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윤열 (문단 편집) == 기타 == 한때 다전제에서 강력한 게이머로 유명했다. 게임 외적인 멘탈은 이리저리 흔들리는 게이머였지만 게임 내적으로는 매우 단단한 선수. 선수 생활 말기 윤용태에게 5전제에서 셧아웃 당하기 전까지 [[케스파]] 공식전 5전제 [[셧아웃]]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비공식전은 몇 번 있다. [[이재훈(1981)|이재훈]], [[주진철]], [[홍진호]] 등. [[강민]]에게 스타우트배 결승전에서 당한 것은 승자 어드밴티지 1승을 깔고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0:2 패배. 3전제 까지 포함하면 셧아웃이 몇번 더 있으나 보통 3전제에서 당한 0:2 패배는 많이 나오기에 셧아웃으로 치지 않는다.] 더욱이 [[리버스 스윕]]의 대가로 유명했다. KPGA 2차 결승에서의 [[홍진호]], Stout배 4강에서의 [[전태규]], IOPS배 4강에서의 [[박태민]] 등 이윤열을 궁지로 몰아넣고도 최후의 순간까지 나오는 끝을 알 수 없는 저력에 밀려 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담이지만, '--성준모--의 GG후 토크'에서 밝히길 IOPS배 4강에서 박태민은 무조건 3:0으로 끝내는 시나리오를 준비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3경기에서 이윤열에게 패해버렸고 결국 역전패를 당했다고 한다.] [[리버스 스윕]] 3회로 가장 많은 기록을 세운 선수이다. [[테막]] 선수들을 많이 만난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2나 선수 생활 말기에 진출한 개인리그에서 대진운이 따라준 것으로 인해 이윤열은 대진운빨이다라고 비난하기도 하는데, 사실 전성기 시절에는 오히려 대진운이 나쁜 축에 속한 선수였다. [[조지명식]]에서는 기량이 하락한 2007년 말 이후를 제외하면 항상 실리보다는 명분을 추구했던 선수인지라 어지간한 우승자급 선수들을 죄다 불러모으기로 유명했다. 파나소닉 OSL 우승 후에 열린 올림푸스 OSL에서는 [[임요환]], [[박경락]], 이재훈과 조를 편성했고, [[IOPS 스타리그]] 우승과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 우승 후에는 테테전 최악의 천적이었던 [[최연성]]을 자기 조에 데려오기도 했다. 곰TV MSL S2에서는 [[최연성]], [[이승훈(프로게이머)|이승훈]], [[박성준(1986)|박성준]], 곰TV MSL S3에서는 [[김택용]], [[최연성]], [[이영호]]와 같은 조가 되었다. 구룡쟁패 [[듀얼 토너먼트]]에서는 [[강민]], [[차재욱]], [[마재윤]]과 같은 조가 되었고, 아이스테이션 듀얼 토너먼트에서는 [[전상욱]], [[강민]], [[서경종]]과 같은 조였다. 2007 3차 듀얼 토너먼트에서는 [[박명수(1987)|박명수]], [[마재윤]], [[고인규]]와 같은 조가 되었다. 특히 하부리그에서 [[강민]], [[마재윤]]과 자주 만나면서 리그 흥행을 염려하는 관계자들을 가슴 졸이게 만들었다. 프로게이머들이 노래를 부른 GG 앨범에서 날아라 병아리를 불렀는데.... 다음 곡이 노래 잘 부르는 김동수의 천년의 사랑이라 더 대비된다. 투나SG(SG패밀리), 팬택부터 시작해서 [[위메이드 폭스]]까지 오랜 기간 동안 소속팀의 유일한 희망이던 선수였지만, 기량이 하락한 이후로는 주전 경쟁에서 밀렸고, 2009년 이후로는 [[전태양]]이 소속팀의 에이스가 되었다. [[이병민]]과 [[박성균]], 더 나아가서는 [[전태양]]의 스승이다. 박성균의 결승전 때는 박성균보다 오히려 그가 장렬한 표정을 짓고 있기도 했었다. 이병민은 이윤열과 함께 있던 팬택 시절만 해도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주었고, [[kt 롤스터/스타크래프트|KTF 매직엔스]]로 이적한 이후에도 꾸준히 활약했으나, [[김철(1973)|김철]] 감독 부임 이후 김철 감독의 미움을 사 [[2007년]] 이후로 [[슬럼프]]에 빠져 버렸고, 2007년 하반기에는 아예 숙소에서 나왔다가 [[2008년]]에 [[eSTRO]]로 [[이적]]했으나, 끝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당해 상반기에 [[은퇴]]해 버렸다. 