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해찬 (문단 편집) == 여담 == * 정치사를 통틀어 민주진영에서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을 제외하고 이만큼 정치력을 가졌던 정치인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국민의 정부]] 시절 [[교육부장관]], [[참여정부]] 시절 실세 [[국무총리|총리]], [[문재인]] 정부 시절 [[더불어민주당|집권 여당]] 대표를 맡았고 [[지역구]] 선거에서 7번을 도전하여 7번 모두 당선되었다. 정치인으로 살았던 30여 년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권력의 중심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었으며, 위기라 하면 [[김종인]] 비대위원장 재임시 공천을 받지 못했다는 것인데 그마저도 [[무소속]]으로 출마해서 당선이 되었고 결국 여당 대표까지 지냈다. 심지어는 정치 인생의 마지막에 다시 없을 총선 승리를 거두면서 은퇴했다. 30년 동안 운도 많이 따랐겠지만 본인이 엄청난 실력이 없다면 이룰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대단한 정치력을 가졌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 [[인민혁명당 사건]]의 영향을 받아, 정권에 의한 [[사법살인]]이 자행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공식적으로 [[사형제]]를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http://www.newstow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9562|#]] * [[신림동]]에서 1978년부터 '광장서적'이라는 서점을 운영한 바 있다. 이 서점은 이해찬이 국회의원이 된 후에는 동생 이해만이 운영하였으며, 처음에는 인문사회과학 서점이었으나 이후 고시서적을 주로 취급하게 되었는데 비교적 가격이 비싼 고시서적을 할인 없이 판매해 괜찮은 수익을 올렸을 것으로 보인다. 유서가 깊고 규모가 큰 서점이어서, 신림동 고시서점 중 목이 좋고 가장 유명했던 '상원서적'과 함께 신림동 [[고시촌]]의 [[랜드마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었으나, [[법학전문대학원]]이 도입되면서 여느 고시서점들과 마찬가지로 몰락하여 2012년 12월 31일 부도를 내고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광장서적이 있던 자리에는 현재 '북션' 서점이 들어서 있다. * 강성 성향에 직설적인 언어로 인해 호불호가 뚜렷하게 갈리는 정치인이다. 그렇다 보니 별명도 크게 갈리는데 지지자들 사이의 애칭은 '해찬들'[* [[고추장]] 브랜드에서 따온 별명이다.], '찬들이형', '해찬옹' 또는 '대장부엉이'라 불리며, 비토 세력들에게는 '해골'[* 얼굴에 워낙 살이 없고 두개골이 드러나는 형상이라 붙은 별명이다. 군사독재정권 시절 고문을 받아 몸이 안 좋아졌기 때문이다.], '해골바가지', '[[해골찬]]'[* 이는 일명 '[[똥파리(정치)|똥파리]]'라고 불리는 [[이재명]] 극성 안티층으로부터 얻은 별명이다. 젊은 시절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등으로 인해 [[https://youtu.be/lPuw9BSZqjc?t=1741|안기부에 끌려가 고문을 받은 탓에 건강이 안 좋아진 모습을 조롱하는 별명]]인데, 자칭 민주당을 지지하면서 [[문재인]]을 지킨다는 이들이 내뱉기에는 매우 부적절한 말이라는 비판이 많다.], '[[카서스]]', '[[사케찬]]', '이해골' 등의 [[멸칭]]들로 불린다. * [[국무총리]] 시절에는 [[노무현]]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의 자발적인 역할 분담으로 [[국무총리|행정부 2인자]]의 권한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게 되어 역대 [[국무총리]] 중 [[김종필|JP]]와 더불어 '''실세 총리의 대명사'''로 불리는 유이한 사람이 됐다. [[세종특별자치시]]의 설계 및 추진 또한 이해찬이 총리로 일할 때 이루어졌다. * [[더불어민주당|민주당]]에서 [[문재인]]과 함께 [[친노]]의 인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심지어 노무현 前 대통령 사후에 문재인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정계로 끌어들인 사람이 이해찬이었다.] 