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집트/미라 (문단 편집) == 특성 == [[이집트 문명]]에서는 [[사후세계]]와 [[부활]]에 대한 믿음을 이유로 다수의 인공 미라를 제작, 관리했으며 미라 제조 전문가들도 있었다. 붕대(아마포)를 몸에 감은 미라가 바로 이집트 미라의 특징. 미라를 제작한 이유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사후세계|사후관]](死後觀) 때문인데 그들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인 '카(Ka)'는 사후세계로 가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시체가 있던 곳으로 돌아와 되살아난다고 믿었으며 그럴려면 그때 돌아올 육신인 '하(Ha)'가 온전해야 완전히 부활할 수 있다고 믿어 시체 보존에 대한 경험과 약학지식 등을 동원하여 시신을 방부 처리한 것이었다. 복잡한 미라 제조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이집트]] 기후가 워낙 건조하다 보니 바깥에 놔둬도 저절로 자연 미라가 되는 경우가 있었지만[* 이 현상 때문에 미라 제작 문화가 생겼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시체가 좀처럼 썩지 않는 것을 보고 '일부러라도 시체를 보존해야하는 게 아닐까?' 라는 사후관이 형성된 것.] [[피라미드/이집트|피라미드]] 등의 폐쇄적인 무덤 안에 시신이 안치되면서 시신이 부패할 가능성이 생겨나 결국 저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고 한다. [[파일:mummy-man-Egyptian-Ptolemaic-name-collection-Musee.webp|width=450]]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의 미라. 얼굴 부분을 보면 붕대가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보일 정도로 심혈을 기울여 감았음을 알 수 있다. 미라 제작 시 심장을 제외한 [[내장]]을 빼낸 후 시신 안에 다른 물질을 채웠는데 상류층은 송진과 향료를 섞어 넣었고 하층민의 경우 [[톱밥]]이나 돌덩이를 넣은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후 몸을 [[탄산나트륨]]을 이용해 건조시키고 [[붕대]](아마포)를 감은 후 관에 넣으면 끝. [[이집트/역사|이집트 미라의 역사]]를 기준으로 먼 훗날에는 미라 제조 문화가 [[고대 로마]] 문명권으로 확산되었는데 [[로마 문명|로마 문명권]]에서는 주로 관을 쓰지 않고 시신을 아마포를 감은 뒤 석고 또는 회반죽을 칠해 시신의 윤곽을 드러내도록 굳히고[* 이 방법은 얼마가지 않아 쓰이지 않게 된다.] 채색해 관을 대신하거나 석고를 칠한 뒤 그 위에 일상복이나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아마포를 더 감는 경우도 있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생각을 [[뇌]]로 하는게 아니라 [[심장]]으로 한다고 생각했고 사후 지하에서 [[오시리스]]가 저울에 심장을 달아 선악을 판별하고 저승 또는 천국으로 보내는 증거로 삼는다고 믿었다. 따라서 '''[[심장]]은 가장 중요한 장기'''여서 꺼낸 다음 따로 붕대로 싸서 다시 넣거나 실로 꿰맸다고 한다. 한편 심장과 달리 뇌를 그다지 중요한 기관인 줄 몰랐고 뇌는 콧물 만드는 장기로만 생각했다.(...) 그래서 미라 제작 시 시신의 [[뇌]]를 제거했다.~~[[무뇌]][[미라]]~~ 제거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콧구멍을 통해 갈고리랑 주걱을 쑤셔넣어 사골(篩骨. 벌집뼈)이라고 불리는 코와 머리가 연결된 곳의 뼈를 부순 다음 뇌를 뽑아내는 방법이고 하나는 드물긴 하지만 머리 뒤에 구멍을 내어 그 구멍으로 [[뇌]]를 꺼내는 방법이 있다[* 일설에 의하면 [[투탕카멘]]의 미라가 이 시술을 거쳤다는 설이 있다.]. 뇌를 꺼낸 자리에는 송진[* 고위계층은 향료를 섞은, 두개골에 주입하자마자 굳어 버리는 (지금까지도 명확히 판명되지 않은) 물질로, 평민들은 톱밥, 돌 등으로 채웠다.]으로 그 자리를 채웠다. 뇌를 제거하는 건 후대의 일로 예전에는 그냥 뒀다고 한다. 뇌가 남은 미라는 흔들면 말라붙은 뇌가 [[두개골]] 안에서 움직여서 딸깍딸깍 소리가 난다고 한다. [[파라오]]의 일족이나 귀족의 경우는 제거한 장기(간, 폐, 위, 소장/대장만)를 따로 방부처리하여 [[카노푸스(동음이의어)#s-3|카노푸스]] 단지라고 부르는 다른 용기에 담았고 중산층의 경우는 특수한 약물[*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삼나무 기름을 주입했다고 한다.]