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오덕(아동문학가) (문단 편집) === [[김지하]] 제명 관련 === [[김지하]]가 [[1991년]]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는 칼럼을 통해 [[1991년 연쇄 분신 파동]]을 비판했다. 이 여파로 김지하는 민족문화작가회의에서 제명당했다. 당시 [[이창동]]은 개인의 주장을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로 제명을 비판했으나, 이오덕은 김지하가 본색을 드러냈다면서 김지하를 변절자라고 했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2565526|관련 기사]]) 참고로 제명 결정을 내린 사람은 [[고은]]이었다. 비록 애초 명분이 [[강경대]]의 억울한 죽음에 항의하기 위한 것이었다고는 하지만, 분신으로 무려 9명이 목숨을 잃었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들도 연쇄 자살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통적인 기준으로 보아도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충효 사상이 뿌리 깊었던 당시의 한국에서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높이 평가해도, 부모보다 먼저 죽는 것은 불효로 여겼다. 그런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버린다는 것은 적과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하거나, 나라가 망한 상황에서나 인정되는 것으로, 살아서 정권을 비판하지 않고 목숨을 버린다는 것은 당시 기준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사고방식이었다. 그래서 김지하를 문단에서 제명한 것을 지나친 처사라고 받아들인 경우가 있었다. 반면에 김지하의 실제 의향이 어떠했듯 김지하의 글은 다른 언론도 아닌 [[조선일보]]에 실린 채 민주화 운동의 기세를 꺾으며 [[노태우 정부]]의 지지율이 상승하는데 큰 도움이 된 것이 사실이라서 민주화 운동 세력으로서는 쉽게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이렇게 김지하 제명은 관점에 따라 찬반이 첨예하게 갈린 사건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