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효석 (문단 편집) === 대학 시절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gasan_ihyoseok_isipdae.png|width=100%]]}}} || ||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재학시절 || 이효석은 [[대학예과|경성제국대학 예과]] 1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1925년]] [[12월]] 예과생도회에서 간행하는 <清凉>[* 개교 1주년 기념 제1호(1925)부터 [[태평양 전쟁]] 개전 후 전시체제로 전환되면서 제30호(1941)를 마지막으로 정간될 때까지 꾸준히 발간된 경성제대의 대표 간행물이었다.] 제2호(1925.12)에 아일랜드 문예부흥을 주도한 [[예이츠]]가 아일랜드 전통적 세계를 몽환적으로 다룬 시 ''The Stolen Child''를 일본어로 번역한 ''窃まれた兒''를 게재한 것을 시작으로 제3호(1926.3)에 ''冬の市場'', 제4호(1927.1)에 ''六月の朝外五篇''를 싣는 등 예과 생도 시절부터 활발히 문예 활동에 참여했다. [[1927년]] [[3월]] 예과를 수료하고, 이어 [[4월 1일]] 법문학부로 진학한 이효석은 당초 예과에서 문과A반이었기 때문에 법학과로 진입하게 되어 있었으나, 문과B반 동기들과 함께 문과로 올라가 문학과로 진입하였다. 전공으로 사토 기요시 교수의 [[영문학]]을 택한 그는 학부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28년]] 잡지 <조선지광>에 단편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하였다.[* [[1925년]] 『매일신보』 신춘문예에 시 <봄>이 선외가작(選外佳作)으로 뽑힌 일이 있다.] [[1929년]], 학위논문으로 [[예이츠]]에게서 영향을 받은 아일랜드의 극작가 존 밀링턴 싱(John M. Synge)의 희곡을 분석한 ''''를 제출했으며, [[1930년]] [[3월]] 문학사 칭호를 수여받고 학부를 졸업하면서 법문학부 조선인 학생들이 발간하는 <新興>(1930.4)에 [[키플링]]이 인도를 배경으로 쓴 작품인 ''Venus Annodomini''[* [[1886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키플링]]이 인도를 배경으로 한 40개 단편을 모아 [[1888년]] 발간한 작품집 에 재수록된 작품이다.]를 번역해 게재했다. 이렇게 대학 시절 이효석은 영국의 식민지인 아일랜드와 인도에 관심을 나타내며, 식민지의 삶에 천착했다.[* 이효석이 [[예이츠]]나 싱 같은 아일랜드 작가, 그리고 인도를 다룬 [[키플링]]의 작품에 관심을 가졌던 데는 당시 경성제대 법문학부의 영문학 전공 주임이자, <아일랜드문학사>(愛蘭文學史)(1925)를 저술한 사토 기요시 교수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추정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