전태양의 경우는 입단 이후부터 이윤열과 박성균의 집중 지도를 받았으나 한동안 꽃을 피우지 못하다가 언젠가부턴 [[이제동]], [[송병구]]를 잡아내고 [[이영호]]와 대등한 경기를 할 만큼 선전하고 있다. 물론 기복은 좀 있었다. 04-06년까지는 그야말로 팬택의 등불이자 희망으로, 이영호보다 앞선 원조 [[소년가장]] 신세였다. 스폰서 팬택과 위메이드조차도 결국 이윤열을 보고 스폰을 한 것을 생각하면 스타성과 성적 모두 이윤열에게 달려 있었다. 07 후기리그 이후로는 후배들이 자리를 차지했지만, 이윤열의 스타성이 위메이드의 인수 계기임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위메이드 폭스의 모든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 2005년에는 [[팀플레이#s-2]]+개인전 최소 2경기를 뛰었고, 2006년 전기리그 팬택이 거둔 6승 4패 중에 5승이 이윤열의 하루 2승으로 이루어낸 성과였다. 가장 유명한 혹사로는 2004 그랜드 파이널+아이옵스 스타리그+2차 프리미어 리그+당신은 골프왕 MSL+MBC 무비스 팀리그를 한 기간에 소화해낸 것이 있다. 참고로, '''프리미어 리그를 제외한 모든 경기가 결승전에 올랐으며, 프리미어 리그는 4강전.''' 선수의 혹사란 개념이 없던 시기인데도 [[송호창(e스포츠)|송호창]]이 이윤열을 너무 부려먹는 게 아니냐는 질타를 받을 지경이었다.[* 사실 송호창의 이윤열 혹사 논란은 '''경기 외적으로''', 그러니까 각종 행사에 이윤열을 끌고 다녀서 연습할 시간까지 부족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단기 [[혹사]]로는 [[박성준(1986)|박성준]], 장기 혹사로는 이윤열. 하지만 이후 [[이제동]]과 [[이영호]]의 근 몇 년 동안의 눈부신 혹사로 인해 소년가장 이윤열은 많이 퇴색되었다. 같은 팀에 연습생으로 있었다가 KTF로 이적한 [[이영호]] 역시 이윤열의 제자라고 주장하는 팬들이 있었으나, 이윤열이 직접 "이영호 선수에게는 가르친 게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이영호의 증언에 의하면, 직접적으로는 배운 게 없긴 하지만 어깨너머로 게임 내에서의 센스를 배울 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의 판단력, 빌드 조립으로 상대를 완전 묶어놓고 관광보내는 [[이영호]]와 뛰어난 기본기와 동물적 감각으로 게임하는 이윤열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이다. 오히려 빌드보다는 병력운용으로 승리를 가져가는 이윤열과 비슷한 플레이 스타일은 박성균. 그나마 이것도 같은 팀이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흔적에 가깝고, 정작 이윤열 본인은 이영호도 박성균도 자신의 제자는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팬택 연습생 시절의 이영호가 만든 빌드를 이윤열이 배워 경기에 쓰기도 했고, 박성균에게 토스전을 많이 배운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가르친 게 없는데 제자라는 말을 들으면 본인들이 기분이 나쁠 것이니 자제해달라며 그런 식이라면 자기도 [[아이디얼 스페이스]] 시절에 [[임요환]]에게 배운 것이 있으니 임요환의 제자라고 말했다.