그래서 보통 언론에 '친노의 좌장'[* 사실 이해찬도 김근태의 후배로 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김근태와 함께 민주화 운동을 직접했기에 출신 정체성은 [[민평련]]계라 볼 수 있으나, 정치계에 와서 김대중 시대에는 [[동교동계]]에게 인정받고 노무현 대통령 시대에는 친노세력에게 인정받아 주류정치를 해온 사람이라 계파정체성을 논하기가 어려운 사람이다. [[친노]]나 [[친문]]이라는 것도 그의 정치인생 중 정체성의 일부일 뿐이지, 양정철이나 전해철처럼 개인적으로 본질적 소속 정치계파라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이해찬계라는 것도 딱히 없어서 확실히 애매한 정치인 중 하나다. 친노, 동교동, 민평련 등 여러 계파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하는 정치감각의 천재일 수도.]이라는 수식어가 자주 따라붙는 편이다. [[문재인]]도 깍듯하게 형님이라 부르면서 선배로 대우한 사람이다.[* 다만 문재인은 [[빠른 생일|빠른]] 53년 생인 탓에, 52년 생인 이해찬과 '''실제로는 동갑'''이다. 물론, 문재인 본인이 빠른 년생임을 내세워 이해찬과 친구처럼 지내는 게 아닐 가능성도 있다.][* 대학 학번도 72학번으로 같은데, 두 사람 모두 [[재수(입시)|재수]]했기 때문이다. 단, 이해찬은 대학을 떨어진 게 아니라 전공을 문리대로 바꾸기 위해 요즘말로 [[반수(입시)|반수]]를 해서 서울대에 두 번 들어간 것이다. 첫 입시 대학도 서울대고, 재수 후에도 서울대였다. 서울대 공과대학 71학번에서 서울대 문리대(이후 사회과학대학으로 바뀜) 72학번으로 바꿨다.] * 이해찬 본인이 [[김어준의 파파 이스]]에 나와서 한 말에 의하면 '''"[[https://youtu.be/GaxhfxrCk1w?t=372|정치를 안 한다던 문재인을 정치권으로 끌어들인 일등 공신이 바로 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김어준으로부터 '나쁜 일을 했군요'란 소리는 덤으로 들었을 정도. [[김어준의 파파 이스]] 135화에서 나온 말이다. * 당선되었을 때 캡처된 사진처럼 [[무표정]]인 모습이 많아서 [[포커 페이스]] 이미지로도 유명하다. 깐깐해 보이는 분위기까지 맞물려서 더욱 그럴싸하다.[* 분명히 같은 편인데도 적군처럼 찍힌 사진 탓에 오해를 받기도 했다.] * [[파일:1494484245075.png]] 위 사진은 동료 의원인 [[문희상]]과 함께 국회에서 열린 [[제19대 대통령 취임식|문재인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장면이다. 문희상은 [[참여정부]] 시절 초대 [[대통령비서실장]][* 마지막 대통령비서실장이 바로 [[문재인]]이었다.]으로 일했던 적이 있고, 이해찬은 앞서 말했듯이 참여정부 시절 법에 보장된 권한을 마음껏 행사했던 '책임 [[국무총리]]'로 일한 적이 있어서 둘 다 [[노무현]]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며,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유세를 지원한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우연히 취임식 날 사진에 표정이 이렇게 찍혀서 마치 반(反)문재인 성향 의원들이 억지로 참석한 모습처럼 보인다는 유머가 존재한다. * 민주당 의원들 중 인상파로 분류된다고 하며 이는 문희상과도 비슷하다. 그래도 살집이 좀 있어 웃을 때 밝은 표정이 묻어나는 문희상과는 다르게 까칠함이 많이 나오는 편으로 실제 성격도 어느 정도 대치된다고 한다.[* 문희상의 경우는 사람 좋은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해찬은 실제 성격도 까칠하다고 한다.] * [[사드 배치 논란]]에 대해서는 배치 반대 쪽인 걸로 보인다 [[http://naver.me/G76BRy1J|연합뉴스 2016]] * [[제20대 국회의원|20대 국회의원]]들 중 유일하게 [[국무총리|총리]] 경력이 있는 의원이었지만 이후 [[정세균]] 전 [[대한민국 국회의장|국회의장]]이 국무총리가 되면서 유일하지 않게 되었다. * 2010년대 들어 민주화 운동 시절에 당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보이는 증상을 자주 보이고 있다. 2017년 [[김어준의 파파 이스]]와 같은 공개석상에서 나온 모습을 보면 가끔씩 손을 떨거나 말이 끊기는데, 이는 젊었을 때는 보이지 않던 모습으로 예전에는 [[https://youtu.be/GfOrw7UChzE?t=3175|말을 날카롭고 빨리 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던 인물]]이다. 