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웅희(축구선수) (문단 편집) ==== [[FC 서울/2014년]] ==== 월드컵 브레이크 시점까지는 주야장천 베스트 11만 돌려 쓰던 [[최용수]] 감독의 성향과[* [[베스트 일레븐]]에 대한 집착이 너무 심해서 기껏 다른 팀에서 선수 데려와 놓고도 제대로 안 쓰는 걸로 유명했다. 대표적인 피해자가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맹활약했음에도 서울에선 아무런 기회도 한번 못받고 벤치만 달궈야 했던 이재권. 14시즌 스스로 문제점을 인정하며 한 발언에 의하면 그동안은 후보 선수들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다고 한다.] 갑작스런 쓰리백 전환에 따른 혼란과 부진으로 벤치를 달궜고, 가끔 [[김진규(1985)|김진규]], [[오스마르 바르바|오스마르]], [[김주영(1988)|김주영]] 중 한명이 빠질 때에나 대타로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 14년 7월 9일 포항전에서 경고 누적으로 결장한 김주영 대신 출전해 탄탄한 수비력을 보이며 단숨에 치고 올라갔다. 마침 최용수 감독이 고집을 버리고 후보 선수들에게 기회를 부여하고 로테이션을 운용하기 시작하는 중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본인도 제대로 PR에 성공했고, 월드컵 브레이크 이후 정비되기 시작한 서울의 쓰리백의 주전 수비수로 발돋움했다. 월드컵 브레이크 이후 [[전남 드래곤즈]] 전에서 서울의 수비형 미드필더 였던 [[최현태]]가 부상을 당하자, [[최용수]] 감독은 강승조와 [[이상협(1990)|이상협]]을 최현태의 백업으로 쓰는 대신, 왼쪽 센터백을 보던 오스마르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올리고, 오른쪽 주전 센터백이던 김주영을 왼쪽으로 돌리고, 이웅희를 오른쪽 주전 센터백으로 기용했다.[* 즉, 최현태 부상 이전에는 서울의 3백이 오스마르-김진규-김주영 형태였으나, 최현태 부상 이후 김주영-김진규-이웅희로 굳어지면서 오스마르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올라갔다.] 이는 결국 오스마르와 이웅희 모두에게 서울의 에이스로 거듭나는 기회를 제공한 최용수의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이후 최현태가 부상에서 회복된 후에도 이웅희는 주전 자리를 확고히 굳혔다. 월드컵 휴식기 이후 서울의 주전 수비진을 살펴보면 [[김주영(1988)|김주영]]-[[김진규(1985)|김진규]]-이웅희가 쓰리백을 형성했는데, 주장 김진규는 노련하고 몸싸움과 롱패스를 활용한 볼배급에 강점을 보이는 대신 발이 느려서 빠르고 무게중심을 잘 활용하는 선수들에겐 약세를 보인다. 발빠르고 유연성 좋았던 레전드 수비수 [[아디(축구인)|아디]]의 은퇴로 이 약점이 크게 불거질수 있었는데, 그 여백을 100m를 11초대로 끊는 두 준족 수비수 김주영, 이웅희가 잘 메워주웠다. 동시에 이웅희의 주전 합류로 수비형 미드필더와 센터백을 모두 소화할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 오스마르를 전진 배치시켜 중원의 1차 저지선 역할을 수행케 하면서 미들진도 두터워졌다. 물론 2-2 무승부를 기록한 울산전에서 커버링 미스로 만회골을 허용한것 같이 실수가 없진 않았지만 전반적으로는 2014시즌 서울 최고의 영입이라 할 만하다.[* 같이 영입한 강승조는 플레이메이커를 원한 최용수 감독의 의중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패스 미스만 남발해 완전히 망한 영입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