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승철 (문단 편집) == 기타 == 의외라면 의외로, 이승철의 [[대신고등학교(서울)|대신고]] 1년 선배인 [[이태윤]] 말에 의하면 대신고 시절 [[별명]]이 "대신고 댄싱머신" 이었다고 한다. 젊은 시절 높은 인기에 힘입어 1992년 '''[[박찬욱]] 감독의 데뷔작'''인 [[달은… 해가 꾸는 꿈]]이라는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는 감독의 의사와 관계없이 '당대 인기있는 (지금으로 치면 일종의 아이돌) 스타를 주연으로 해야 영화가 흥행할 것'이라는 제작사의 입김이 들어간 캐스팅이었고[* 당시에는 이런 사례가 꽤 많았다. 특히 히트곡과 동명의 영화가 제작될 경우가 그랬는데 전문적으로 연기를 배우지 않았음에도 히트곡을 부른 가수가 캐스팅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또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아이돌 스타를 캐스팅해야 더 많은 관객을 끌어모을 수 있다는 판단도 이 배경에 들어간다.] 박찬욱 감독의 자서전 등에 따르면 이승철이 열의는 있었는데, 워낙에 스케줄이 바쁘다 보니 촬영장에 오긴 왔는데 그 날 뭘 찍는지는 모르고 왔다고 하며 그나마도 목소리는 다른 사람이 후시녹음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성우로 후시녹음하는게 일상적이었다. 정확히는 동시녹음으로 전환기에 있었는데 이 영화는 워낙 저예산이라 후시녹음이 된 듯.][* 본인은 이 후시녹음에 대해서 다소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기도했다. 후에 영화가 잘 안 된 이유 중 하나로 후시녹음을 해서 그런 것 같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영화는 쫄딱 망했다.[* 다만 이 작품은 흥행과는 상관없이 당시 한국 영화로서는 새로운 시도를 한 작품이기도 하며 20대 초반이었던 [[류승완]] 감독이 이 영화를 보고 반해 박찬욱의 제자로 들어가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승철에 말에 의하면 첫 날에는 상당히 흥했다고 한다. 극장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고 한다.] 박 감독 본인도 흑역사로 생각하는지 모 인터뷰에서 시간만 되면 이 영화 비디오를 전부 다 없애버리고 싶을 정도라고 농담 삼아 말한 적이 있다. 작사, 작곡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싱어송라이터는 아니지만, 신인 작곡가들을 기용하면서 대중의 트렌드를 꾸준히 쫓아간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인연'처럼 본인이 직접 작사한 곡도 있긴 하다. 그리고 하단 별도 목록에 보이듯 [[표절]] 관련 문제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과거 [[싸이월드]]가 유행할 때, 방명록에 댓글을 일일이 달아주는 편이었다. 심지어 민감한 부분을 건드려도 '허허' 웃거나, 맞대응해줬다. 귀찮지 않냐는 물음에 투데이 두자릿수 찍는 것보다는 낫다고 답했는데, 이에 사람들은 '''멘탈甲 승철신'''이라는 별명을 선사했다. 이승철 노래의 특징이 듣기엔 편안해보여 부르기 쉬울 거 같은데, 정작 불러보면 목 막히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이승철이란 이름에 대비하여 '''저승철'''이라는 별명도 일각에선 쓰인다. [[이수만]]과도 친분이 있으며 이승철의 노래 소녀시대를 그 노래와 이름을 이수만이 빌려가서 [[소녀시대|걸그룹]]을 만들고 그 걸그룹이 [[소녀시대(동음이의어)|그 노래를 리메이크]]하도록 해줬다. 2006년 12월 16일 [[무한도전]]에서 [[박명수]]와 [[유재석]]이 이승철에게 전화를 많이 못 하는 이유로 '''"어? 