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탈리아/역사 (문단 편집) ==== 남부 이탈리아 ==== 남부 이탈리아는 [[시칠리아 왕국]]과 [[나폴리 왕국]]이 지배했다. 북부 이탈리아와 중부 이탈리아는 750년대 동로마에서의 독립 및 [[교황령]] 성립 이래 계속 서유럽 문화권에 속했고, [[종교개혁]] 이전까지는 그냥 속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서유럽 문화권을 이끄는 지역이었다. 하지만 남부 이탈리아는 1071년까지 동로마가 최소한의 영토는 항상 유지해 왔으며, 노르만족[* 단 워낙 멀리서 치고들어와서 외부자로 간주되지만, 문화적으로는 10세기 초 [[노르망디 공국]] 성립 이래 이미 서프랑크(프랑스) 문화에 동화되었다.] 및 [[마그레브]]의 이슬람 세력이 침공해 국가가 세워지기도 하였던 등 서유럽의 라틴-게르만 문화권, 동로마의 그리스 문화권, 마그레브의 이슬람 문화권 간의 접경지대였다. 남부 이탈리아는 대강 동로마 제국과 랑고바르드계 공국들 간에 양분하던 시기(6세기 말 ~ 9세기 중반), 이슬람 세력이 치고들어와서 세 세력이 서로 합종연횡을 벌이는 중 노르만족이라는 신흥강자가 들어오게 된 시기(9세기 중반 ~ 11세기 중반), 노르만-독일계(신성로마제국)-프랑스계(앙주) 등으로 서유럽 카톨릭권 내에서 땅주인이 바뀌며 동방(십자군, 비잔티움)으로 향하는 전진기지로 활용하던 시기(11세기 말 ~ 13세기 말), 시칠리아 만종 이래 프랑스 계열에서 스페인 계열로 주도권이 넘어간 시기(13세기 말 ~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 [[나폴레옹 전쟁]] ~ 이탈리아 통일기로 나눌 수 있다. 노르만의 남이탈리아 통일 이전 난립하던 정치체들은 영어 위키백과의 [[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south_Italian_principalities|List of south Italian principalities (남이탈리아의 소국들 목록)]]을 참조하면 좋다. 먼저 유스티니아누스의 서로마 지역 점령 시기에는 대체적으로 [[동로마 제국]]의 영토였다. 그렇지만 동로마 제국의 상황에 따라 온갖 일을 겪어야 했다. [[시칠리아]]는 과거부터 유명한 곡창 지대였고 이탈리아로 향하는 관문이어서 [[이슬람]] 세력의 주요 목표가 되었다. 그전에는 조금씩 찔러 봐도 별 소득이 없다가, 820년대 [[미하일 2세]] 시절 슬라브인 토마스의 반란으로 혼란한 가운데 [[에우페미오스]]가 반란을 일으켰고 실패하자 [[아글라브 왕조]]에 의탁하였다. 이로써 시칠리아 문제에 개입할 명분이 생긴 이슬람 세력이 시칠리아를 차지해나가기 시작했다. [[https://en.wikipedia.org/wiki/Muslim_conquest_of_Sicily|Muslim conquest of Sicily]]([[무슬림의 시칠리아 정복 전쟁]])의 서문이나 문단구성에 의하면 827년 침공 시작, 831년 북서부의 팔레르모 함락, 859년 정중앙의 엔나 함락, 878년 남동부의 시라쿠사 함락 등이 주요 브레이크 포인트이고, 이후 한동안 이슬람계 세력 내 내분을 겪다가 수습한 후 902년 타오르미나 함락으로 거의 완전히 시칠리아를 통일했다. [[시칠리아 토후국]] 문서도 참조하면 좋다. 에우페미오스 말고도 이따금씩 남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를 근거지로 하는 반란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제국의 서쪽 끝이라 콘스탄티노플 본국과 멀기도 했으며, 남이탈리아 현지인 중에서 특히 랑고바르드계는 원래 이탈리아 선주민도 아닌 데다가 종파 또한 로마 교회(카톨릭)이어서 제국에 완전히 융화가 되지 않은 채 독자의식을 느꼈다고도 하고, 또한 제국군이 남이탈리아에 파견되었다가 돌아갈 때 '''현지인을 끌고 가서 동방에 노예로 팔아버리는 악습'''이 있었다가 [[대 니키포로스 포카스]]([[니키포로스 2세]]의 친조부)가 악습을 없앴다고도 할 정도로 남이탈리아를 옛 본국은커녕 정식 영토만도 못한 [[식민지]]나 점령지 취급했던 것도 작용했다고 보인다.[* 영어 위키백과 '[[https://en.wikipedia.org/wiki/Nikephoros_Phokas_the_Elder|Nikephoros Phokas the Elder]] 중, 'The 11th-century historian John Skylitzes furthermore reports that Nikephoros brought an end to abuse against the local population, by ending the practice of returning Byzantine soldiers carrying off local Italians to be sold off in the East as slaves. According to Skylitzes, the grateful Italians dedicated a church in his honour.'] 