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종원 (문단 편집) == 생애 == 1969년 11월 4일 [[전라남도]] [[나주시|나주군]](現 나주시)에서 아버지 이용업(李庸業, 1933년 8월 3일생)과 어머니 박상빈(朴相彬)의 딸 사이의 2남 2녀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서울로 이사하여 서울금화초등학교와 서대문중학교,[* 1992년 폐교되고 그 자리에 [[한성과학고등학교]]가 개교하였다. 야구선수 [[이병규(1974)|이병규]]의 중학교 5년 선배다.] [[대신고등학교(서울)|대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단국대학교]] [[토목공학과]]에 입학하였으나 중퇴하였다. 단국대학교 입학과 동시에 중퇴 후 유학을 준비하다가 우연히 [[길거리 캐스팅]]으로 CF모델에 발탁되었다.[[http://www.cine21.com/db/person/info/?person_id=5464|#]] [[1988년]] '캘리포니아 건포도' 광고로 데뷔했으며, 동년도에 방영된 [[코카콜라]] 광고[* 이 광고의 엔딩을 장식한 [[심혜진]]이 스타로 떠오른 광고이다.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에 나오는 코카콜라 광고와 동일 포맷으로 제작됐다.]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가 세간에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1990년을 전후로 등장한 리복 CF. 당시 화제가 됐던 [[리복]] 광고 내용은 남자 무용수로 분한 이종원이 아무도 없는 연습실에서 홀로 격렬하게 춤을 추는 광고로 클라이막스에서 의자를 밟고 위로 올라가 균형을 잡으며 [[https://www.youtube.com/watch?v=Yv2CIBiTeHE|서서히 의자를 쓰러뜨리면서 내려오는 장면]]이 대중들의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당시 엄청나게 유명한 CF였기에 이 CF를 당시 중고딩들은 학교에서 다 따라하다가 의자를 박살내고, 다치고, 선생님들한테 두들겨 맞고 난리도 아니었다. [[응답하라 1988]] 제5화에서 성선우([[고경표]])가 따라하다 다치는 장면도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CF로 데뷔한 줄 알고 있는 이들도 많았다. 인터넷에는 오랫동안 이종원의 리복 CF가 1988년이나 1989년 작품이라는 잘못된 기사와 글들이 반복되고 있지만, 그는 1980년대 후반에 [[르까프]] 모델로 계약된 상태였다.[* 그리고 이 잘못 알려진 사실은 [[응답하라 1988|이 드라마]]에 나왔다. 허나 [[http://blog.naver.com/220232738283|진짜 1989년작일 수도 있다.]] 해당 CF엔 '타잔'이라는 제목의 외화 프로그램 타이틀(1934년작 Tarzan and His Mate)이 떠 있는데,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041500209216017&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9-04-15&officeId=00020&pageNo=16&printNo=20781&publishType=00020|1989년에 실제로 MBC에서 방영했었다.]] ] 준수한 외모와 세련되고 도회적인 이미지에 학창시절 핸드볼 선수로 활약하며 다져진 몸매 그리고 뛰어난 운동신경으로 스포츠맨 이미지를 한껏 살리며 각종 CF 모델로 활동하다, 자연스레 연기자의 길로 접어들어 드라마 [[마지막 승부]]에서 대박을 내면서 하이틴 스타의 반열에 합류했다.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영화에도 여럿 나왔다. [[베트남 전쟁]]을 다룬 영화 [[http://www.stevenh.co.kr/217|푸른 옷소매]](1991)를 찍으러 [[태국]] 촬영을 갔다가 식중독으로 고생했던 바 있다. 같은 시기 개봉한 [[머나먼 사이공]]보다야 평이 좋았으나 흥행은 실패했다. 그밖에 <17살의 쿠데타>는 흥행과 평에서 아주 망했던 걸 비롯하여 영화 쪽에서는 그리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광고와 드라마 덕에 인지도가 높아진 1990년대 중반부터 각종 드라마에 출연하며 연기력을 쌓아갔다. 본래는 드라마에서 사랑에 상처받고 인생에 좌절하는 등 연약한 청년의 역을 주로 맡았다. 김혜수와 호흡을 맞춘 일요 아침드라마 [[짝(MBC)|짝]]과 1995년 방영된 조소혜 극본의 [[젊은이의 양지(드라마)|젊은이의 양지]]는 당시 그의 대표작. 그러다가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기 위해[* 청춘의 덫에 이종원이 악역으로 출연한다는 사실이 신문 기사로 나올 정도로 놀라운 일이었다.] 1999년 [[김수현(작가)|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청춘의 덫'''(SBS)에 메인 악역으로 출연하였는데 임팩트가 너무 컸는지 완전히 악역 '''불륜 전문 배우'''로 이미지가 굳어졌다.[* 1995년 드라마 [[젊은이의 양지(드라마)|젊은이의 양지]]에서부터 악역 이미지가 박히기 시작했다. 2007년 한 드라마 제작발표회에서 '3년간 6편의 드라마에 출연해서 5번 이혼했다'며 이제는 좀 벗어나고 싶다고 한다.] 그 이후로도 계속 악역으로만 캐스팅이 들어와 불만이 꽤 많았던 모양이다. 그 시절 악역 전문배우들이 그랬듯이, 지방에 촬영갔다가 동네 할머니들에게 이유없이 쌍욕을 먹거나 소금을 뿌려대는 등 푸대접도 많이 받았던 편이다. 바꿔 말하자면 그만큼 중장년층 시청자들이 제대로 몰입할 정도로 악역 연기를 잘 소화했었다는 얘기다. 2000년대 들어서는 좀 후덕한 불륜남 이미지로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샤프한 외모에 터프가이 기믹이 더해져 [[마지막 승부]](농구), [[사랑은 블루]](수영), [[아이싱(드라마)|아이싱]](아이스하키) 같은 스포츠 드라마에 단골로 캐스팅되기도 했다. 현재는 연예인 축구단 '슈퍼스타즈'의 단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여담으로 1999년에 동갑내기인 현지영과 결혼했는데, 하필 결혼 시기가 청춘의 덫 악역 출연과 겹쳐서 그해 가을로 결혼식을 옮겼다고 한다. 2020년 9월 말, 김용호 기자에 의해 원정도박 사실이 폭로되었다. 김용호 기자의 피셜에 의하면 3년 전에도 제보를 받았으나 이에 대해 인터뷰를 요청하니 소소하게 사람들 없는 곳에서 했었다며 부분적으로 도박을 했었음을 인정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