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홍장 (문단 편집) === 실각과 말년 === 하지만 청나라의 군사력이 [[청일전쟁]]에서 무참히 무너지면서 정치적인 영향력을 잃어버리고 실각하고 말았다. 다만 이건 마냥 이홍장의 잘못이라고 보긴 애매한 게, 당시 서구 문물의 수입을 과하게 한 탓에 청의 경제가 붕괴 조짐을 보이자 불가피하게 경제 자립화를 위해서 군사력 강화를 중단한 것이었다.[* 실제로 1890년대에 들어서서 이르면 청나라는 열강들로 부터 빌린 차관도 거의 다 상환하고 무역수지도 빠르게 호전된다.] 근데 하필 그 시점에 청일전쟁이 터진 게 불운이라면 불운이었다. 하여튼 [[청일전쟁]]을 정리하기 위한 [[시모노세키 조약]] 체결 과정에서 일본은 "이홍장 아니면 전후 협상을 안 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전권 위임 대사라면 관직이 낮은 것은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관직이 높을수록 협상은 잘될 것이며 특히 '''이홍장'''이나 [[공친왕]]이 직접 오시면 제일 좋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조약을 실제로 이행할 권한을 가졌기 때문이지요."라고 요구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홍장이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하기 위해서 72세의 노구를 이끌고 갔는데, [[일본 제국|일본]]의 [[극우파]]인 [[https://ja.wikipedia.org/wiki/小山豊太郎|고야마 로쿠노스케]]에게 저격당해 총알이 얼굴에 박히는 부상을 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음 날 다시 얼굴에 [[붕대]]를 감고 협상장에 나서는 위엄을 보여주었고, 결국 이홍장이 건강 악화로 귀국해 국제 여론이 악화될 것을 두려워한 일본 측이 3억 냥의 배상금을 2억 냥으로 줄이고 당초 톈진 할양 요구에서 [[타이완]] [[할양]]으로 대신하는 합의를 해주었다. 물론 이것만 해도 청 중앙 정부의 1년치 총수입을 뛰어넘는 엄청난 액수였지만, 청 입장에선 손해를 꽤 줄였다. 한편, 범인인 고야마 로쿠노스케는 사로잡혀서 [[무기징역]]이 선고되었으나 [[1907년]] 12년 만에 출옥되어 천수를 누렸다. 근데 천수를 누리다가 [[일본 제국]]이 잘 나가는 것을 보는 듯하더니 [[미국|결국]]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원폭]] 공격당하고 [[태평양 전쟁]]에서 패전하고 [[1947년]] [[일본국 헌법]]이 시행되는 것까지 보았다. 이후 일시적으로 재기용 되기도 했으나, [[개혁]]파 중에선 [[온건파]]에 가깝던 그를 '''[[변법자강운동]]''' 당시 [[급진파]]들이 [[서태후]]와 연합을 할 까봐 우려해 멀리하였고 결국 다시 한직으로 밀려난다.[* 그의 강력한 북양군은 [[위안스카이]]가 이끌게 되었고 결국 '''[[청나라]]를 멸망시키는 도구가 되고 만다.'''] 그리고 다시는 재기하지 못한 채 [[신축조약]]으로 [[청나라]]가 사실상 반(半) [[식민지]]화가 된지 두 달이 지난 1901년 11월에 사망했다. 향년 78세였다. [[유언]]으로는 '''"인재를 키우고도 나라를 망쳤으니 그야말로 한스럽도다!"''' 이후에도 의식은 있는 채 하루를 더 생존했으나 병이 심각해져 말을 하지 못했고 끝내 눈을 뜬 채로 눈물을 흘리기만 하자 좌우에서 '''"공께서 하지 못하신 일은 저희가 이루겠습니다."'''라고 말하자 그때서야 비로소 눈을 감았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