[* 다만 굳이 따지자면 좋아했든 싫어했든 올드팬들이 가졌던 임요환-이윤열 사이에 대한 감정에 비해 이윤열-이영호는 길지 않은 기간 동안 같은 팀에 있었다는 것 이외에 엮을 것이 별로 없기는 하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임요환-이윤열은 [[https://www.youtube.com/watch?v=zvntQ6hnO-M|2005년 스니커즈배 올스타리그에서 경기 중에 서로 채팅 치면서 놀았다. 40분 10초부터]] 이윤열이 꾸준히 임요환에게 감사하다는 태도를 보여온 것도 올드팬들에게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2008년 6월 14일, 프로게이머 최초로 공식-비 공식전 합산 1000전을 달성했고, 1000전째 경기에서 당시 KTF(현 KT) 소속이었던 [[배병우]]를 상대로 [[오델로(스타크래프트)|오델로]]에서 승리했다. 당시 빠르게 [[테크 트리]]를 올린 뒤에 앞마당 뒷 언덕 지역을 막고 시즈 탱크 드롭을 감행하는 독특한 전략을 들고 나왔는데 재경기 판정이 내려져서 전략 노출의 위기에 몰렸지만 같은 전략을 다시 한번 작렬시키면서 승리했고, 팀도 승리했다. 비공식전 포함 총 전적 1000전까지의 기록은 '''627승 373패'''(승률 62.7%)였다. 한때 세 종족전 공식전 승률 모두 6할대였지만 2008년 이후로 승률이 급감하면서 현재 테란전과 프로토스전이 5할 후반대로 내려온 상태. 결과적으로 공식전 통산 승률은 50% 후반대를 기록했다. 비공식전 포함 다전 1위로 총 전적 1157전 708승 449패 (61.2%). 공식전 최다승, 최다 우승 등의 기록을 꽤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으나 프로리그의 경기수가 엄청나게 늘면서 결국 [[이제동]]에 의해 공식전 최다승 기록이 깨졌다. 최다 우승 기록도 [[이영호]]에 의해 동률이 되었다. 준우승 횟수까지 포함하면 양대 리그 커리어는 이윤열이 '''6회 우승 4회 준우승'''으로 6회 우승 2회 준우승의 이영호보다 더 위지만 이영호에게 있는 WCG 금메달이 없다는 이유와 프로리그 전적 및 커리어가 이윤열보다 크게 앞선다는 점으로 종종 커리어 관련해서 키배가 벌어진다. 이 부분에서 이윤열-이영호 시대에 공통으로 있었으며 본선보다도 더 치열한 선발전이 있는 WCG 우승으로 평가가 왔다갔다 하지만, '''아무래도 공식 리그로 대우받아 왔던 개인 리그 2회 준우승의 저명도가 더 높다'''. 결국 남는 것은, 이영호가 앞서는 10%의 승률과 프로리그 최고 승률 및 커리어, 이윤열이 우세한 준우승 기록 중 어떤 쪽에 무게를 실어주는가이다. 이윤열의 전성기 일부는 [[프로리그]]가 존재하지 않았고 프로리그는 자신의 실력 외 팀원의 실력에 따라 더 많은 승리를 얻을 기회가 있었고, 또 이윤열이 현역이던 시절 프로 게임 팀의 환경은 이영호가 현역이던 시절에 비해 훨씬 더 열악했기 때문에[* [[정수영(e스포츠)|정수영]]이 선수들을 빠따로 쳤다느니, [[송호창(e스포츠)|송호창]]이 이윤열을 대놓고 굴리고 푸대접했다느니 하는 것은 2007년 이후의 스타판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말이다. 외려 이런 면에서 비교되어야 할 선수는 FA 문제로 열악한 대우가 드러난 [[이제동]]이겠지만 이제동조차 [[화승 OZ]]에서 전기고문을 당했다느니, [[한상용]]에게 맞았다느니 하는 것은 내부인이 부정한 유머거리에 불과하다.] 일부 불리한 측면도 있다. 반면 이윤열은 이영호에 비해, 대표적으로 iTV 랭킹전, 겜TV 스타리그, 총 2회 개최되었던 프리미어리그와 같이 현재는 [[케스파]] 비공식 대회에 많이 참가할 수 있었으며, 이영호와 직접 비교할 수 있는 리그로 남은 것은 WCG 정도에 불과하다.[* 물론 이윤열과 비교하면 수는 적겠지만 이영호의 시대에도 곰TV 클래식, 실내 아시아 경기대회 등 비공식대회 자체는 꾸준히 열렸고 이영호도 타이틀을 꾸준히 쌓아왔다. 애초에 그런 식이면 양대리그 밖의 WCG도 커리어에서 빼야 한다. [[케스파]] 공식 리그 전적 이야기할 때는 WCG 이야기[* 그런데 정작 WCG 이야기는 이 둘 비교말고 다른 선수들 이야기할 때는 거의 안 나온다는 게 아이러니.]