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충희 (문단 편집) === 3점 슈터 이충희? === 외곽 슈터 이미지가 강하고 특히나 전성기를 보지 못한 현 농구팬들은 이충희나 동시대 라이벌 김현준을 3점 슈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충희나 김현준은 3점슛 제도가 없었을 때 뿐만 아니라 3점슛 제도가 생긴 이후에도 3점슛을 많이 던지지 않았으며 성공률도 동세대 다른 선수들 보다 딱히 높지도 않았다. 이충희와 허재를 비교할 때 이충희는 3점 슛터, 허재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허재가 이충희보다 더 많은 3점슛을 던졌으며 성공률도 비슷했다. 이충희는 점프슛에만 의존하는 타입이 아니었으며 그와 함께 3점슛은 거의 던지지 않았다. 설명을 보강하면 이건 3점슛 극초창기에 뛰었던 선수들의 특징이다. 농구대잔치에서 3점슛 제도가 도입된 것은 84년도부터로, 59년생인 이충희는 실업 농구에 81년에 입단했다. 즉, 3점슛이 없는 상태에서 실업 생활을 시작한 것. 실제로 국제 리그에서 3점슛이 도입된 것도 이해인만큼 이충희는 25세까지 3점슛이란 개념을 경험해본 적도 없었던 것이다. 3점슛에 대한 당시의 인식은 현재 3점라인 두세발짝 쯤 뒤에서 쏘는 초장거리 슛에 대한 인식과 비슷했다. 80년대 NBA 중계를 보면 롱2를 쏠 때 "way outside(한참 외곽에서 쏩니다)"라고 해설했으며, 거의 대부분의 수비와 공격이 3점라인 안에서 이뤄졌으며 실제로 3점을 쏠 수 있는 선수들도 3점라인 안쪽으로 들어와야 공격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는 몸에 익은 패턴플레이 때문으로, 저렇게까지 멀리서 슛을 쏘는 패턴은 배운 적도 없고 해본 적도 없으니 당연히 자주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3점슛 극초창기의 슈터들은 (현재 초장거리슛과 마찬가지로) 패턴플레이에 따른 3점이 아니라 그냥 상황에 따라 기습적으로 던지는 슛이 대부분이었고, 성공갯수/시도갯수 모두 들쭉날쭉했다. 80년대 NBA에서 최강슈터 중 하나였던 [[래리 버드]]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는데, 버드는 1년차 때 경기당 1.7개를 던져 0.7개 성공, 40.6%를 기록했으나 두번째 시즌에는 0.9개를 던져 0.2개, 세번째에는 0.7개를 던져 0.1개를 성공했다. 이는 당연히 3점이란 걸 프로 와서 처음 던져본 버드, 그의 루키시즌에 처음 3점을 도입한 NBA가 3점슛을 활용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제대로 된 패턴 플레이가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버드도 그렇고 다른 선수들도 스크린이나 전술로 수비를 떼고 던지는게 아니라, 그냥 아무 상황에서나 던지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NBA에서 3점을 활용하는 초기 전술이 개발되고 난 뒤인 80년대 중반부터 그는 이를 공격의 일부로 활용하기 시작했고, 경기당 평균 2개 이상 던지기 시작한 85-86시즌부터 은퇴시즌까지 그는 경기당 평균 2.8개 시도/1.1개 성공으로 39.4%를 기록했다. 실제로 3점 전술의 발달이 이뤄진 87,88년 이후 버드 경기를 보면 스크린 활용을 꽤 한다. 빈도수가 현대농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충희도 마찬가지로 3점이 몸에 익지 않았으나, 버드와 다르게 그는 실업 농구(사실상 프로) 생활을 시작한 지 몇년이 지나서야 3점이 도입되었으니 익숙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3점슛 비중이 늘쭉날쭉한 것이다. 상술된것처럼 허재와 비교해 보면, ([[https://mania.kr/g2/bbs/board.php?bo_table=kbltalk&wr_id=32983]]) 85~87 세 시즌 평균을 보면 41.3% 대 23.8%로 두배 가까이 되지만, 시즌별로 보면 이충희는 3.6개, 2.2개, 2개, 그리고 허재는 1.7개, 3.9개 (87시즌은 불참)이다. 이충희는 이후 88시즌에 2개, 허재 3.2개, 90시즌에 이충희 3.2개, 허재 4.6개, 90시즌엔 이충희 2.8개, 허재 3.5개, 91시즌에는 이충희는 기록이 없고 허재는 2.5개, 92시즌에는 허재 3개이다. 추이를 보면 허재가 전반적으로 더 많이 쏘는 것은 맞지만 커리어 후반부로 갈수록 이충희와 비슷해지는 걸 볼 수 있다. 즉, 팀의 주포였고 커리어 중반에 접어들 때 처음 3점라인을 경험하게 된 이충희보다 19세부터 3점라인을 경험한 허재가 3점을 활용하는데 더 익숙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미지와 다르게 허재의 3점 비중이 높을 뿐 이충희도 초창기 이후 꾸준히 3점슛을 2.5개~3개 정도 던지며 활용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사실 80년대 당시 농구는 현대처럼 세분화가 되지 않았으며, 스코어러들 사이에서 큰 스타일 차이가 없다. 이충희, 김현준, 허재는 셋 다 점프슛과 돌파, 골밑슛 모두 능한 올라운드 스코어러였으며, 당시 스타일상 스크린을 활용한 팀전술이 다양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혼자 힘으로 수비를 제끼고 쏘는 비중이 많았다. 이는 NBA도 마찬가지로 3점슛 능력 때문에 버드는 같은 208cm 장신 스몰포워드이던 [[페자 스토야코비치]]처럼 스크린을 타고 수비를 떼어놓고 3점을 던지는 선수, [[도미니크 윌킨스]]은 비슷하게 운동능력 만빵인 [[르브론 제임스]]처럼 돌파 위주 득점원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버드건 윌킨스건 세부적인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둘 다 골밑~중거리까지 위치에서 주로 득점하던 선수이다. 버드는 슛이 훨씬 뛰어났고 3점슈터로도 활용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만 80년대 초반까지는 돌파와 골밑슛의 비중이 컸다. 이는 윌킨스 역시 마찬가지로 그의 고공 플레이만 논하는 것과 반대로 매우 뛰어난 중장거리 슈팅력이 있었다. 허재가 "올라운더"라고 지칭되는 것은 그의 플레이스타일이 득점원 뿐 아니라 포인트 가드를 맡을 정도로 뛰어나고, 그 외 수비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이는 올라운더이기 때문이지, 그가 동시대 다른 득점원들과 차별되었기 때문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슛도사" 이충희, "전자슈터" 김현준도 이들이 슈팅 위주의 포워드 시대에 활동해 생긴 별명이지, 이들이 현대농구에서 있는 "전문슈터"여서가 아니다. 당시는 전문슈터의 시대가 아니었으며, 3점슛을 5개 가까이 쏜 적도 있는 허재 역시 스크린을 타고 슛을 쏘는 "전문슈터"가 아니었다. 즉, 현대처럼 농구 스타일이 세부화되지 않은 80년대 당시 리그 톱급이던 이충희, 김현준, 허재 등의 외곽 득점원들은 기본적으로 슈팅이 뛰어난 전천후 스코어러였으며, 이 중에서 가장 젊고 3점슛라인에 익숙한 허재가 가장 3점슛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고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