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학수 (문단 편집) == 생애 == 1946년 6월 25일 [[경상남도]] [[밀양시|밀양군]](現 [[밀양시]]) [[무안면]] 내진리에서 아버지 이헌조(李憲祚)와 어머니 [[여흥 민씨]] 민병순(1915. 7. 20 ~ ?)[* 이참공파(吏參公派) 29세 민훈식(閔勳植, 1893 ~ 1959. 3. 3)의 장녀다.] 사이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마산고등학교|마산중학교]], 1965년 [[개성고등학교|부산상업고등학교]](52회), 1969년 [[고려대학교 상과대학]] [[경영학과|상학과]](65학번)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수료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고교 1년 선배[*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학교에서 1년 유급을 한 탓에 이학수 측이 선배가 된다.] '''이며, [[강병철]] 前 [[롯데 자이언츠]] 감독과 고교 동기이고 '''대학 직속 선배는 [[이명박]] 대통령'''이다. [[고려대학교]] 졸업 후 1971년 1월 [[제일모직]]에 입사하여 경리과에서 근무하였다. 1978년 9월 관리과장, 1979년 3월 관리부장으로 재직하다가 1982년 12월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운영1팀장으로 전보되었다. 1984년 2월 [[제일제당]] 관리담당 이사로 옮겼다가 1985년 2월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재무팀 이사으로 전보되었고, 1987년 3월 재무팀 [[상무이사]], 1990년 3월 재무담당 [[전무이사]], 1992년 9월 회장비서실 차장 [[부사장]] 등 삼성그룹 회장비서실에서 근무했다. 1993년 12월 [[삼성화재해상보험]]으로 옮겨 [[부사장]]에 취임했고, 1995년 1월 [[대표이사]] 부사장, 1996년 1월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다. 1996년 8월 다시 삼성그룹 회장비서실로 옮겨 비서실차장 사장을 거쳐 1997년 1월 [[현명관]] 회장비서실장의 후임으로 회장비서실장 사장을 역임했다. 1998년 4월 삼성전자 회장실장 사장 및 삼성그룹 기업구조조정본부 본부장, 이후 전략기획실장 등으로 재임하며 삼성그룹이 외환위기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이후 장기 호황으로 가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건희]] 회장의 각별한 신임 하에 계열사 매각, 빅 딜을 주도적으로 처리했다. 당시 신장암을 앓고 있었지만 업무 때문에 오랫동안 수술을 미뤘던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이 기간 동안 [[이재용]] 사장으로의 3대 세습 작업을 진두지휘했으며, 이 와중에 편법 증여, 대선자금 등 검찰과 특검의 수사를 받기도 하였다.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2008년 이건희 회장과 함께 일선에서 물러났으나 2009년 말 이건희 특별사면 이후 이재용과의 사내 권력 싸움에 패배하고 2010년 말 [[삼성물산]] 고문으로 발령받아 삼성 2인자에서 완전히 멀어졌다. 하지만 [[삼성SDS]] 이사로 재직하면서 헐값에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받아 무려 307만주의 삼성SDS 주식을 보유하는 등 현재 '''1조원이 넘는 재산'''을 보유하며 월급쟁이의 꿈을 이룬 인물로 평가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