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원(1962) (문단 편집) === [[이구(1931)|이구]] 사망 이후 === [[2005년]] [[7월 16일]] 슬하에 후손없이 사망한 [[이구(1931)|이구]]의[* 자신이 태어난 [[도쿄]] 구저택이 있었던 아카사카 프린스호텔 신관 객실에 머물다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사후[[양자(가족)|양자]](死後養子)로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으로부터 지명받았다. 그러나 현행 민법상 사후양자 제도[* 직계비속 없이 사망한 사람의 입후를 위하여 배우자, 직계존속 또는 친족회등 선정권자가 양자를 지명할 수 있는 제도로 주로 제사를 잇기 위하여 인정되었다. 조선 [[세종(조선)|세종]] 때 도입되어 대한민국 민법도 1991년까지 사후양자를 법률상 양자로 인정하였다. 그러나 '호주상속'이 '호주승계'로 변경되면서 사후입양은 더 이상 법적 효력을 갖지 않게 되었다.]가 폐지되었기 때문에 법적인 양자 지위는 없다.[* 하지만 명목상이나마 양자로서 [[대한제국/황사|대통(大統)]]을 계승했기에 [[홍유릉]] 내의 회인원 제향에서도 직접 초헌(初獻)하며, 공석에서는 이구를 공식적으로 '아버님'으로 호칭한다.] 양자가 된 이후 황사손(皇嗣孫)[* 황사손의 [[이석|계승을 인정하지 않는 측]]에서는 봉사손(奉祀孫)이라고 칭한다.]으로서 현재 [[조선왕릉]]이나 [[종묘]]에 대한 전반적인 제사/제례를 모두 맡고 있다. [[순종(대한제국)|순종]]과 [[영친왕]]의 후사가 다 끊긴 상황에서, 그들의 유일한 형제인 [[의친왕]]의 손자가 (명목상이나마) 황실 후계자가 되는 것 자체는 적절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왜 9남 [[이해룡|이갑]]의 장남인 이원이 황사손이 되었는지 의문을 가지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서열 상으로 황실 서열 1위인 6남 [[이곤(1919)|이곤]]의 아들 [[이준(1961)|이준]]은 의친왕가의 종손으로 사동궁을 이어야 했기에 그 다음으로 이원이 가장 높았다. 왜냐하면 장남 이건(일본명 [[모모야마 켄이치]])은 일본으로 귀화했고, 의친왕가를 계승한 6남 [[이곤(1919)|이곤]] 외에 2남부터 7남까지는 이미 각각 출계하여 법적으로는 다른 방계 황족의 후사를 이었고(2남 [[이우]], 3남 이방, 4남 이창, 5남 [[이수길|이주]], 7남 [[이해청|이광]]), 8남 이현은 독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명목상이지만 황실 후계자이니만큼 나름 안정적이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위치에 있는 것 역시 중요한 선정 기준이었다. 또한, 2020년 10월에 이원은 〈[[정영진 최욱의 매일매일 불금쇼|정영진, 최욱의 매불쇼]]〉에 출연하여 황사손으로 지명받은 또 다른 이유에 대해 [[https://www.youtube.com/watch?v=yD7wY8-8TaY&t=902s|"이구가 한국어를 잘 못했기 때문에 자신이 영어를 할 수 있는 것도 요인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열과 현실적인 이유를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그가 가장 적합했던 것이다. (명목상) 양자 입적 후 [[삼년상]]을 치렀고, 현재는 조선 왕실의 5대 제향 등에서 초헌관(初獻官)을 일임하고 있다. 본인은 스스로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총재 혹은 명예총재라고 명명하곤 했지만 정작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서는 정관에 총재직을 삭제하였기에 1대 총재 의친왕 이강, 2대 총재 영친왕 이은, 3대 총재 황세손 이구를 끝으로 종약원의 총재 직함은 끝나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원은 계속 스스로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총재 혹은 명예총재라고 지칭하는 경우가 있어 2023년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상임이사회에서 총재 혹은 명예총재라는 단어를 쓰지 말고 황사손만 쓰라고 권고 받기도 하였다. [* 조선 왕실과 단순 전주 이씨의 종친회는 이미 조선시대부터 족보와 제향 모두 분리되어 있었으나 도리어 현재는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에서 [[이화문]](오얏꽃🌸)을 심벌로 사용하고 조선의 5대 제향 및 조선 왕릉 제향 전반을 도맡는다. 더욱이 2000년대 중반 - 2010년대 초반에 황실 숭모 사업을 시도한 민간 단체가 여럿 생기며 황손 가계의 영향력이 강해지자, 오히려 종약원에서는 "황손들을 일반 전주 이씨 방계처럼 의친왕파로 분파시키자!"