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태석 (문단 편집) === 사제 수품 후 === >"요즈음은 '예수님이라면 이곳에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까, 성당을 먼저 지으셨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 것 같다. >사랑을 가르치는 성당과도 같은 거룩한 학교, '내 집'처럼 느껴지게 하는 정이 넘치는 학교, 그런 학교를 말이다." >---- >이태석,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생활성서사, 2013. 보통 사람보다는 늦은 시작이었지만 그의 신앙과 덕행은 남달랐다. 사제 수품 직후 아프리카 케냐로 건너갔다가 얼마 안 되어 더 위험하고 어려운 지역인, 20년 동안 내전이 계속되었던 수단(현 남수단)으로 건너가 의료활동을 시작하였다. 열악한 수단의 환경 속에서도 병원을 손수 만들었고, 나병 혹은 문둥병이라 불리는 [[한센병]] 환자들과 결핵 환자들을 보살피며 지속적인 예방접종 사업을 벌였다. 특히 발가락이 뭉그러진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그들의 발에 맞춰서 한 명 한 명 본을 뜨고 맞춤 제작한 신발을 선물하기도 했다. 또한 일주일에 한 번씩 오지 마을을 돌아다니며 이동 진료를 하면서 8년을 지냈다. 여기에 내전으로 인해 가장 피해를 받을 미래 세대들을 걱정하며, 손수 학교와 기숙사를 짓고 수학을 가르치기에 이른다. 거기다 아이들을 모아 악단을 만들고 지휘를 맡기까지 했다. 이때 [[취주악단|브라스밴드]] 악기를 연주할 줄 아는 사람이 당연히 없었기에 스스로 교본을 보고 배워서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악보도 직접 만들어서 나눠주고 본인은 지휘를 했다고 한다. 아이들은 브라스밴드에 큰 애착을 갖고 있었는데, 한 아이가 이태석 신부에게 빨리 악기를 능숙하게 연주하고 싶다고 하자, '먼저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단다.'라고 말한 일화도 있다. 마을에서 이태석 신부만 가진 '사치품'이 있었다. 다름아닌 전등과 냉장고였다. 백신을 비롯한 약물을 보관하기 위해 냉장고만큼은 꼭 필요했기에 집광판을 사 와 지붕에 직접 설치해서 발전을 하고 냉장고를 돌렸는데, 남는 전기는 해만 지면 암흑이라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하거나 겨우 촛불이나 켜던 아이들의 야간 학습을 위한 조명에 있는 대로 털어 주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 >마태오 복음 25장 40절. [[https://bible.cbck.or.kr/Knb/Mt/25|원문 링크]]. 성경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위와 같은 성경 구절을 자신의 좌우명으로 여기고 의료활동을 해나가던 2008년 11월, 휴가차 귀국해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대장암 4기라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말기 암 선고를 받고도 돌아가겠다는 의지가 워낙 강해서 주변 사람들이 뜯어말리느라 고생하였다고 한다. 담당 의사에 따르면, 말기암 선고를 받자마자 "톤즈에서 우물 파다 왔어요. 마저 다 해야 하는데…"라며 실의에 빠졌다는데, 본인이 암 판정을 받아서 그런 게 아니라 앞으로도 봉사활동을 계속하지 못할 것에 대한 걱정으로 보였다고 한다. 판정 직후 인터뷰에도 병명은 숨긴 채로 미소를 띄우며 담담하게 봉사활동 및 지원 호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 후에도 투병 중에 톤즈로 몇 번이고 다시 가려고 했기 때문에 그때마다 주변에서 말렸다고 한다. 이를 두고 "만약 자신의 몸 상태를 전혀 알지 못하고 계속 톤즈에서 봉사를 했다면 오히려 건강이 악화되는 일이 없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간혹 나온다. 아주 적은 사례이긴 하지만, 이런 치명적인 중병을 품고도 감기 한 번 안 걸리고 의외로 오래 사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