어어어...그래...어어어..."'''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질문이 이어져야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는데 대답만 간단히 해 무안해진다고 한다. 나가수 발언으로 욕을 먹긴 했지만, [[임재범]]이 한창 [[나가수]]에서 활약할 때 디씨에선 '임재범vs이승철'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8~90년대에 1~20대들이 할만한 논쟁을 21세기에 네티즌들이 다시 한 셈이다. 알고보면 일전부터 [[기부]] 등 금전적 선행을 꾸준히 한 편이다. 아프리카 지역의 학교 설립에 30억을 쾌척하기도 했고, 100여명의 심장 질환병이 있는 아이들을 돕기도 했다. 보통 인기를 얻고 어느 정도 지위가 쌓이면 방송 활동을 접고 콘서트에만 집중하는 많은 가수들과 달리, 워낙 수다떨기를 좋아해서인지(...) 젊은 시절부터 상대적으로 방송이나 예능 출연이 잦은 편이다. 2016년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서 밝히길 청취률 순위 1~20위권 라디오 방송을 전부 꿰고 있으며 '일기장' 홍보를 위해 모두 출연할 예정이라고 한다. 실제로 전부 나가진 않았지만 [[두시탈출 컬투쇼]], [[배철수의 음악캠프]] 같은 인기 방송은 물론이고 [[김현정의 뉴스쇼]] 같은 아침 뉴스까지 다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초창기 시절 자신의 보컬을 부끄러워하는 듯한 발언을 방송에서 몇 차례 하기도 했다. 누군가를 따라하기만 하던 시절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카더라]] 통신에 의하면 당시 이승철은 데이비드 커버데일을 동경해 딥 퍼플 곡을 자주 커버했고, 부활 오디션도 딥 퍼플의 solider of fortune으로 봤다...고 하지만 상술되어있듯 사실 처음 부른 노래는 다른 한국 노래였다고 한다. 김태원은 그에게서 [[김수철(가수)|김수철]]의 비브라토를 느꼈다고 평하기도. 하지만 데이비드 커버데일을 동경했던건 사실이라 솔로 활동 당시에도 방송에서 화이트 스네이크의 곡을 커버하기도 했다.] 1집 수록곡인 '인형의 부활'도 본인이 듣기엔 부끄러웠는지 수줍어하는 모습을 한 연예 정보 프로그램에서 보이기도 했는데 '태원이형이 목 긁고 기합 좀 넣고 그러면서 불러보라고 자꾸 시켜서 막 악써서 불렀던 곡이었어요'라고 하기도 했다. 실제 이승철은 데뷔 초만 해도 자기가 노래 못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이건 장르때문에 실제로 그렇게 느낄 수도 있는 부분이다. 이승철이 언더그라운드에서 밴드 생활을 하던 때는 시나위와 백두산 등을 위시한 강한 사운드를 중심으로 하는 록음악이 유행하던 시기이고, 이 시기의 걸출한 보컬인 김종서나 임재범 같은 보컬들은 이런 강렬한 사운드 사이에서도 무시무시한 성량과 샤우팅을 자랑하며 그 명성을 드높이던 때였다. 이승철은 특유의 배음으로 인한 세밀한 감정표현과 완급조절을 건국 역사상 가장 잘하는 보컬인데, 이런 보컬은 당대 록음악에는 별로 맞는 스타일이 아니다. 20대 초반의 어린 이승철이 강한 사운드의 록음악만을 하며, 상대적으로 샤우팅 창법에 능한 보컬들과 자신을 비교하다보면 자신이 노래를 못한다고 느끼는 것도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 물론 이후 조용필이 이승철을 극찬했듯 솔로로 전향하자마자 그는 김종서나 임재범보다 훨씬 대중들에게 널리 어필하며 국민가수가 되었다.][* 여기에 이승철의 부활 활동 초기에는 김태원이 밴드의 리더로서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고, 김태원의 성격상 보컬리스트들에게 완벽을 요구하며 철저한 퀄리티의 녹음을 위해 말 그대로 가스라이팅에 가까운 혹사를 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김태원이 만족할 때까지 수십 수백 번이나 노래를 새로 불러가며 지적을 당한다면 자신이 노래를 잘 하는 것이 맞는가 하는 의구심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앞서 김종서나 임재범 같은 당대의 걸출한 보컬들과 자신을 비교하는데다 아직 어리고 독선적이었던 김태원의 기에 눌리기까지 했다면 건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도 저런 생각을 해도 이상하지 않다. 