이후에는 기존의 세력이 아닌 [[노르만족]]이 등장하여 이 지역의 지배자가 되었다. [[로마]]로 온 [[노르드인]]의 후예[* 사실 이전에 이미 [[프랑스]] 북부 일대의 [[라틴인]]에 동화된 상태였다.]인 [[노르만 기사|기사들]]이 [[용병]]으로 활동하던 중 [[로베르 기스카르]](Robert Guiscard)[* 이 이름은 프랑스식인데, 대부분의 서적에서는 프랑스식 이름으로 주로 기술된다. 이탈리아식으로는 로베르토 귀스카르도(Roberto il Guiscardo)다.]가 남부 이탈리아에서 노르만인들을 규합하여 랑고바르드 계열 소국들[* [[베네벤토 대공국]]을 원조로 하여, 851년에 [[https://en.wikipedia.org/wiki//Principality of Salerno|Principality of Salerno (살레르노 대공국)]]이, 981년에 [[https://en.wikipedia.org/wiki/Principality of Capua|Principality of Capua (카푸아 대공국)]]이 떨어져 나갔다. 이쪽은 지도층이 그리스-로마계 선주민이 아닌 롬바르드계라서, 동로마의 위상을 명목상으로만 존중하거나 혹은 아예 그런 것도 없이 쌩 외국으로서 맞서싸우기도 했다.], 동로마 제국 본국 및 동로마 계열의 소국들[* 영어 위키백과 [[https://en.wikipedia.org/wiki/Duchy of Naples|Duchy of Naples (나폴리 공국)]], [[https://en.wikipedia.org/wiki/Duchy of Gaeta|Duchy of Gaeta (가에타 공국)]], [[https://en.wikipedia.org/wiki/Duchy of Amalfi|Duchy of Amalfi (아말피 공국)]] 등. 이곳들은 공통적으로 이탈리아 남서해안의 [[티레니아 해]]에 위치해 있는데, 820년대 [[무슬림의 시칠리아 정복 전쟁|이슬람의 시칠리아 진출]] 이후로 메시나 해협 너머의 서지중해와 동로마 본국 간의 연결이 원활하지 못하게 되어 차츰 제국 직할령에서 벗어나 (반)독립 상태가 되었다. 또한 넓지는 않아도 상당한 영역을 갖고 있던 랑고바르드계의 Principality들과 달리, 이 Duchy들은 거의 [[도시국가]] 수준이었다. 또한 중·북부와는 달리 남부는 도시 성립 자체가 [[그리스인]]들이 세웠던 마그나 그라이키아에 뿌리를 두는 곳이 많았고, 롬바르드계가 아닌 선주민들은 [[라틴]]-[[이탈리아인]]들과 그 그리스인이 통혼해서 내려온 자손들이었다. 그래서 라틴적인 모습을 많이 버리고 그리스적으로 제법 변모했던 [[동로마 제국]]에 대한 이질감이 중·북부보다 확실히 덜했다. 그래서인지 동로마로부터 그리 독립적이지는 않았고 주화, 작위 등을 하사받아서 사용했다. 영어 위키백과 [[https://en.wikipedia.org/wiki/Hypatos|Hypatos (이파토스)]]가 [[집정관]](콘술)의 그리스어 번역어였다가, 이후 동로마 계열 도시국가들의 지배자를 지칭하게 된 용어이다.], 이슬람 세력 모두를 [[로베르 기스카르 전쟁|물리치고서]] 교황의 지지를 받고 남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에 [[공국]]을 세우게 된다. 기스카르는 궁극적으로 [[동로마 제국]]을 공격하겠다는 목표를 세운다. 이전까지는 이슬람이 유럽으로 진출하기 위해 남부 이탈리아를 노렸지만, 기스카르가 등장하고 나서는 노르만이 동로마로 진출하기 위해 남부 이탈리아를 지배했다. 이후 남부 이탈리아를 차지한 거의 모든 국가들은 동로마의 황제가 되기 위해 동로마를 노리게 된다. 즉 그동안 남이탈리아의 역할은 동로마 본토의 서쪽 완충지대였던 것인데 그게 무너진 것이다. 기스카르는 동로마 정벌에 들어가기 직전에 병사한다. 기스카르의 일족들이 남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의 왕위에 오르면서 [[시칠리아 왕국]]이 탄생하였고, 이들 시칠리아 왕들의 목표는 여전히 동로마였다. 단 정복 자체는 1100년도 되기 전인 11세기에 이미 거의 완수했지만, 일족'''들'''에서 보이듯이 분할상속이었어서 이 상속 구도를 정리함과 동시에, 토착세력이 아니었던 탓에[* 기존의 3대세력인 동로마, 랑고바르드, 이슬람 중 가장 남이탈리아에서의 역사가 짧은 이슬람조차 [[https://en.wikipedia.org/wiki/History_of_Islam_in_southern_Italy|History of Islam in southern Italy]]를 보면 나오지만 시칠리아에서는 827년, 남이탈리아 본토에서는 바리 에미르국(Emirate of Bari)를 세우는 847년까지 거슬러올라가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의 역사가 250년 정도 되어서 충분히 토착세력이라고 여길 만하다.] 