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싸빅 (문단 편집) == 클럽 == 크로아티아 리그의 NK자그레브라는 명문 구단에서 커리어를 시작하여 1996년 올림픽 대표로 선발되어 올림픽에 출전하기도 한 선수로, 1998년 싸빅이라는 등록명으로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하여 비슷한 시기에 전남의 벽으로 버티고 있던 [[마시엘]]과 비교되기도 했고, [[동유럽]] 선수로서 꽤나 유명했던 [[사샤 드라쿨리치|샤샤]]나 [[라디보예 마니치|마니치]]등의 선수와 비교되며 뛰어난 선수로 인정받았다. 그러던 와중 2003년에 당시 K리그에서 [[풋볼 매니저|FM]] 놀이를 하던 [[성남 일화 천마]]에 이적하게 되었다. 즉시전력의 선수를 필요로 하여 데려간 만큼 성남에서도 꾸준히 좋은 활약을 해줬으며, 이때 전 수원 선수이자 성남에 입단한 [[데니스(축구)|데니스]]와 함께 한국 귀화시험을 보게 되었다. 한국 내 활동경력(5년) 및 한국어 시험, 한국사 시험 등을 모두 통과하여 무난하게 [[한국인]]이 되었으며 이 때 이씨 성을 선택한 이유는 당시 자신의 에이전트였던 이영중 씨의 이름에서 따게 되었다고 한다. 2004년 성남의 팀 사정으로 잠시 스트라이커로 뛰기도 했다. 키가 커서 포스트 플레이로 볼을 떨궈주는 역할을 주로 맡았다. 이 때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인도네시아 팀인 [[페르식 케디리]]와의 경기에 출전, 4골을 몰아 넣으며 충격과 공포를 선사하기도 했다(...) [[차경복]] 감독의 말로는 포스트 플레이만큼은 [[사샤 드라쿨리치|샤샤]]보다 좋았다고... 올림픽 대표팀 경력만 있고 국가대표팀 출전 기록은 없어 한국 국가대표로 출전할 수도 있었지만, 귀화 당시 32세의 나이 및 국민 정서가 걸림돌이 되어 결국 한국 대표팀 출전은 무위로 돌아갔다. 당시 조 본프레레 감독이 진지하게 고려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아쉬울 수밖에 없는 점. 2005년에 성남에서 자유계약으로 풀린 이후에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하게 된다. 나이가 30줄을 훌쩍 넘겨 수비력 및 스피드가 전성기보다 다소 떨어진 상태였기에 마토와 곽희주에 이은 No.3 수비수 정도의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불평없이 성실하게 훈련에 임하며 같은 국적의 수비수 [[마토 네레틀랴크|마토]]의 적응을 성심성의껏 도와 팀에 보탬이 되었다. 한국어에 익숙하고 비슷한 연배에 비슷한 경험을 겪은[* 마토, 이싸빅 모두 유스 시절에는 [[유고슬라비아 내전|유고 내전]]이 한참 벌어져서 유고 선수들은 가능한한 해외로 나가려는 분위기였다.] 마토와는 금방 친해져 그가 첫 시즌만에 '통곡의 벽'으로 군림하게 된 데 큰 공헌을 했다. 경기 끝나고 마토가 인터뷰를 하게 되면 통역 대신 이싸빅이 옆에 와서 통역을 해주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