물론 1집의 대성공 이후 곧바로 자신이 노래를 얼마나 잘 하는지 깨달았을 것이 뻔하지만.] 1990년대 당시 최고의 인기를 달리던 탤런트 [[강문영]]과 결혼해서 스타부부로 인기를 얻었지만 얼마 못 가 [[이혼]]했다. 이후 강문영은 한 잡지 인터뷰에서 '그는 나와 결혼하였지만 사실 이미 음악과 결혼한 상태였다.'는 발언을 했다. 이승철의 가정에 대한 무관심을 표현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후 이승철은 재혼해 지금도 잘 살고 있지만, 강문영은 안타깝게도 다른 남자와 또 이혼해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나는 가수다]]가 처음 방영될 때 부정적인 의견을 비췄으나, 입장을 바꿔서 "나가고 싶다"라고 언급을 하였다가 다시 입장을 바꿔서 "노래자랑질"하고 싶지 않다고 언급했다. 당연히 대폭 까였다. 본인이 말하기를 25년 음악 인생을 그런 콘테스트에 나가서 테스트 받고 싶지는 않다고. 이걸 두고 [[슈퍼스타K]]의 심사위원으로서 다른 사람의 음악 인생을 평가하는 입장에 있는 게 모순이 아니냐는 견해도 있지만 전문성을 지닌 음악인으로서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것과 나가수의 청중평가단 시스템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일부에선 대중 음악가로서 이승철은 대중들에 의해 평가가 결정되는 운명을 갖고 있으며 그런 대중의 평가를 불신하는 것이 오만하다고 비판하기도 했지만, 가수들을 일렬로 경연시킨 뒤에 청중들의 일시적인 호오의 감정에 따라서 탈락자를 추려내 망신을 주는 나는 가수다의 시스템이 누군가의 대중 음악가로서의 성과를 반영할 수 있는 잣대가 될 수 있느냐에 대한 의문과 함께, 차라리 이승철이 지금까지 낸 [[히트곡]]의 숫자를 세어보는 게 더 정확한 평가가 될 것이다라고 반박하는 의견도 있었다. 다만 이승철은 그런 걸 떠나서 말 바꾸기 때문에 비판받은 측면도 있었다. [[와인]] 애호가다. 2016년 [[마리텔]]의 김구라 와인 편에 나와 말한 바에 의하면 1990년대쯤부터 마시기 시작했는데, 이때만 해도 와인 가격이 물가 대비 워낙 비싼 편이라 "꼴값 떤다, 재수없다"는 인식이 좀 있었는데 요즘에는 와인에 대한 수요가 굉장히 많이 늘었다고 기뻐하기도 했다. 과거엔 [[담배]]도 피웠지만, 2000년대 접어들면서부턴 10년 넘게 [[금연]] 중이라고 한다. 이는 많은 중견가수들이 꼭 기약하는 것이기도 하다. 본래 [[앨범]]만 나오면 불교식 기원도 지내고 이승철 본인이 다니던 [[절(불교)|절]]의 [[주지]]에게 가장 먼저 앨범을 주고 본인 콘서트에 [[스님]]은 공짜(!)라는 이색 이벤트도 하던 [[불자#s-1|불자]]였으나, [[크리스천]]인 지금의 아내를 만난 후 [[가족]]은 같은 [[종교]]로 뭉쳐야 한다는 생각에 [[개종]]했다. 아내, 아이와 함께 [[교회]] [[예배]]에 참석하고 있으며, [[CCM(음악)|CCM]]을 [[리메이크]]해서 부른 곡들도 제법 있다. 나중에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서 개종한 얘길 하며, 곡 홍보 활동을 위해 불교방송에도 매니저가 갔는데 그곳 관계자가 "이승철씨 개종하지 않았어요?"라고 물어 그렇다고 하자 불교계의 큰 손실이라고 했다고 한다.