인 돌파를 선보이며 기아자동차가 통산 6번째 우승을 차지하는데 크게 공헌했다. 이후 공수 만능 스몰포워드 [[김영만(농구)|김영만]]이 입단하면서 출장시간이 다소 줄긴 했지만, 내외곽을 가리지 않는 전천후 수비력은 여전했고, [[1995-96 농구대잔치]]에서 기아자동차의 통산 7번째, 이훈재 개인으로선 5번째 농구대잔치 우승을 거머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