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전(삼국지) (문단 편집) === 2차 [[합비 공방전]] === 장료전에 따르면 조조는 손권을 정벌하고 돌아온 뒤, 장료를 보내 악진, 이전 등과 함께 7천 여 명을 이끌고 합비에 주둔케 했다. 조조가 [[장로(삼국지)|장로]]를 정벌할 때 호군 [[설제#s-1]]에 교서를 주었는데 서신의 겉봉에는 적이 도착하면 뜯어보라고 적혀 있었다. 갑작스럽게 손권이 10만 군사를 이끌고 합비를 포위하자 함께 뜯어보았는데 이렇게 적혀 있었다. >만약 손권이 오면 장료, 이전 장군은 출전하고 악진 장군은 수비하고 호군(설제)은 싸움에 참여하지 마시오. 제장들이 모두 의심스러워 하자 장료가 말했다. >공께서는 원정하느라 바깥에 계시므로 구원병이 오기를 기다린다면 적군이 우리를 깨뜨릴 것이 분명하오. 이 교서의 뜻은, 적이 미처 집결하기 전에 요격해 그들의 예기를 꺾어 군심을 안정시켜야 지켜 낼 수 있다는 것이오. 이전 또한 장료와 의견이 같았다. 이전은 [[장료]], [[악진]]과 함께 합비성에서 주둔했는데, [[손권]]이 병사를 이끌고 합비성을 포위하자, 장료가 조조의 출전 지시를 받들려고 했다. 악진, 이전, 장료는 평소에 화목하지 않았는데, 장료는 그들이 자신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하자,[* 소설 비열한 성자 조조에서는 장료가 이전의 숙부인 이건을 전쟁에서 죽였는데 이후 장료가 항복하자 조조가 용서하라고 이전에게 강요해서 이전이 장료에게 한을 품고도 복수할 수 없어서 슬퍼했다고 한다. [[감녕]], [[능통]]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온 이야기인 듯하다. 정사상으로는 이건이 장료에게 직접 목숨을 잃지는 않고, [[설란]]과 [[이봉]]에게 뒤통수 맞아 죽은 거로 나온다. 다만 설란과 이봉이 여포의 부하가 됐으니 결국에는 여포 세력의 장수에 의해 숙부를 잃은 건 맞다. 그렇기에 원래 여포와 동맹관계였던 장료와 이전 간의 관계도 꽤 서먹했을 것이다. 악진의 경우에는 장료와 그다지 접점이 없지만, 정황상 조조군 초기부터 활약해 온 인물로 조조가 여포/장료 연합과 박터지게 싸웠을 때 조조 휘하 무장으로서 여포군을 무찌르기도 했었다. 요컨대 적이었던 사람을 상전으로 모시게 된 격.] 이전이 분개하여 말했다. >이것은 국가의 큰 일이오. 당신의 계책이 옳은지 틀린지를 볼 뿐이지, 내가 어떻게 사사로운 원한으로 공의를 돌아보지 않겠소! 그리고는 군사들을 인솔하여 장료와 함께 손권을 무찔러 내쫓았다. 이전은 식읍 1백호가 늘어나 이전 것과 합쳐 3백호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