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집트/역사 (문단 편집) === 파티마 왕조(963~1169)와 아이유브 왕조(1169~1250), 그리고 십자군 전쟁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파티마 왕조)] 그 후 이집트는 10세기 중후반(969년) [[튀니지]]에서 일어난 [[시아파]] [[파티마 왕조]]의 통치기에 들어갔다. 그 원인은 [[이흐시드 왕조]](935~969)를 쇠퇴하게 한 대기근 때문이었다. 이집트를 점령한 뒤 신도시 [[카이로]](알-카히라)를 수도(초기엔 궁성 겸 요새수도)로 정하고 번영을 누리던 파티마 왕조는 [[십자군 전쟁]]으로 쇠퇴했다. 이 시대의 건축물로는 지금까지 남아있는 알-아즈하르 모스크와 그 휘하의 알-아즈하르 대학[* 972년 건립, 982년 설립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고등교육 시설)이다.]이 있다. 직역하면 "가장 꽃이 만발한"이란 의미이다. 십자군 전쟁 기간 푸스타트와 카이로는 [[청야작전]]으로 잿더미가 되었고, 전쟁을 기점으로 이집트의 이슬람 군주들은 기독교도들을 처형하거나 강제 추방하는 등 박해하며, 이도 저도 아니면 노예로 삼았다[* 사실 이집트에서 최초의 박해가 시작된 것은 괴짜 군주로 유명한 [[알 하킴]](996~1021, 파티마 왕조 제6대 칼리파) 때의 일이었다(1007년~1012년). 하지만 5년 만에 박해는 취소되고 교회 재산을 돌려주었다니 그야말로 괴짜 군주의 변덕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재위는 홀연히 나귀를 타고 궁성을 나갔다가 며칠 후 피묻은 옷과 나귀만 발견된 채로 실종되면서 끝이 났다.]. 유럽 기독교도들과 내통한다고 의심받은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구는 황폐화되었고, 이때부터 이집트 내의 기독교도의 수가 무슬림보다 적어지면서 이집트의 이슬람화가 급속히 진행되었다.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아이유브 왕조)] 그 후 십자군 전쟁에서 대활약한 쿠르드족 재상 출신의 [[술탄]] [[살라흐 앗 딘]]이 창건한 [[아이유브 왕조]](1169~1250)가 이집트의 주인이 되었다. 이로써 이집트의 시아파 시대는 끝이 나고 [[순니파]] 시대가 돌아오게 되었다. 십자군과의 전쟁은 아이유브 왕조가 멸망할 때까지 여러 차례의 휴전와 개전을 거치며 진행되었다.[* 살라딘과 리처드 1세의 1192년 휴전, 프리드리히 2세와 알-카밀이 맺은 1229년의 휴전이 유명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