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웅(성한) (문단 편집) === 계승 전 === 《진서》에서 이웅은 키가 [[http://61.157.227.58/Details/DZBWHDetail?dbCode=BWHYZYJ&&sysID=286|8척 3촌]][* 당시 척인 23.7cm로 계산하면 197cm가 나온다.]에 크고 용모가 준수했다고 전한다. 강렬한 인상으로 고향에서 이름을 떨쳤고 식견 있는 선비들이 그에게 관심을 가졌다. 유화(劉化)라는 도사가 어린 이웅의 모습을 보고 "훗날 관농의 선비들이 모두 남쪽으로 향하게 될 진데, 이씨 집안의 아들 중 중준(仲俊)만이 풍채가 비범하여 그들의 주인이 될 것이다."라는 예언을 남겼다. 이후 제만년의 난을 피해 촉 땅으로 이동한 이웅은 독자적인 세력권을 구축한 아버지 [[이특(성한)|이특]]과 숙부 [[이류]] 밑에서 전장군에 임명되어 그들을 보좌했다. 303년, 아버지 이특과 숙부 이보, 이원이 [[나상]]에게 죽었고, 사실상 큰형 노릇을 하던 이탕도 전쟁에서 입은 상처가 덧나 사망했다. 이특, 이탕 부자가 전사한 마당에 [[서진|서진(西晉)]]의 형주군이 덕양을 점령하니 형세가 매우 위급하였다. 이특의 뒤를 이은 숙부 이류는 진나라가 두려워 매제 이함의 투항 권유를 따르기로 하고, 5월에 인질들을 보내 투항하기로 했다. 이웅은 결연히 반대하며 재동태수 이리와 함께 형주군의 선봉인 손부를 패퇴시키는 공을 세웠다. 때마침 토벌군의 사령관인 종대마저 병사하여 형주군은 퇴각하였다. 이 전투 이후 이류는 이웅에게 병권을 주었고, 6월에 이웅은 성도 인근 비성을 점령하여 성도성을 압박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