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중무 (문단 편집) == 생애 == [[700년]]에 북해왕(北海王)에 봉해졌다가, [[705년]]에 온왕(温王)으로 봉해졌다. 710년 중종 이현이 죽자 황위에 올랐지만, 7월 8일부터 7월 25일까지 겨우 17일 동안 황위에 올랐다가 중종의 동생인 [[당예종]]에게 양위를 하고 물러나, 당 황실에서 시호만 받고는 묘호를 받지 못했다. 따라서 상제(殤帝) 또는 [[소제]](小帝)라고 불린다. [[710년]], 위황후는 막내딸인 [[안락공주]]와 공모하여 중종을 독살하였다. 그리고 16살에 지나지 않은 온왕 이중무를 황제로 세우고, 연호를 당융이라 하였다. [[당중종|중종]] 이현은 모두 4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당시 [[의덕태자|이중윤]]과 [[절민태자|이중준]]은 이미 죽었고 이중무와 [[이중복]]이 생존해 있었지만, 이중복은 이미 조정에서 밀려난 상태였다. 위황후는 나이 어린 이중무를 옹립하여 실권을 장악한 뒤, 그에게서 선양을 받아 황위에 오르려고 하였다. 위황후는 시어머니인 [[측천무후]]처럼 스스로 황제가 되어 왕조의 찬탈을 꾀했고, 안락공주도 황태녀가 되어 황위를 계승받으려 했다. 하지만 [[당예종|예종]]의 3남인 [[당현종|임치왕 이융기]]와 측천무후의 딸인 [[태평공주]] 등이 금군을 이끌고 [[당륭정변]]을 일으켜 위씨 일족을 살해하였다. [[위황후]]와 [[안락공주]] 모녀도 궁중에서 살해되었으며, 이중무도 상왕으로 물러나 있던 예종 이단에게 양위를 하고, 원래의 작위인 온왕으로 강등되어 유배되었다. 당상제 이중무는 이융기에게 살해되었을 확률이 높지만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