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임보 (문단 편집) === 시작 === 농서이씨(隴西李氏) 순왕파(郇王派)[* 단 중국어 위키백과에서는 순왕방(郇王房)으로 나오는데 중국에서는 한국의 파를 방이라 한다.]로 당나라의 황족이다. 소목(昭穆)을 따지면 순왕 위(褘)[* [[당고조]]의 숙부]의 현손자이고 [[이숙량|장평숙왕(長平肅王) 숙량(叔良)]]의 증손자이고 화양공(華陽公) 효빈(孝斌)의 손자이고 양주참군(揚州參軍) 사회(思誨)의 아들이다. 소목을 따지면 알겠지만 [[관롱집단]]의 일원이었다. 어렸을 적에 음악과 그림에 남다른 솜씨가 있었고 사냥을 좋아하는 등 무예에도 소질이 있었다. 하지만 그다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고 노는데 바빴지만 황족이라서 숙부를 통해 관직에 오른다. 간신이면 갖추어야 할 필수 능력을 이미 가지고 있었는데, 당연하게도 성격이 둥글둥글하였고 특히 그를 대면한 사람들에겐 온화한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철저히 계산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며, 내시와 황후 쪽과 친목을 다지는 데 주력하였다. 주로 관리와 [[환관]]의 마찰을 빚는 경우가 대부분인 궁중에선 독보적인 존재였다. 이임보가 내시와 후궁 줄을 타려고 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현종은 연로하여 점점 정치에 싫증을 내기 시작하였고 점차 후궁에 지내는 시간이 잦아졌다. 양귀비에 빠진 것도 같은 이유였다. 그래서 내시와 후궁에 연줄이 있으면 황제와 더 가까워 질 수 있다는 이점이 있으며 또한 그들의 호감을 산다면 황제에게 좋은 평판이 전달될 테니 출세에도 유리하다. 뿐만 아니라 내시와 후궁들은 현종이 어떤 기분인지 그리고 어떤 의중을 가지고 있는지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다. 이임보는 그들과 친분을 최대한 이용, 현종의 이런 의중을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고 따라서 최대한 현종의 의중에 맞는 정책을 펼 수 있었다. 이런 노력(...)이 결실을 맺어 이임보는 순조롭게 출세가도를 달린다. 726년 어부중승으로 승진하였고 이때 구파의 수장이었던 장설을 탄핵하는 데 참여한다. 그 뒤 형부시랑, 사부시랑 등의 벼슬을 누린다. 또한 현종의 총애를 받고 있는 [[무혜비]][* [[측천무후]]의 조카다.]와 그 아들 수왕(壽王) 이모(李瑁)[* [[양귀비]]의 남편, 즉 아버지에게 아내를 뺏긴 그 사람이다.], 그리고 무혜비의 유모의 후원자가 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그는 이들의 도움으로 황문시랑에 발탁된다. 그 뒤 734년 예부서경에 승진한 뒤 재상 후보에까지 오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