하다가 비공식 리그 이야기하자면 이윤열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말을 한다면 전형적인 [[내로남불]]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이영호는 MSL 우승 - 온게임넷 스타리그 8강 - 4강 등 여전히 꾸준히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는 도중 스타판이 갑작스럽게 문을 닫은 점도 고려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결국 '''시대와 환경이 판이하게 다른 두 선수를 직접 비교해서 다른 쪽을 까내리는 짓은 무의미'''하다. 애초에 이 논쟁은 개인리그 이야기하다가 프로리그 끌어오고, 케스파 공식 리그 이야기하다가 케스파 비공식 리그 끌어오고, 커리어 이야기하다가 환경 이야기 끌어오고 등등 논쟁을 위한 논쟁으로 비화되는 것이 절대 다수이며 이 문제는 양 선수가 같은 시대, 같은 환경, 같은 리그, 같은 조건을 가지고 활동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론이 날 수가 없다.[* 이런 비생산적인 논쟁의 결말은 '포스'라는 해괴한 단어로 인정 여부를 결정 지으려했던 [[본좌]]론의 말로에서 짐작할 수 있다.] 두 선수 모두 한 시대를 상징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선수이니, 무의미한 논쟁에 시간 낭비하지 말고 각각의 선수와 팬덤을 존중해 주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전성기 시절 임빠들에게 폭풍처럼 까여서 달빠 중에도 임요환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윤열은 임까인 달빠들조차 인정하는 임빠다. 최연성의 임빠 포스가 너무 강해 묻혔지만 인터뷰에서도 항상 '요환이 형이 닦아놓은 길을 따라가겠다'라고 말하는 등, 항상 임요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돌아온 스타 뒷담화에서도 존경하는 인물로 임요환을 가장 먼저 생각할 정도로, 임요환을 상당히 존경한다. [[조용호(프로게이머)|조용호]]가 CYON MSL에서 우승을 차지하기 전, KTF 소속으로 우승을 차지한 유일한 게이머였다. 임대이긴 했지만 KTF는 [[홍진호|그분]]의 팀이라 그런지 조용호 우승 이전에는 [[강민]], [[박정석]] 등 그 어떤 게이머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위메이드에서 그를 소재로 한 윤열베어라는 [[테디 베어]] 상품을 만들었으나, 그의 [[별명]]과 연동되어 '''벼 베어'''라 불리며 비웃음만 당하는 중이다. 그래도 워낙 귀엽게 나와서 그 팬들에게 인기가 있다. 팀리퀴드 양덕들은 이윤열의 몸매에 반해서 250페이지짜리 쓰레드를 써질럿다. [[http://www.teamliquid.net/forum/brood-war/100673-nadas-body|Nada's Body]] 화장으로 떡칠된 얼굴에 커다란 귀걸이를 한 이윤열 사진이 퍼지면서 거기에 각종 공주 캐릭터나 여자 연예인의 몸을 합성해 만든 윤열 공주라는 짤방이 스갤 2대 [[혐짤]]로 등록되었으며, 윤열 공주라는 구호는 이유없이 타 갤러리를 공격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 [[김풍]]의 [[내일은 럭키곰스타]]라는 작품에서 이름만 등장한다(여고생이 항상 얼굴을 가리는 피켓에 적힌 이름). 스타판은 이상하게도 카메라가 관중을 비추면 여성 팬들이 피켓으로 얼굴을 가리는 전통 아닌 전통이 있는데, 그것을 풍자하기 위함인 듯 싶다. 사실 카메라가 피켓을 든 관중을 중심으로 비추기 때문에 피켓으로 얼굴을 가리는 것 뿐이었다. 생각해보면 명색이 전파를 타는 방송인데 얼굴이 적나라하게 나가는 것도 썩 유쾌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근데 사실 네이버 연재전 김풍의 홈페이지에 연재됐을 당시 위에 서술된 장면에는 이윤열 대신 임요환이 들어가 있었다. [[인하대학교]] 컴퓨터공학부에 04학번으로 특례 입학을 하였지만, 정작 학교에는 거의 나오지 않았... 었지만 언젠가부터는 학교에서 종종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스타2 리그 경기가 없을 때는 학교에 나오는 듯. [[MBC게임]] 개인 리그 통산 100승 달성 기록을 가지고 있다.