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집트/역사 (문단 편집) === 헬레니즘 시대(프톨레마이오스 왕조, 기원전 332 ~ 기원전 30년)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프톨레마이오스 왕조)] 그 이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제32왕조) 이집트와 그 수도 [[알렉산드리아(이집트)|알렉산드리아]]는 [[헬레니즘]] 문화의 중심지로 영화를 누렸다. 이때 이집트는 그리스화가 급속히 진행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분명 마케도니아인의 외부 왕조였으나 토착종교를 존중하고, 개방적인 문화를 관대하게 받아들였다. 왕의 후원 아래 [[성기]]를 주제로 삼은 축제도 있었다(...)고 한다. 이 시기의 이집트는 상업이 활발하고, 여성의 상속권이 인정되며, [[파로스의 등대]]와 세계 최고의 [[박물관]]/[[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도서관]]이 있는 당대 최고의 선진문명이었다. 헤론의 초보적 [[증기기관]]도 알렉산드리아에서 발명되었다.(단 이는 서기 80년, 로마 제국 시대의 일이다.) 그리고 프톨레마이오스 4세 시대에는 거대한 함선인 [[포티]]를 건조하는 위엄을 보였다. 그러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어디까지나 무력으로 이집트를 점령한 외국인 왕조였고, 그들의 통치력의 근간은 강력한 군사력에 있었다. 이 점에서 그리스-마케도니아인들은 이후의 정복자들([[로마인]]들, [[아랍인]]들, [[튀르크인]]들)에 비해 훨씬 덜 성공적이었다. 톨레미 파라오들은 이집트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이집트 밖에서 자주 전쟁을 벌였는데(키프로스, 레반트 남부, 킬리키아 등 소아시아 남부 등을 종종 영유했었다.), 그 주적인 [[셀레우코스 왕조]] 역시 소수 그리스-마케도니아인들의 왕조였으므로 서로 제살 깎아먹기식 전쟁을 반복하게 되었다. 결국 BC 2세기쯤 되어 군사력 유지에 한계가 찾아오고,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그 후 자신의 생존을 동맹국 로마에게 의존하게 되었다. 그 상태로 로마의 그늘 아래서 번영하던 이집트는 결국 [[카이사르]] 사후 로마 내전에서 줄을 잘못 섰다가.. 그대로 [[아우구스투스]]에게 점령당한다. 이로써 650년에 달하는 로마 시대가 시작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