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영훈(목사) (문단 편집) == 생애 == 할아버지가 북쪽에서 크게 사업을 하였는데 한국전쟁 시기에 종교를 지키고자 기반을 버리고 온 가족이 월남하였다. 당시 월남한 사람들은 [[영락교회]] 또는 [[충현교회]]로 가서 도움을 요청했다. 이영훈 목사의 가족도 다른 월남한 사람들과 같이 영락교회 앞마당에 천막을 치고 한 달간 생활하였다. 장로회 집안이므로 가족이 충현교회에 출석하였다. 할아버지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기도를 드렸는데 새벽기도는 [[새문안교회]]로 다녔다. 그러다 아픈 무릎 때문에 가까운 교회들로 새벽기도를 다녔다. 어느날 할아버지가 성령이 충만하고 말씀이 은혜로운 젊은 목사를 만났다며 온 가족이 순복음교회로 옮긴다고 선언했다. 이 젊은 목사는 아직 결혼도 하기 전인 [[조용기]] 목사이다. 당시에는 할아버지의 말이 권위가 있었기 때문에 온 가족이 다음주부터 순복음교회로 옮겼다. 이영훈 목사가 국민학생 때 일이다. 충현교회에서 조용하게 예배드리다가 처음 순복음교회에 간 날 예배 분위기가 달라서 깜짝 놀랐다. 조용기 목사의 말이 빨라서 "셔, 셔, 셔"로 들렸다. 초등학생 때부터 조용기 목사가 진행하는 주일 학교에 출석하였다. 학생 때 작은아버지께서 토요일마다 성경 퀴즈를 내고 맞추면 상금을 주었기 때문에 상금을 받으려고 일주일 내내 성경을 읽었다. 중학생 때 성령 체험을 하고 5년간 기도할 때마다 눈물이 나오는 경험을 하였다. 4대째 장로회에 출석한 집안이고 어머니 집안도 모두 목사, 장로라서 자연스럽게 목사가 되었다. 워낙 오랫동안 순복음교회에 출석하였고 아버지가 여의도순복음교회 장로회 회장을 역임하였을 정도이기 때문에 압도적인 지지로 여의도순복음교회 2대 담임목사로 선출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