토착세력과의 관계를 구축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려서 1130년이 되어서야 정식 왕국으로 출범했다. 시칠리아의 왕 중에서 직접적으로 이러한 목표를 이룬 사람은 없었지만, 노르만인들은 이후 [[십자군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고, [[예루살렘]]이나 [[안티오키아]] 등지에 왕국, 공국 등을 세우며 동로마를 위협했다.[* 결국 중근동에 진출한 십자군들은 [[베네치아 공화국]]과 협력하여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해서 동로마 제국의 몰락에 일조했다.] 이후 노르만인들의 왕위가 단절되었는데 마침 혼인으로 인연이 있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가문인 [[호엔슈타우펜 가문]]에서 시칠리아 왕위를 차지한다. 독일 황제들 역시 동로마의 제위를 노려 동로마와 좋은 관계는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프리드리히 2세]]와 [[콘라트 4세]]의 사망으로 호엔슈타우펜 가문이 단절된다. 프리드리히 2세의 사생아 출신인 [[만프레디]]가 국왕에 올랐지만 신성 로마 제국의 세력을 약화시킬 기회를 잡은 [[교황청]]은 프랑스에 남부 이탈리아를 넘기기로 결정하고 [[루이 9세]]의 동생인 [[카를루 1세|앙주 백작 샤를]]을 지원해서 만프레디를 격파하여 시칠리아의 왕 [[카를루 1세]]로 등극시킨다. 카를루 1세 역시 동로마를 계속 공격하려고 하였다. 이후 동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미카일 8세]]가 외교와 정치 공작 등을 통해 만프레디의 딸과 결혼해서 호엔슈타우펜 왕가의 계승권을 갖고 있던 [[아라곤 왕국|아라곤]] 왕 페드로 3세와 연합해서 시칠리아의 민중 봉기를 일으켜 카를루 1세를 쫓아내 버린다.(시칠리아의 만종) 페드로 3세는 시칠리아 왕위를 차지했고 동로마는 군사도 동원하지 않고 시칠리아와의 적대 관계를 없애 버렸다. 이 사건으로 카를루 1세는 시칠리아에서 쫓겨나 남부 이탈리아만 지배하게 되었으며, 시칠리아 섬을 점령하기 위해 교황은 조카인 [[프랑스 국왕]]과 연합해서 아라곤 십자군까지 일으켰지만 패배하였다. 시칠리아의 지배자라는 명분 등을 위해 카를로 1세와 그의 후예들은 시칠리아를 지배하지는 않았지만 자신들의 왕국을 시칠리아 왕국으로 자처했다. 이렇게 시칠리아가 없는 시칠리아 왕국은 다른 국가들은 [[왕국]]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편의상 수도의 이름을 따서 [[나폴리 왕국]]이라고 불렀다. 시칠리아는 페드로 3세가 시칠리아의 왕이 된 뒤 [[아라곤 왕국|아라곤]],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고, 아라곤은 시칠리아에서 지중해 동쪽으로의 진출을 노렸다. 나폴리 왕국은 왕위 계승 때문에 내분이 일어나, 이후 기회를 노리던 [[아라곤 왕국|아라곤]]이 정복했다. 아라곤은 지중해 진출 대신 [[카스티야 왕국]]과 [[동군연합]]을 이루면서 [[스페인]]을 형성하고 신대륙 진출에 관심을 가졌다. 스페인은 남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를 통합시키기 않고 지배자는 같지만, 서로 다른 총독 관할[* 밀라노 총독과 시칠리아 총독]로 분리된 채로 동군연합을 형성하고 있다가 [[이탈리아 통일]] 전쟁 이전에는 [[양시칠리아 왕국]]으로 통합되었다. 이렇게 지배자들이 계속 바뀌어서 남부 이탈리아는 이슬람 문화, 그리스 문화, 노르만(-프랑스) 문화가 합쳐지게 되었다. 이를 지칭하는 ([[영어 위키백과]])[[https://en.wikipedia.org/wiki/Norman-Arab-Byzantine_culture|'Norman-Arab-Byzantine culture']]라는 용어도 있다. 남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는 서로 유사한 세력의 지배를 받았고 지리적으로 근접했지만, 북부 이탈리아와 중부 이탈리아는 상당히 다른 지역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