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임보 (문단 편집) === 종말 === 하지만 화무십일홍이라고, [[양귀비]]를 방패삼아 등장한 [[양국충]]에 의해 이임보는 조금씩 밀려나게 된다. 750년부터는 양국충의 권세는 점점 강해지고 있었고 이임보의 심복들이었던 서경 소사, 대부 송혼 등이 좌천당한다. 이임보는 이들을 구제하고자 하였으나 그럴 수 없었다. 752년 귀족들이 지방에서 착취한 지방화를 정부에서 양전 하나로 바꿔 시장에 쓰는 바람에 물가가 치솟는다. 이임보는 이를 막기 위해 1개월간에 걸쳐 착취된 돈을 모두 회수하려 한다. 그러나 이것에 반대한 귀족들은 이를 양국층에 일러 이를 저지한다. 이로써 이임보의 입지는 약화된다. 설상가상으로 이임보가 임명한 돌궐족 출신의 아포사가 안록산과의 불화로 반란을 일으켰으며 그의 심복인 왕이가 반란을 일으킨다. 이임보는 왕이를 구하려 하였으나 양국충의 의견에 밀려 왕이는 사형당한다. 양국충은 현종에게 이임보가 두 반란에 연루되어있다고 고하고 다른 대신들이었던 진희열, 가서한 등도 그렇게 주장했으므로 현종도 이임보를 싫어하게 된다. 이임보는 이에 대응하여 양국충이 주도한 남소 토벌이 몇차례나 실패한 것을 핑계삼아 양국충이 직접 토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를 검남 절도사의 임지로 파견하여 조정에서 떠나게 하려고 했고, 현종은 양국충에게 임지로 가라고 몇 차례나 재촉하였으나 그때 이임보의 병세가 위중하였으므로 양국충은 이임보가 죽을 때까지 기다리며 일부러 떠나는 것을 늦춘다. 이임보의 죽음이 명백해지자 양국충은 이임보를 병문안 갔고 이임보는 눈물을 흘리며 양국충에게 뒷일을 부탁했다고 한다. 그리고 곧 죽는다. 그러나 양국충이 그의 말을 귀담아 들을 리 없었다. 753년 양국충은 안록산, 진희열과 함께 이임보는 아포사와 공모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미 죽은 이임보의 과거 관직을 박탈하고 그를 서민으로 삼은 뒤 재산을 몰수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