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임보 (문단 편집) == 평가 == >이임보(李林甫)는 아첨으로 입신출세하여, 지위가 삼공재보에 이르러, 교만을 두려워하지 않고, 군주의 총명함을 가렸으며, 살아서는 오직 남을 업신여기고 모함하였으며, 죽어서는 다시 남으로부터 모함을 받았으니, 어찌 하늘이 그의 손을 빌어 재앙을 보이지 않았겠는가! >------ >[[구당서]]의 논찬 이임보는 여러 [[간신]]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있는 존재이다. [[클래스]]가 다른 존재라고 해도 좋을 정도. 이임보는 외척으로서 권력을 잡은 것도 아니고, 종실 출신이기는 했지만 당고조의 숙부의 후손이라 조상 중 추존이 아닌 실제 황제는 하나도 없었던 굉장한 방계였으며, 황제와 연줄이 닿은 것도 아니고, 환관으로서 황제의 눈과 귀를 막은 것도 아니다. 심지어 이임보는 '''거대한 파벌을 만들지도 않았다.'''(...) 그의 인사는 철저하게 연공서열로 승진시켰으며 재능이 있어도 특별히 승진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뇌물을 이리저리 돌린 교활한 자들은 특별히 승진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심복들과도 기본적으로 거리를 두었고, 어디까지나 이용하는 관계를 유지했다. 이를 통해 이임보는 간신이라 평을 듣는 존재 중 드물게도 천수를 누린, 그것도 심복들이 줄줄이 잡혀가는 스캔들이 터지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천수를 누린 극히 드문 존재로 남을 수 있었다. 저 안록산 또한 이런 이임보의 정치술에 두려움을 느껴 야심을 숨기고 조용히 있을 수밖엔 없을 정도로. 한마디로 정적들이 자기를 알아서 두려워하게 만든 무서운 사람이다. 또한 능력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어서 그가 재상을 17년에 걸쳐 지내는 동안 그다지 커다란 소동이 일어나지도 않았고 반란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고선지]]와 같은 장군이 서역을 개척하는 등의 군사원정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또한 당률의 편찬이나 절차의 간소화 등 여러가지 개혁을 꾀하는 등 어느 정도 정무처리에도 신경을 쓰기도 하였다. 관중에 많은 곡식을 쌓아두었다는 기록이 남는 등 재정 운영도 꽤 건전하게 하였으며, 말년에 지방관의 탐욕을 막게하거나 귀족들이 정부의 돈을 제멋대로 쓰는 일을 제재하려다 양국충에 의해 실패하는 등의 모습을 보면 그가 단순히 사리사욕에만 관심이 있는 탐관오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임보는 훗날 간신의 대부격으로 남게 되는데 그 이유는 그가 사실상 당나라 멸망의 주춧돌을 놓은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권력을 잡은 방법은 매우 정교했다. 자신 외에 실권을 잡을 수 있는 모든 파벌을 철저하게 쪼개고 나누어 서로 이전투구하게 만들었으며, 그 사이에서 홀로 우뚝 선 존재로 언제든 어떤 파벌과도 손을 잡고 끊을 수 있는 상태를 17년간 유지했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놀음 과정에서 여타 파벌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거물급 관리들은 좌천시키거나 지방 태수로 임명해 쫒아낸다. 오로지 그 혼자만이 중량급 정치인으로 중앙정계에 남아있었던 것. 그 결과 중앙 정부는 정계의 중심이 될 수 없는, 빈약한 수준 인물들이 판치는 반면 지방 정부는 거물급 인사들이 있었고[*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안진경. 서예에서는 왕희지에 필적하는 명필로 알려져 있지만 문관이면서도 강직한 인물이었으며 능력도 뛰어나서 안록산의 난 당시 대활약을 한 적도 있다.] 그 결과 그의 사후 이렇게 갈라지고 쪼개진 여러 파벌들의 정치투쟁은 정국의 혼란을 가져온다. 게다가 문신들이 장성내 절도사를 거처 재상이 되어 정계에 부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절도사들은 장성내외 할 것 없이 무관들로 채우는 정책을 폈고, 그 결과 정부에 대한 충성이 낮은 인물들이 지방 군권력을 잡게 된다.[* 안록산이 대표적인 예. 사실 안록산은 이민족 출신 장군으로 아첨을 통해 중앙정계까지 진출했지만 이임보와 양국충의 틈새에 낀 상태였고 반면 세 명의 절도사가 다스려야 할 지역을 혼자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현종의 총애를 받기도 하였다.] 덤으로 '''중앙군까지 사실상 해산'''시켰으므로 유사시 조정이 직접 지휘할 군대가 없게 만들었다. 이는 훗날 '''[[안사의 난]]'''이라는 대규모 반란을 초래하게 된다. 이임보는 이런 매우 정교한 정치공작을 통해 중앙정부를 운용했고, 그 외에 중앙 정부를 이끌 수 있는 수준의 거물급 인사가 없었기에 그가 죽고 양국충이 권력을 잡자 중앙 정부는 말 그대로 수많은 파벌이 난립하는 혼란상이 빚어진다. 게다가 양국충은 능력도 별로인 데다가 안사의 난 초기에 죽는 바람에 그 이후가 더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 결과 군사 반란이 일어나자 이들은 잘 싸우는 장수들에 대해 지독한 견제를 하게 되어 결국 조기 진압도 가능했던 반란을 질질 끌게 만든다. 안사의 난이 일어났을 때도 민중들이 절도사들에 대한 지지는 약했으며 따라서 정부군이 그렇게까지 불리한 상황은 아니었다. 유능한 장수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임보 집권 17년을 거치면서 산산히 쪼개진 파벌들은 자신 외의 파벌로 여겨진 장수들의 등을 찌르기 바빴고, [[고선지]]와 같은 명장들이 그 희생양이 되어 처형되는 등 조기 진압에 실패, 당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즉 이임보는 권력을 견고하기 위해 '''그 자신만이 운용할 수 있고, 자신이 죽고 나면 정국에 대 혼란을 가져오는''' 근시안적 방법을 썼고, 그 결과 당나라를 멸망시키는 토대를 쌓는다. 이러한 점으로 인해 그는 후세에 간신 중에서도 최고봉에 속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게 된다. 여담으로 관롱집단과 한인[* 寒人, 한미한 출신] 관료층의 대립으로 당의 역사를 이해하게 될 경우, 이임보의 집권은 당나라의 정치집단이 관롱집단으로 회귀하는 상징적인 사건이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