는 성토까지 있었다. 전주 이씨 종친회인 대동종약원은 일찍부터 왕실에서 분파해 그 후손의 수가 많은 파, 그중 특히 [[효령대군]]파의 입김이 강하다.] 이원은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측에 황사손이라는 직함 대신 황태손 혹은 황태자로 변경해 달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서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원래 전공인 미디어 컨텐츠를 바탕으로 황실 문화를 대중들에게 널리 알릴 목적으로 사단법인 대한황실문화원을 세워 총재를 맡고 있다. 원래는 회사 생활과 황실 의례를 병행하려 했지만 황실의 그 많은 제례 행사와 회사 일을 도저히 같이 하기 힘들어 퇴사했다. 그렇지만 당연히 이런 행사만으로는 밥벌이가 안 되기 때문에 [[생계]]는 여러 [[회사]]의 [[경영컨설팅]](management consulting)을 하며 유지하고 있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01051727135&code=900315|#]] 단, 대동종약원과 [[문화재청]] 등에서 활동비 명목의 예산 자체는 꽤 나온다고. 종묘제례 등 전통의식 수행 외에 황실 관련 문화재 반환 문제 등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기도 했다.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인터뷰 기사 [[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421&aid=0000664573|#1]], [[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421&aid=0000664577|#2]], [[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421&aid=0000664579|#3]]. 이원은 황사손 직위에 오른 이래 [[대한제국 황실 복원]]을 직접적으로 주장하지는 않고 있지만 황실의 문화를 전통이자 문화콘텐츠의 일종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2015년]]부터 개최된 《[[궁중문화축전]]》도 기획했다. 이원 본인이 [[창덕궁]] [[창덕궁 낙선재|낙선재]][* [[순정효황후]]가 1966년까지, [[덕혜옹주]], [[이방자]] 여사가 1989년까지 여기서 거주했다.]에 거주하면서 관광 안내를 하는 방안을 매년 제안했으나 [[문화재청]] 측에게 번번이 거절당했다고 한다.[[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1&aid=0002186217|#]] 이러한 아이디어의 배경은 '살아 있는 궁(宮)'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황실 복원 및 [[입헌군주제]] 관련 정치적으로 민감한 발언은 거의 하지 않았던 이원의 활동 중 꽤나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이것도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 현재 황실 일원이 국익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분야가 있다면 문화재 분야이다. 과거 수탈과 식민지 시절 수탈된 문화재 환수 작업은 문화재청에서도 고심하고 있는 사안이나 예산 문제로 환수가 쉽지만은 않다.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와 같은 민간기업들도 힘을 보태주며 몇몇 문화재를 국내로 가져올 순 있었는데, 황실 일원에게 이와 같은 역할을 부여하면, 최소한 황실 문화재와 관련해선 다시 돌려달라고 말하는 것에 보다 설득력이 붙을게 되는 것. 실제로 본인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어, "일본 내 일부 기관들은 시민단체 소속 신분으로는 유물을 관람하는 것조차 불가능할 때가 있다. 그럴 때 황사손으로서 직계 조상들의 유물을 보러 왔다고 말하면 적어도 실체는 확인할 수 있어 환수 활동에 도움을 받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특사 혹은 홍보대사 자격으로 임명한다면 정부 휘하에서 움직이는 일원이기에 왕정복고 등에 대한 비판도 어느 정도는 무마할 수 있을 것이다. 이원 본인도 자신은 민주국가 대한민국의 민주 시민의 권리와 의무만 가지지 왕정복고는 추호도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공자]]의 직계 후손인 [[연성공]]도 현재는 대성지성선사봉사관이라는 장관급의 무보수 명예직으로 바뀌어 공자의 후손으로서의 특권은 전혀 없이 [[중화민국]]의 일반 국민의 신분에 불과한 상황이다. 대한제국 황사손 역시 이런 지위와 비슷하게 되어 일종의 인간문화재 같은 기능만 하도록 하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