따라서 [[김근태|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여러모로 고문 후유증이 생긴 게 아니냐]]는 얘기가 있다. 특히 2018년 7월 20일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당대표 선거 출마 기자회견에서는 몸을 떨고 코를 훔치는 등 건강에 문제가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더불어민주당/2018년 전당대회|8.25 전당대회]] 분위기가 뜨거워 지면서 당권 경쟁자인 [[김진표]] 의원과 [[송영길]] 의원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이 건강 문제를 놓고 이해찬을 공격하기도 했는데, 당장 [[민주당계 정당]]의 영원한 정신적 지주인 [[김대중]] 전 대통령도 [[한나라당]] 측으로부터 고령을 이유로 [[치매]] 등의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루머로 공격 받은 적이 있고, 또 [[문재인]]도 대선 기간에 [[홍준표]], [[안철수]] 지지자들에게서 치매설 공격을 받은 적이 있던 터라 이를 보는 반응은 좋지 않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21대 총선]]에서도 건강이 상당히 악화되어서 3월 27일 병원에 입원했고, 이후엔 [[이낙연]] 공동선대위원장에게 선거 관련 업무를 일임하기로 했다. 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시민당]]의 공동 출정식 날에는 겨우 퇴원하여 연설을 했는데, 연설 내내 입이 떨리는 모습을 보였다. * [[민주당계 정당]]의 대표적인 선거 전략가 중 한 명으로 유명하다.[* 선거기획능력 또한 [[임채정]] 전 국회의장과 더불어 탑클래스로 평가받는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 [[조순]] 서울시장 후보 캠프에서 선거 전략을 담당하면서 조순 후보를 당선으로 이끌어 처음 선거 기획 능력을 인정받았고, 만 43세에 [[서울특별시 부시장|정무부시장]]까지 지냈다. 그 후 자신이 선거 전략에 관여하면서 대통령 세 명을 배출[* 1997년 [[김대중]] 후보 선거대책본부 부본부장, 2002년 [[노무현]] 후보 선대위 기획본부장, 2017년 [[문재인]] 후보 선대위원장], ''''킹 메이커''''라는 별명도 얻었다. 이런 능력을 인정받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요직을 지냈다. 지금까지 배출된 [[민주당계 정당]] 대통령들은 전부 이 사람의 손을 거쳤다고 봐도 무방하다. * 모친인 박양순 여사는 2017년 10월 30일, 향년 '''100세'''에 사망했다. [[https://news.joins.com/article/22068539|#]] * 2018년 6월 15일 [[TBS]] <장윤선의 이슈파이터> 와 한 인터뷰에서 [[더불어민주당]]은 개혁세력이긴 하지만 진보는 아니다. 중도우파에 가깝다고 평가했으며 한편으로는 [[더불어민주당]]보다 왼쪽에 있는 정당들은 우리나라의 사회 구조상, 깊이 뿌리내리기 어렵다고 말했다.[[http://www.tbs.seoul.kr/news/bunya.do?method=daum_html2&typ_800=R&seq_800=10285796|기사]][[https://youtu.be/ZO_9SYchK3U?t=335|영상]] * [[제21대 국회의원 선거|21대 총선]]이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나면서 이해찬 대표 역시 [[추미애]] 대표처럼 당 대표 임기를 정상적으로 마치고 물러날 수 있게 됐다. 재야에서 시작해서 국무총리, 7선 의원까지 할 만큼 다 한 정치 인생이 된 셈.[* 다만, [[제20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는 5월부터 [[더불어민주당/2020년 전당대회|전당대회]]가 있는 8월까지의 공백이 있기 때문에 3개월 동안은 잠시 원외 당대표가 될 듯 하다.] * 흔히 '''대통령 빼고는 다 해본 사람''' 이라는 별명은 [[김종필]]이나 [[이회창]]의 일생을 설명할 때 자주 사용되지만, 이해찬의 행적 역시 그런 별명이 붙어도 괜찮아보일 정도로 화려하다. 