[* 다만, 3월 25일 방송된 KBS 2TV '도올학당 수다승철'에서 개신교임에도 자신은 어머니의 제사를 모시고 절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종교를 떠나서 그게 어머니에 대한 예의이고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https://www.newsen.com/news_view.php?uid=202003252336036710|#]] [[https://veritas.kr/articles/34337/20200327/%EB%8F%84%EC%98%AC%ED%95%99%EB%8B%B9-%EC%88%98%EB%8B%A4%EC%8A%B9%EC%B2%A0-%EA%B0%80%EC%88%98-%EC%9D%B4%EC%8A%B9%EC%B2%A0%EC%9D%98-%EC%BF%A8%ED%95%9C-%EC%8B%A0%EC%95%99-%EA%B3%A0%EB%B0%B1.htm|#]] ] 2016년 '''데뷔 30주년'''을 맞이했다. 이에 앞서 2015년 5월 29일[[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2998669|인터뷰 영상]]과 2016년 6월 9일 2번에 걸쳐서 [[SBS 나이트라인]] 초대석에 출연하여 인터뷰 하였으며[[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616142|영상]], 9월 26일 30주년 소감에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2992253|이제 음악이 뭔지 알아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사실 40주년, 50주년 하는 선배님들도 있는데 30주년이라고 거들먹거리는 것 같아 뭔가 부끄럽다고 한다. 이후 MBC에서 30주년 기념 콘서트를 그의 인터뷰와 함께 녹화 방영해주었다. 이승철의 음원을 두 키 낮춰서 틀면 [[박명수]]의 목소리가 나온다. 말이 필요없다. 들어보자. [[https://youtu.be/96xEawA73KU|말리꽃 음원 2키 다운]]. 박명수가 이승철의 노래를 모창하면서 노래연습을 했기 때문에 어찌 보면 이상할 것도 없다. 때문인지 유튜브 영상 중엔 상기된 이승철 노래 2키 낮춘 영상을 박명수가 부른 노래랍시고 제목 낚시를 하는 영상도 있다. 웃긴 건 진짜 속아서 박명수가 이렇게 노래 잘했냐고 감탄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는 것. 반대로 박명수의 음원을 두 키 높혀서 틀면 이승철의 목소리와 비슷해진다. 실제로 [[https://youtu.be/PCMevkXVfRY|라디오 방송]]과 [[https://youtu.be/Qe3OqeEx7lI|본인 유튜브]]에서 불렀다. 반응은 목소리에 '''똥과 꿀이 공존'''한다는 평이다. 2018년 5월에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200차트 1위를 하자 "앞집 주민으로서 [[플래카드]] 붙여야 하나?"며 자랑스러워했다.[[https://www.instagram.com/p/BjV0f-SlG4-/|#]] 2018년 후반에 성대수술을 했다고 밝혔다. 2019년 10월 25일부터 [[신상출시 편스토랑]]에 평가단 자격으로 출연했다. 2020년 11월부터 2021년 1월까지 방송한 [[엠넷]]의 오디션 프로그램 [[캡틴(엠넷)|캡틴]]에 심사위원으로 출연, 슈퍼스타K6 이후 6년 만에 엠넷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오게 되었다. 2021년 7월 15일부터 [[우리가 사랑한 그 노래, 새가수]]에 심사위원으로 출연했다. 과거 인터뷰에서 가수로서 [[김현식]]을 스승처럼 생각한다고 밝혔다. 직접적으로 가르침을 받거나 조언을 들은 적은 없지만 그의 음악을 듣고 카피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심형탁]]의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중에 심형탁이 그런 사함 또 없습니다를 부르다 감정에 북받쳐 울음을 멈추지 못하자 이승철이 중간에 일어나서 그만 울어라며 본인이 대신 불렀다는 이야기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