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웅(성한) (문단 편집) === 대성(大成) 건국 === 304년, 제장과 신하들이 이웅에게 즉위할 것을 청했다. 이에 이웅은 성도왕을 칭하여 경내 범죄자들을 사면한 뒤, 진나라 법을 전부 폐기하고 약법 7장을 발표하였다. 숙부 이양은 태부, 맏형 이시는 태보에 임명했으며, 절충장군 이리는 태위, 건위장군 이운(李雲)은 사도, 익군장군 이황(李璜)은 사공, 재관 이국은 태재로 삼았다. 그리고 [[이호(삼국지)|이호]]를 포함한 그의 조상들을 모두 공과 왕으로 추존했다. 성도왕에 오르고 나서도 이웅은 전과 같이 이리와 이국 등 신하들의 자문에 귀 기울이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306년 3월, 범장생이 마침내 서산에서 성도로 와 이웅에게 귀부했다. 이웅은 범장생이 온다는 말을 듣고 친히 마중 나와 영접했으며, 그를 승상으로 모시고 범현(范賢)이라 칭하였다. 동년 6월, 범장생의 권유에 따라 이웅이 [[칭제]]하고 국호를 대성(大成)으로 정했으며 다시 안평으로 연호를 고쳤다. 아버지를 경황제, 묘호는 시조(始祖)로 추존하고 어머니 나씨를 태후로 모셨다. 범장생은 천지태사(天地太師), 서산후(西山侯)에 봉하고 그 부곡들의 군역을 전부 면제시켜 주었다. 당시 성나라는 건국 초라 법과 의례가 미비하여 제장들이 서로 자신의 공을 다투었다. 그러자 상서령 염식(閻式)이 상소하였다. > 무릇 국가를 다스리기 위한 법과 기율을 제정할 땐, 과거의 제도들을 따르는 것이 좋습니다. [[한나라]]와 [[진(영성)|진나라]] 의 경우, 태위와 대사마만이 병권을 다루고, 태부와 태보는 임금의 부형(父兄)과 같은 벼슬로 도의(道義)를 논하고, 사도와 사공은 전국에 오교[* 오교(五敎)란 [[유학(학문)|유학]]에서 말하는 오륜(五倫)을 뜻한다.]를 바로 세우는 일을 처리하였습니다. 또, 진나라는 승상을 두어 각종 정무를 통괄하였고, [[한무제]] 말기에는 이례적으로 대장군이 정무를 통괄하게 하였습니다. 현재 나라가 막 세워지고 만사가 주도면밀하지 못하여 여러 공신들이 서로 다투어 관직 설치를 청하고 있는데,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과거의 전장(典章)과 부합하지 않으니, 마땅히 과거의 모범이 되는 법식(法式)을 세워 이들을 바로 잡아야합니다. 이웅이 이를 듣고 [[한나라]], [[진(영성)|진나라]]의 선례에 따른 백관제도를 설치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