[* 통산 125승 88패.][* 유일하다. 2위는 99승을 기록한 [[이제동]].] 스타크래프트 케스파 양대 개인 리그 10-10 클럽 달성 기록을 가지고 있다.[* 온게임넷 스타리그 본선 14회, MSL 본선 18회 진출] 2009 [[아발론 MSL 2009]] 조지명식에서 놀라운 댄스로 NDS를 차지했다(세레모니 상). 벼봇춤 시즌2. [[2PM]]의 [[노래]]에 맞춰 한층 더 손발을 오그라들게 만드는 아름다운 춤을 선보였고 회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한동안 손발을 펴지 못했다. 하지만 그 날 2PM의 'Again & Again'은 조지명식 등장음악으로 세 번 나왔는데, 그나마 이윤열이 가장 나았던 것 같다. 아무튼 리그는 2연패로 [[광탈]]했다.[* 참고로, 이 시즌부터 [[MSL]]에서는 '팀별 프로리그 최상위자 1인 예선 면제/2패 탈락 예선 강등'이라는 해괴한 규정을 만들었는데, 이 때문에 예선으로 바로 떨어졌다. 문제는 이 일로 [[이성은]], 이윤열 등을 비롯한 MSL에서 볼거리를 만들어내던 선수들이 대거 [[탈락]]했다. 결국 팀별 예선 면제의 부작용이 불거지며 이 제도는 [[하나대투증권 MSL]]부터 다시 원래대로 환원되었다. 하지만 이윤열은 이후로 스2로 전향하기까지 예선을 뚫지 못했다.] 2009년 7월 4일 [[토요일]], [[LG 트윈스]]vs[[두산 베어스]]전 시구를 했다. [[김현수(1988)|김현수]]가 미소로 맞이해주며 악수도 청했다. 2010년 2월 3일 보도 자료를 통해 대한항공 호주 편의 CF에 같은 팀 소속저그 [[김준호(프로게이머)|김준호]]([[김준호(코미디언)|동명이인 개그맨]]과 혼동하지 않길 바람.)와 출연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대한항공측의 캐스팅 이유는 차기 [[온게임넷 스타리그]]의 스폰서가 된 대한항공이 이를 홍보하기 위한 것과, 20~30대층에게 여행의 로망을 어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데 2월 5일 진행된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시즌 1]] 예선전에서는 '''탈락해버렸다'''. [[켠김에 왕까지]]의 희생양으로 선택받았다. 그는 그 곳에서 말 그대로 지옥을 경험했다. 자세한 건 [[켠김에 왕까지]] 문서로... [[강민의 올드보이]] 7화에서 [[위메이드 폭스]] 10인 중 유일하게 [[강민]]에게 '''졌다'''. 쇼핑몰 사업으로 나다몰을 열었으나 폐쇄되었다. 인터뷰를 참고하면 [[oGs]]에 소속되어 있기는 하지만 합숙을 하지 않고 따로 생활하는 중이라고 하는데, 팬 카페 등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프로게이머 생활 연장 등을 위해 학업에 시간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팀리퀴드]]에서 한 인터뷰에 의하면 학업 등의 이유로 하루에는 5-10게임정도로 연습량이 매우 적었다고 한다. 방학동안이나 대회가 가까워지면 연습량을 크게 늘렸다는 듯. [[아프리카TV]] 개인방송에서 [[2015년]] [[11월]]에 7살 '''연하''' 대학교 동기와 [[결혼]]을 한다고 밝혔다. [[2015 HOT6 GSL Season 3]] 결승전 이후 아프리카TV 서수길 대표는 결혼식이 11월 9일에 진행되며 [[공허의 유산|스타크래프트 II 공허의 유산]] 국내 공식 런칭행사와 함께 코엑스 D홀에서[* 원래는 악스 코리아에서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장소가 변경되었다.] 진행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그리고 해당 결혼식은 아프리카TV와 트위치를 통해 글로벌 생중계되었다. 