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종화(축구인) (문단 편집) == 클럽 경력 == 국가대표 선수를 여럿 배출한 통영 출신으로, 초등학교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 중동중학교로 진학하며 서울로 향했다. 이후 중동고에 진학했으나 다시 고향 근처 마산의 창신공고로 전학을 갔고, 여기서 처음으로 중앙 수비수로 포지션을 바꾸며 축구 인생에 큰 전환점을 맞이한다. 수비수로의 포변 이후 청소년 대표에 뽑히는 등 국가대표급 유망주가 되었고, 고졸 선수로써 [[국민은행 까치]] 축구단 훈련도 받는 등 바로 실업행을 고려했으나, 이내 마음을 바꿔 [[인천대학교]]에 입학했다. 이후 인천대 3학년에 [[현대 호랑이]]와 계약을 하고 조기에 프로로 진출하게 된다. 그러나 1986년 프로 첫 시즌 초반 기회를 부여받았으나 좋지 못한 모습만 보인 끝에 후보로 밀렸고, 그 충격에 이종화는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빵집 경영을 하며 2년여를 살았다. 하지만 그를 아까워한 고향 선배이자 축구인 [[김호]]가 [[현대 호랑이]] 새 감독으로 부임하며 그를 찾았고, 1988년 그는 다시 선수단에 합류하며 몸을 만들기 시작했다. 1989년부터 다시 프로 선수로 돌아간 이종화는 리그 35경기에 나서며 주전을 꿰찼다. 공격수 출신이었기 때문에 세트피스에서의 골 감각도 좋아서 복귀 시즌 4골이나 득점하는 등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 시기부터 이종화는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며 멀티 플레이어로 거듭난다. 특히 이전의 예측형 수비에서 벗어나 파이터형 수비수로 플레이스타일을 완전히 바꿨다. 1991시즌 현대에서 주전 경쟁에서 밀리자 그는 과감히 이적을 선택하고 일화 천마로 둥지를 옮겼다. [[박종환]] 감독이 구애를 보내 영입한 것으로, 일화 합류 직후부터 일화의 주전 수비수로 뛰며 후반기 15경기 1골을 기록했다. 이후 일화의 [[신의손]], [[신태용]], [[안익수]] 등 쟁쟁한 멤버들이 들어오면서 본격적인 '''일화 왕조'''의 서막이 열리게 되었고, 그는 그 황금 멤버의 중심에서 K리그 3연패를 달성하는 핵심 멤버가 되었다. 1993년부터 1995년까지 선수의 회고에 따르면 이 시기에는 '''컨디션이 안좋으면 비기겠다''' 수준으로 생각하고 뛰었다고 하니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던 시기였다고. 1992년과 1993년엔 2년 연속으로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도 선정되었다. 이후 1996년 한 시즌을 주장으로써 더 치르고 선수 생활을 은퇴했다. K리그 통산 191경기 9골 3도움을 기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