을 시신의 [[항문]]에 주입해 내장을 다 녹여서 겉만 남은 시신을 미라로, 형편이 안 되는 서민들은 [[소금]]에 [[염장|절이거나]] 그냥 건조한 토굴에 안치하여 자연적으로 건조되는 방식을 택했다. 미라로 만들 대상이 젊은 [[귀부인]]일 경우에는 [[시간(동음이의어)|시간]](屍姦)을 방지하기 위해 며칠 방치하였다가 미라 제작자들에게 건네주어 미라로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야짤]]이 그려진 종이가 발견되는 등 할 사람들은 했다.(...) [[파일:5ddbf1defd9db203601de573.webp]] 고대 이집트의 [[네크로폴리스]]에서 발견된 [[고양이]]들의 미라. 고대 이집트인들은 [[개]]나 [[고양이]]같은 친숙한 동물뿐만 아니라 거의 웬만한 동물도 미라로 만들었다. 그 중에서도 신의 [[화신]]으로 여겨졌던 특수한 동물들은 성대한 장례식과 함께 별도의 무덤에 안치되었다. 신앙의 대상으로서 모셔지던 [[매]], [[따오기]], [[악어]], [[하마]], [[소]]의 미라는 살고 있던 신전의 묘지에 안치되었고, 신성시되었을 뿐 아니라 애완용으로도 키워지던 고양이 미라[* [[여신]] [[바스테트]]가 변신한 동물로 여겨져 역시 성스럽게 여겨졌다.] 같은 것은 한번에 수십 '''[[톤]]'''씩 발굴되기도 했다. 19세기에 베니하산에서는 20톤의 고양이 미라가 한꺼번에 발견되기도 했는데, '''몽땅 갈아서''' 비료로 써버렸다고 한다.~~[[공밀레|냥밀레]]~~ 하지만 워낙 많이 만들었던 탓에 꾸준히 발견되고 있고, [[루브르]]나 [[대영박물관]] 등에 여러 점이 소장되어 있으며 한국에서 전시되기도 했다. 2011년에는 이집트 북부에서 한번에 '''800만 마리'''의 개 미라가 발견된 적도 있다. 성스럽다고 여긴 [[물고기]]들도 미라로 만들었기에 물고기 미라도 많이 발견되었을 뿐더러 [[원숭이]], [[양(동물)|양]], [[뱀]], [[당나귀]] 등등 이집트 박물관에 가면 진짜 여러가지의 미라가 놓여 있다. 참고로 대부분의 미라로 만든 동물들은 '의식용'으로 키워진 동물들이다. 이 동물들은 신전에서 미라와 함께 묻기 위해 키우는 동물들인데, 신전에서 떠받들다시피 키우다가 이들을 껴묻거리용으로 구매하고자 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고가에 팔았다. 주로 재생의 상징인 [[개구리]], [[바스테트]]의 표상인 [[고양이]], [[호루스]]의 상징인 [[매]], [[크눔]]의 상징인 [[악어]]등을 많이 묻었다. 이외에도 죽은 이가 부활했을 때 먹기 위해 미라로 처리해 둔 동물들도 있다. 2017년 [[영국]]에서 전국 박물관에 있는 이집트 동물 미라들을 [[X선]] 등으로 조사했더니, [[http://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150513601025|사체가 실제로는 없는 '가짜 동물 미라'가 적지 않다는 게 밝혀졌다.]] 현대에 모조품을 만든게 아니라, 고대 이집트인들이 처음부터 가짜 동물 미라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이를 연구한 리디야 맥나이트 박사는 두 가지 이유를 추측했는데, 하나는 동물의 사체 자체는 주인과 함께 매장하고 이후 기념품의 용도로 '모의 미라'를 제작했을 가능성이다. 다른 하나는 '''미라 제작자들이 사기를 쳤을''' 가능성이다. 후자의 경우, 당대 이집트에선 위에 언급한 것처럼 동물 미라 제작이 대단히 활발해서 '산업'으로 봐도 될 정도였으므로 이를 악용해서 가짜 미라를 만드는 사기꾼도 존재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게 그 근거이다. 미라 풍습은 로마 점령 시대 이후까지 이어졌다. 이 시기 미라제작은 이집트 방식을 그대로 따랐으나 매장방식엔 차이가 생겼는데, 붕대를 감은 뒤 로마식 유화/모자이크화 방식으로 망자의 얼굴이 그려진 마스크를 씌우거나, 미라를 안치할 관에 망자의 생전 얼굴을 그려넣는 등이었다. 아예 생전에 영정사진처럼 그려둔 초상화를 붕대에 부착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https://n.news.naver.com/article/123/0002002595|이때 초상화에 보정을 과하게 넣은 것이 현대에 밝혀지기도 했다]]. 이후 [[이집트 신화|이집트 전통 신앙]]의 쇠퇴와 [[기독교]]/[[이슬람교]]의 박해로 미라 제작은 사라졌으나, [[유럽]]이 [[르네상스시대]]에 접어든 이후 [[해부학]]의 발전에 따라 [[고대 이집트]]의 시신 방부 처리법을 재조명하기 시작했고, 이후 본격적으로 오늘날의 '''[[엠버밍]]'''으로 그 여명이 이어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