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인응 (문단 편집) === 초기 === 1832년([[순조]] 32년) 6월 14일에 군수 이단화(郡守 李端和)와 [[해평 윤씨]] 윤응선(尹應善)의 딸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원래 [[정원군|조선 원종]]의 2남이자 [[인조]]의 동생인 [[능원대군|능원대군 이보]]의 8대손으로, 조선 왕실 직계와는 원종의 아들 대에서 갈라졌기 때문에 200여 년이 지난 당시에는 왕족이 아니었다. 그의 본 가계는 다음과 같다. >[[능원대군|능원대군 이보]] - 영춘군 이정 - 창은군 이권 - 안풍군 이영 - 이후근 - 이복현 - 이제로 - 이단화 - '''이세보(이인응)''' 그러나 20살(만 19살)이던 1851년([[철종(조선)|철종]] 2년) 7월 14일 [[풍계군]]의 사후 [[양자(가족)|양자]]로 입적하여 왕족이 되었다. 이 때 작호 경평도정(慶平都正)을 받고 이름도 이호(李晧)로 고쳤다. 그 해 9월 경평군(慶平君)으로 승격했다. 풍계군은 [[은전군]]의 양자이기 때문에 [[호적]] 상으로 [[철종(조선)|철종]]의 [[8촌]] 형제가 되었는데[* [[철종(조선)|철종]]의 법적 가계: [[영조]] - [[효장세자|효장세자(진종)]] - [[정조(조선)|정조]] - [[순조]] - '''철종'''.[br]경평군의 법적 가계: [[영조]] - [[사도세자]] - [[은전군]] - [[풍계군]] - '''경평군'''.], 풍계군은 원래 [[은언군]]의 친자식이었기 때문에 철종은 '실제 큰아버지의 양자'[* 철종은 은언군의 아들이자 풍계군의 동생 전계대원군의 친아들이다.] 이호를 사실상 [[사촌]]처럼 대했다. 이후 오위도총부(中義大夫兼五衛都摠府) 부총관[* [[조선시대]] 중앙군 조직인 오위(五衛)를 총괄한 최고 군령(軍令) 기관이며 부총관은 최고 지휘관인 총관의 다음가는 서열이다.]이 되었다. 1853년(철종 4년)에는 철종의 [[수라상]]을 감독, 관리[* 이를 '감선(監膳)'이라고 한다.]하는 직책을 맡았다.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세력]]이 절정에 달한 상황에서 철종이 그나마 안심하고 맡길 만한 사람이 가까운 [[종친]]이었기에 그를 임명한 것이다. 1857년(철종 8년)에는 동지사은정사(冬至謝恩正使)[* [[조선시대]] [[중국]]에 정기적으로 보내던 [[사신]].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동지]] 즈음에 보낸다.]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이 때 철종은 그를 통해 청나라와 [[국제]] 정세에 대해 알아보도록 했지만 당시 기세를 떨치던 세도가들의 농간에 별 일 없다는 거짓 정보만 알리고 말았다. 참고로 이 때는 '''[[아편전쟁]] 등 [[서구권]] [[열강]]이 [[동아시아]] 침탈을 시작하던 시기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