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운재 (문단 편집) ==== [[수원 삼성 블루윙즈]] (1996~2011) ==== [[파일:suwonsbwoonjae.jpg]]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창단 멤버로 2011년 [[전남 드래곤즈]]로 이적하기 전까지 15년 가까이 수원의 골문을 지켜온 레전드. 수원의 K리그 우승 4번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이운재가 떠난 이후 수원은 K리그 우승을 한번도 하지 못했다.] K리그 역대 선수들 중 가장 많은 트로피를 든 선수이며 국가대표 132경기 출전은 전 세계 현역 골키퍼 A매치 출전 순위 '''4위'''를 기록하고 있다.[* 1위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전설적인 골리 [[모하메드 알 데아예아]]의 178경기. 2위는 [[잔루이지 부폰]]의 176경기, 3위는 [[이케르 카시야스]]의 167경기이다.] 1996, 1997 시즌에는 [[간염]]에 걸려 고생을 많이 했는데 이 때문에 박철우와 번갈아가며 출전하여 각각 12경기와 7경기밖에 나오지 못하였다.[* 여기에 1996 시즌 수원은 당시 불었던 외국인 골키퍼 영입 열풍에 맞춰 헨릭이라는 골키퍼를 데려 왔었다. 한 시즌도 다 활용하지 않고 내보냈지만.] 1998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주전 골리로 나서며 18경기에 출전하였고 수원의 사상 첫 리그 우승에 공헌하였다. 이어진 1999시즌에도 총 27경기에 출전하며 팀의 두 시즌 연속 K리그 우승과 아디다스컵, 대한 화재컵 우승에 크게 기여하였다. 특히 5월 16일 천안 일화와의 대한 화재컵 4강전 승부차기에서 선방을 하며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다. 이와 같은 활약들로 1999 시즌 K리그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이후 이운재는 군입대를 하여 2000년부터 상무 축구단 소속으로 경기에 나섰다. 2002년 3월 4일 전역하자마자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을 대비하는 [[히딩크호|대표팀]] 합숙 훈련에 발탁되어 2002 월드컵이 끝난 2002시즌 중반에야 수원으로 복귀했다. 2002 잔여 시즌동안 23경기에 출전하여 FA컵 우승에 공헌하는 등의 활약으로 K리그 시즌 베스트 11에 선정되었으며 스페인에서 이적 제의가 왔었지만 조건도 안 좋고 그냥 남아있는 것이 나을 것 같아 거절했다고 한다. 그 후 수원의 전성기를 이끌며 최정상급 활약을 하다 2008년에 골키퍼로는 전무후무한 '''K리그 MVP'''를 수상하며 커리어 하이를 찍는 등 찬란한 선수 생활을 보냈다.[* 이 시즌에 리그에서 세운 기록은 39경기 29실점인데, 이는 무려 '''실점율 0.74'''에 해당하는 어마무시한 기록이다.] 하지만 2010년부터 4월 4일에 열린 서울전에선 8분동안 내리 3점이나 실점하는 삽질을 하는 등 좋지 못한 폼을 보이며 5월 1일 기준 '''시즌 8경기 22실점'''이라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부진을 보여주었고 이로 인해 국대 및 수원 주전 골키퍼 교체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후 국가대표에서는 물러났고 소속 구단에서도 슬슬 은퇴를 생각해봐야 할 나이(38세 만 37세)라 물러난 후를 준비하고 있는 듯했다. 당시 기사에 의하면 본인은 팀에 남아 코치가 되는 걸 바라고 있으며 농구 선수 출신이던 --[[강동희]]-- 감독[* 교회에서 만나 친해졌다고 한다.]과 함께 음식점에 투자했다고 한다. 이후 분당 정자동에 퓨전 음식점을 냈지만 2012년 기준으로 폐점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