일단 국회의원 7선에 국무위원으로써는 주요부처인 교육부 장관 및 국무총리(그것도 책임 총리) 경력이 있고, 당직 역시 원내부총무에서 당무기획실장을 거쳐 선거기획단장, 최고위원, 당대표까지 요직 테크트리를 차근차근 다 밟아온 것. 심지어 정무부시장 경력도 있으니 지방행정 경력도 일단 모양새는 갖추고 있다. 다만 두 사람과 차이를 찾아본다면 정치인 이력 이외의 부분에서 법조인 출신으로 판사, 대법관을 거쳐 감사원, 선관위 등 감사/감시기관 경력을 가진 이회창이나 군인 출신으로 중앙정보부장 경력을 가진 김종필에 비해 이해찬의 경우는 순수한 정치인 이외의 공직경력은 사실상 없어 공직 경력이 단조로운 편이다. 그 대신 두 사람에게는 없는 재야 시민사회운동 경력이 있으니 나름의 색깔은 있다 할 수도 있겠다. * 아무래도 최근 지역구였던 곳이 [[세종특별자치시]]라서 그런지 [[세종역]] 설치에 적극적인 사람이었다. 다만 20대 국회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국회의원은 아니기 때문에 향후에 이 대목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지는 귀추가 주목된다. * 역대 [[국무총리]]들 중에서 [[정원식]], [[김부겸]]과 더불어서 [[아들]]이 없는 세 명의 국무총리 중 하나다. 단, 정원식은 [[딸]]만 넷을 두었고, 김부겸은 딸만 셋이고, 이 이해찬은 무남독녀 [[외동딸]][* 옥중에서 당시 아기였던 딸에게 쓴 편지(훗날 본인과 부인이 언론에 공개)에는 혼자는 외로울 테니 [[출소]]하면 동생을 낳아주어야 할 것 같다는 내용을 썼는데, 실제로는 그 [[편지]]를 쓴 이후 1년이 안 되어 출소했지만 낳지 않았고, 고대로 딸만 하나를 두었다.]만 있다. 아들이고 딸이고 자녀가 아예 없는 한덕수는 논외이다. 이해찬은 지극한 [[딸바보]]로 유명하다. 수감 중에도 당시 글을 모르는 아기인 딸에게 끊임없이 편지를 썼고, 부인이 [[임신]] 중 감옥에 가서 딸이 태어나는 것을 못 보고 있다가 출소한 것을 부인과 딸에게 평생 미안해했다고 한다. 이해찬의 부인이 신문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남에게 차가워도 부인인 본인에게는 부드럽고 자상한 걸 느끼지만, 딸 앞에서는 본인에게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껌뻑 죽는 모습을 보여왔는데, 딸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평생 보였다고 한다. * 정치인 중 [[담배]]를 즐겨 피우는 [[골초]]로 유명하다. 사실 [[민주당계 정당]] 소속 정치인들이 다른 정치인들보다 유독 담배를 많이 태우지만[* [[김대중]] 이래로 민주당 의원들은 담배 문화가 자유로웠다. 역으로 [[대한민국의 보수정당|보수정당]] 소속 정치인들은 차라리 [[술]]은 먹어도 [[김무성]], [[이명박]] 등 혐연가들이 많다 보니 후배 정치인들이 함부로 못 핀다고 한다.] 이해찬은 그 중에서도 [[골초]]로 [[김한길]][* 본인이 하루 4갑을 태웠다고 인터뷰했다.], [[박상천]] 등과 함께 당 회의실 내에서 즐겨피던 걸로 유명하고, 2012년 [[민주통합당]] 대표 시절에는 사무실에서 담배를 물고 있는 [[https://m.etoday.co.kr/view.php?idxno=629656|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물론 현재는 고령인 데다 건강 문제로 인해 [[금연]]했을 가능성도 있다.[* 건강이 좋은 편이 아닌 것이 보여지는 게, 민주화 운동 경력이 있어 고문 후유증이 슬슬 나타나는 데다가 흡연 경력도 꽤 긴 고령에 스트레스를 상당히 받는 직업 정치인이자 공무원 출신이다.] * 이른 정계 은퇴로 인해서 상당한 원로 나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는 1952년 생으로써 만 나이로 이제 70세 밖에 안 됐다'''. 전 대통령인 [[문재인]]과 겨우 1살 차이고, 현 대통령인 [[윤석열]]과는 8살 차이, 자신의 후임인 전 당 대표인 [[이낙연]]과는 동갑내기며, 그리고 같은 원로 정치인으로 여겨지는 [[김종인]]보다는 무려 12살이나 어리다. 워낙 [[노안]]에 은둔해서 그렇지 실제로는 현역 정치인 나이대이고, 고령이라 말하기에도 애매하다. * [[사회학]] 기초 교과서 중 하나인 C. 라이트 밀즈의 <[[사회학적 상상력]]>을 공역한 적이 있다. * 이름 때문에 [[이회창]]과 헷갈리는 사람도 많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