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연걸 (문단 편집) === 1990년대 초: 서극과의 만남 및 배우로서의 대성공 === 그러다가 1991년 홍콩의 명제작자인 [[서극]]과 정소동을 만나며 재기한다. 이후로 서극의 영화에 계속 출연하게 되는데, 서극이 제작과 감독을 겸직한 《[[황비홍]]》이 히트를 치며 이연걸은 다시 한 번 흥행아이콘으로 떠오른다. 이연걸의 외모나 연기가 황비홍이라는 캐릭터속에 너무나 잘 녹아들었으며 황비홍 1편과 2편은 그를 중화권 액션스타로 만들어주는데 모자람이 없었다.[* 이연걸이 서극과 함께 작업한 첫 영화는 1989년작인 <용행천하(龍行天下)>다. 미국에서 촬영하였으며 여담으로 극중 나오는 한약방 상호가 황비홍에 나왔던 그 '보지림'이다. <황비홍> 시리즈와 직접적인 연관이 1도 없는 작품이지만 <황비홍>이 흥행에 크게 성공하면서 92년에 <용행천하>라는 제목 앞에 '황비홍 92'라는 어이없는 부제가 첨부되어 극장에서 개봉했다.] 서극과 정소동은 거칠고 날렵한 액션만을 구사하던 이연걸을 화려하고 우아한 동작을 구사하는 무협소설속 무림고수의 이미지로 재탄생시켰다. 때마침 김용과 고룡등의 '신무협'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홍콩 무협영화들이 인기를 끌고, 이 무렵부터 이연걸의 인지도가 올라가며, 국내에서도 성룡의 인기를 서서히 따라잡게 된다. 이소룡이 길거리 싸움을 보는 듯한 액션을, 성룡이 코믹하고 기발한 액션을 선보였다면, 이연걸은 무협소설에서나 등장하던 무공의 초식들을 멋지게 시전하는 무림고수를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앞의 두 사람과는 달리 이연걸은 배우 이전에 어린 시절부터 배운 전통무술의 동작들을 정확하게 구사하는 능력을 갖추었기에 무술의 예술적인 표현이라는 점에서는 이보다 완벽한 인물도 없었을 것이다.[* 이연걸의 등장 이후로 실전을 치르는 듯한 거친 액션이 아닌, 예술적으로 무술을 표현하는 배우들이 영화계에 많이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양자경]], [[장쯔이]], [[견자단]], 우영광 등이 있다.] 이후 서극과 정소동이 제작한《[[동방불패]]》로 확고한 이미지를 구축했고, 왕정 감독의 소림오조에서는 냉정한 무사역할을 잘 소화해 냈으며, 원규 감독의 코믹액션 [[방세옥]] 시리즈, [[정무문]], [[태극권]] 등과 현대 액션물인《보디가드》등으로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와 같은 연속적인 성공으로 이연걸은 홍콩 영화계에서 이소룡과 성룡의 계보를 잇는 중화권의 대표적인 액션스타로 등극하게 된다. 다만 이 당시 매년 2~3편 이상의 다작을 했고 과격한 액션장면이 많은 작품들에 연속적으로 캐스팅되어 활동하다 보니 몸이 성할 날이 없었고 훗날 신체적으로 부상후유증을 겪게 된다. 황비홍 1편에서는 찻집에서 사하파 악당들과 싸우는 장면을 찍다가 큰 부상을 당했고, 정소동 감독의 모험왕을 찍을 때는 발목뼈가 부서지는 중상을 입었다고 한다. 인력풀이 비교적 좁고 위험천만한 액션장면들이 난무하는 홍콩 영화계의 특성상 스타급 배우라도 쉬지 않고 여러 편의 영화에 출연하다보니 부상후유증이 심한 편이다. 이런 면에서 데뷔 이후 꾸준한 몸 관리로 최상의 몸상태를 유지하며 활동했던 [[견자단]] 같은 경우는 홍콩 영화계 내에서도 매우 드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홍콩은 아니지만 역시 날렵하고 우아한 액션으로 이름난 여배우 [[유역비]]도 시대극에 출연하면서 잦은 와이어 연기로 인해 만성적인 요통을 겪고 있다고 한다. 1990년대 초중반은 [[홍콩영화]]의 전반적인 침체기로 성룡과 주윤발로 대표되는 기존 배우들은 침체기에 있었지만 이연걸은 그 와중에도 홍콩 및 중화권의 확고한 액션스타로 자리잡았으며 이를 밑천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