결혼식 후 반응은 스타크래프트 사에 큰 족적을 남긴 선수지만, 인륜지대사라고 불리는 결혼에까지 스타를 끌어들이는 건 무리수였다. [[월요일]] 저녁 7시 쯤 진행되어 지인들이 참석하기 어려웠을 것은 물론 모든 절차를 생략하지 않고 그대로 진행하여 행사 참석자는 물론 온라인 시청자들의 불만을 불러 일으켰다. [[결혼식]]은 [[친척]]의 경우만 하더라도 모든 과정을 다 지켜보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참석자들은 결혼식보단 공허의 유산 행사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강제로 모든 과정을 지켜봐야 했으니 반응이 좋을 수 없었다. 트위치로 지켜보던 해외 유저들도 욕을 섞어가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게다가 이윤열은 스타2와는 관련도 없이 생활하고 있고, 개인방송도 스1만 하면서 무슨 이유로 공허의 유산 발표회에서 결혼식을 하냐는 부정적 반응도 주를 이루고 있다. 블리자드는 이윤열에게 별풍선 10,000개를 쐈다. 결혼식에 블리자드의 사장인 마이크 모하임이 직접 축전을 보내왔다. 그래도 유명 프로게이머의 결혼이었기에 검색어 순위에 올라오며 많은 관심을 받았었다. 결혼을 할 때 숨겨진 5세의 딸이 있었다고 한다.[* 이 점 때문에 [[상근예비역]]이 나온 것일 수도 있다. 즉, 이 말은 [[혼인신고]]를 이미 한 상태에서 식만 못 치르다가 뒤늦게 치렀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2017년 9월 28일, [[강민]]과 함께 방송을 하면서 이 문서를 보았다. 그리고 둘이 웃었다. 2022년 5월 9일, 유튜브 [[근황올림픽]]에 출연했다. 현재 사업이 잘 되어 매출이 50억이상이라고. [[https://topstar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14690983|#]] 2008년에 [[개그콘서트]] 직관을 갔다가 [[https://youtu.be/qRataCpqfIk?t=70|카메라에 잡힌 적이 있다]][* 1분 10초.]. 옆에는 [[박성균]], [[박세정]], 뒤에는 [[안기효]]. 최초로 [[금배지]]를 수상받은 플레이어로 알려져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최초의 MSL 3회 우승은 이윤열이 맞긴 하지만 MSL 배지가 처음 만들어지게 된 것은 2006년 경이며 은배지는 이후 2007년 경에 제작되었다. 원래 MSL 금배지 자체가 [[마재윤]]의 MSL 3회 우승을 기념하기 위해서 제작된 것이 시초였다. 이후 2007년 MBC게임에서 1회 우승자를 위한 은배지를 새롭게 제작하였고 동시에 3회 우승자를 위한 금배지 또한 수여하게 되었다. 3회 우승자인 이윤열과 [[최연성]][* 최연성은 [[OSL]]이 아닌 MSL에서 먼저 우승을 했다.]도 이 때 금배지를 같이 증정 받았다. 앞서 언급한대로 2005년에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하는데, 사실 본인이 5살 때 자전거를 타고 가시다 과속차에 치여 중상을 입었던 적이 한번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제대로 뒷처리도 못했는지 보상비는 커녕 치료비도 못 받았다고 한다. [[http://www.khga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570|#]] 스1 역사상 가장 많은 결승 진출(10회)을 이룬 선수인데, 결승전 상대들 라인업이 전부 엄청났다다. '''[[홍진호]]''', '''[[박정석]]''', '''[[조용호(프로게이머)|조용호]]'''(2회), '''[[강민]]''', '''[[최연성]]''', '''[[박태민]]''', '''[[박성준(1986)|박성준]]''', '''[[오영종]]''', --'''[[마재윤]]'''--이다. 저 중에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지 않은 선수는 --'''[[마재윤]]'''--이 유일하며 그것도 커리어가 부족해서가 절대 아니라 [[승부조작]]으로 영구제명되었기 때문에 헌액되지 못했던 것을 감안하면 이윤열의 결승 상대 9명은 전부 레전드급 선수들인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