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집트/역사 (문단 편집) === 오스만 제국 치하의 이집트 === 번영했던 맘루크 왕조도 15세기 초 [[포르투갈]]이 [[인도]]로 가는 항로를 발견하면서 중개무역에 치명타를 맞고 쇠약해졌고[* 맘루크는 당시 [[인도]]까지 해군의 세력을 떨쳤는데, 무역 주도권을 놓지 않기 위해 포르투갈 함대를 대포로 공격했다. 맘루크는 초기에는 승전했으나 포르투갈의 지원함대가 도착하면서 패전했다(1508~1509). 이후 홍해 무역이 급감하면서 세수가 줄은 맘루크는 위조화폐를 발행해야하는 처지에 놓였으나 이 때문에 국가 혼란의 악순환만 더 심해졌다.], 1517년 갓 [[동유럽]]과 페르시아를 정벌하고 돌아온 [[오스만 제국]]의 [[셀림 1세]]에게 정복당했다. 이미 동로마 제국의 숨통을 끊은 무기인 [[대포]]와 [[머스킷]] [[소총]]으로 무장한 오스만군에 기병 중심의 맘루크는 상대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맘루크는 해군력을 유지하는 데도 오스만의 포를 구입해야 했던 처지였다. [[페스트]]로 이미 맛이 가고 있었음에도 국가의 기강은 그나마 유지하고 있었던 맘루크는 술탄 투만베이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막을 내렸고, 투만베이는 3개월을 더 분전하다가 처형당했다.] 오스만 제국의 잘나가는 속주였던 이집트도 오스만 제국의 지배가 시간이 갈수록 약해지면서 [[군벌]](사라지지 않았던 맘루크)들이 득세하였고, 알리 '베이'(군사 지도자) 때는 독립을 선언하기도 하였다(1770년). 그러다가 1798년 6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에 걸려 군벌들과 친오스만 총독들이 함께 박살나면서 아주 잠깐 [[프랑스]]의 영향권에 들어갔다. [[프랑스군]]은 1801년 철수했지만, 그 과정에서 1799년 [[로제타 석]]이 발견되면서 이집트 문화는 다시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