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예춘 (문단 편집) == 말년과 임종에 대한 후일담 == 1968년부터 고혈압을 앓고 있었지만 아들의 사고로 인해 급속도로 악화되었다고 하는데, 자세한 것은 아들인 [[이덕화]] 항목 참조. [[무릎팍도사]]에서 이덕화의 회고에 의하면 무뚝뚝하면서도 아들과 가족을 많이 사랑하는 아버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투병 중에도 아들이 병문안을 오면 번거롭게 왜 찾아왔냐고 퉁명스레 쏘아붙였다는데, 사실은 그 전날 밤새다시피 옷을 정갈하게 차려입고 아들을 기다렸다고 한다. 또한 사망 당시 사고를 당한 아들과 같은 병원에 입원했는데, 아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문득 자러가야 겠다는 말과 함께 헤어졌는데 그날 밤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아빠를 부탁해]] 28화에서 이덕화가 아버지에 대해 더 자세히 이야기하였다. 이덕화가 당시 오토바이 사고로 인해 병상에서 꼼짝도 못하던 자신을 대신해 영화배우협회에서 협회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묘도 만들어 주었다고 하였다. 워낙 심한 부상을 입었던 나머지 이덕화는 몇 년 후에나 몸이 회복되어 아버지 산소에 방문할 수 있었다고 한다.(당시 이덕화는 사고 후 회복과 재활이 끝나는데까지 3년 이상이 걸렸다고 한다.) 말년에는 건강이 좋지 않아 화천댐의 [[파로호]][* 방송에선 중국 눈치를 봤는지 '파라호'로 언급되었다.]에서 휴양을 했다고 한다. 이미 몸이 많이 불편한 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들이 문안차 방문하면 흙을 깎아 좌석을 만들고 밑밥도 단단히 뿌려두는 등 아주 좋은 낚시터를 만들고 기다렸다고 하며, 밤새 낚시하는 아들에게 커피를 챙겨주는게 낯간지러워서 호수에 방문한 낚시꾼들에게 커피를 다 준다는 핑계를 댄 다음, 기어이 다른 사람들에게 다 주고 난 후에 와서 '이거 조금 남았는데 너 마셔라.' 하는 식으로 줬다고 한다. 임종 당시의 상황도 언급되었는데, 당시 이덕화가 입원한 옆 병실에 이예춘이 입원하였는데, 한밤중에 어머니가 이덕화에게 와서 아버지가 이상하다고 이야기 했다 한다. 당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이덕화가 간신히 벽에 기대서 아버지의 병실로 갔고, 침대를 끌어내어 당직 의사가 있는 4층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탔는데,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덕화의 손을 잡은 채 사망했다고 한다.''' 자신의 사고로 인해 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되었기 때문에 이덕화는 아버지에게 항상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덕화는 방송이나 언론인터뷰 중 부친에 대한 회고를 했던 경우들에서 항상 우리 아버지는 환갑도 못 사셨다는 말을 많이 하면서, 자신이 아니었다면 건강이 안 좋았어도 환갑까지는 넘기셨을 거라는 말을 하곤 했다. 부친이 환갑을 못 넘긴 것에 대한 한이 큰 것으로 보인다. [각주] [[분류:한국 남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연안 이씨]][[분류:1919년 출생]][[분류:1955년 데뷔]][[분류:1977년 사망]][[분류:뇌혈관질환으로 죽은 인물]][[분류:배재고등학교 출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