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중화 (문단 편집) === 빙그레-한화 이글스 시절 === [[1987년]] 신인지명회의에서 좌타자의 희소성을 인정받아 1차 지명으로 입단했다. 입단 초기였던 [[1987년]]과 [[1988년]]은 각각 48경기, 66경기에 출전해 나쁘지 않은 성적을 보였다. 이후 [[1989년]]부터는 [[김영덕]] 감독의 용병술로 주로 2번 타자에 기용되었다. [[1989년]] [[8월 25일]]까지 21연속 [[도루]] 기록을 세웠다. 이해에는 25도루 49득점을 기록했다. [[OPS]]도 .719로 나쁜 편은 아니었다. [[1990년]]에도 줄곧 2번 타자로 기용되었으며, [[선구안]]이 상승해 출루율 중 볼넷의 비율이 많아졌다. 도루도 꼬박꼬박 해서 16도루를 달성하지만, 도루실패율이 두 배로 늘어난 건 덤. [[1991년]]에는 351타석에 들어서 25도루 34볼넷 46득점을 기록. 타율도 3할, 장타율은 4할, .776의 OPS를 기록하며 그야말로 선수로서 최고의 한해를 보냈다. 이 해 수준급 활약을 펼쳤고 팀은 [[1991년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하였으나 3차전에서 8회 2사 후 평범한 파울 플라이를 놓치며 퍼펙트를 기록하던 [[송진우(야구)|송진우]]가 흔들리게 되는 빌미를 제공하며 결국 패배하는 일이 있기도 했다.[* 만약 파울 플라이를 잡았다면 퍼펙트 게임이 완전히 굳혀졌을지도 모른다. 정회열에게 볼넷, 홍현우에게 안타, 그리고 장채근에게 2타점 싹쓸이 적시타를 내주며 2-1로 역전패 당했다. 정회열에게 던진 회심의 몸쪽 공이 볼 판정을 받았으나 포수 유승안, 구심 이규석 모두 볼이라고 인정했다.]그래도 당해년도 정규 시즌에 war 2.99를 찍는 등 수준급의 선수로 성장하는듯 보였으나.. 다음해인 [[1992년]]부터 부진의 늪에 빠져버린다. 도루 횟수도 반토막 나버리고, 타율도 2할대 초반을 기록하며 전년도의 페이스는 온데간데 없어져버렸다. [[1993년]]에는 부상까지 겹쳤고 이후로도 계속 부진을 면치 못해 결국 [[1995년]] [[5월 30일]]자로 [[삼성 라이온즈]]로 트레이드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